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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1. 2020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해주는 굿 여행

_’남도 진성’에 가서 진도씻김굿 본 이야기

아내가 이번 주말엔 진도에 가자며 진작부터 KTX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은곡도마의 대표이자 진도씻김굿 전수자인 이소영이 하는 씻김굿을 몇 번 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엔 남도 진성이라는 오래된 한옥 건물의 마당에서 제대로 한 번 공연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내 윤혜자는 최근 진도의 전통 예술가들과 함께  ‘신나는 예술여행’이라는 프로그램 기획에 참여하는 등 부쩍 국악인들과의 접촉이 잦아진 상태다.


우리는 차가 없으니까 진도까지 한 번에 가긴 어렵고 일단 목포까지 KTX를 타고 간 뒤 광주에 사는 가수 권준희 씨를 만나 그의 차로 섬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그도 씻김굿을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아내는 KTX 안에서 이춘도 선생이라는 분을 목포에서 잠깐 만나기로 했으니 당신은 선생을 만나 정중히 인사를 하고 새로 나온 내 책에 싸인을 해 드리라고 명령했다. 졸지에 갖게 된 '팬사인회'였다. 예전부터 내 글에 관심과 애정을 보여오셨던 이춘도 선생은 새로 나온 나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일곱 권이나 가지고 나오셔서 나를 감동시키셨다. 나는 롯데리아에 들어가 이춘도 선생이 사주는 커피를 마시며 책에 싸인을 해드라고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책이 서점에 나온 지 일주일 만에 해보는 고맙고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진도씻김굿은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기 전에 한을 풀고 갈 수 있도록 무녀들이 해주던 굿이었는데  그 의미와 예술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지금은 주요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씻김굿의 마스터인 예능보유자들은 물론 전수조교, 이수자, 전수자 등 각 등급마다 쟁쟁한 국악인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와 공연을 펼쳤다. 진도씻김굿보존회에서는 해마다 이 행사를 여는데 올해는 코로나 19 때문에 실내 홀이나 체육관 대신 하늘이 탁 트인 야외에서 공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날은 예능보유자 박병원 선생을 비롯해  전수조교 김오현 선생, 전수조교 송순단 선생(가수 송가인의 어머니), 전수조교 박미옥 선생 등이 총출동해서 힘차고 멋진 공연을 펼쳤다.


전수 조교 박미옥 선생이 제석굿을 하던 도중에 “예전에 박병천 선생이 '굿을 하려거든 술을 한 잔 먹고 해라' 그랬어. 왜 그랬는지 나는 알아. 아이고 굿하다가 내가 죽것어. 근데 누가 막걸리 값 한 푼을 안 내놓네?” 라며 네스레를 떠니 구경하던 사람들이 만 원짜리 오만 원짜리 지전을 들고 뛰어나가 전수자들 머리에 꽂아 주고는 쌀로 만든 ‘노적’을 얻어갔다. 꼭 돈을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상징적인 의미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의 돈을 꺼내 노적을 산다. 누구나 바라는 가족의 안녕과 평안한 앞날을 비는 갸륵한 마음에서 일 것인데, 굿을 볼 때마다 목격하는 재미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날은 특별히 코로나 19로 돌아가신 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고푸리, 씻김, 길닦음으로 이어지는 공연을 끊김 없이 일사천리로 보여주었는데 맨 마지막에 흰 천을 길게 잡아 늘여 바닷길을 만들고 그 위에 띄운 배에 잡히는 대로 돈을 놓으며 “잘 가시오.”라고 외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해졌다.

공연이 끝나고 제상에 있던 전이며 꾸덕꾸덕 말린 생선들을 진도북춤의 명인 강은영 선생이 우리들에게 나눠 주었다. 우리는 씻김굿 명인들과 헤어져 ‘청담골’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 우럭맑은탕과 바지락무침을 먹다가 김오현 선생 등 진도씻김굿 예능보유자 일행과 합류해 요란한 뒷풀이를 했다.

다음날은 전날 뒤풀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제안받은 강은영 선생의 '자취방'에 가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진도 길을 차로 한참 달리다 보니 바닷가 언덕에 지어진 개인주택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이 자취방이라 표현한 집은 마루에서 바다가 그대로 내려다 보이는 멋진 건물이었다. 강은영 선생은 우리를 보고 반가워하시며 푸짐한 아침상을 내오셨다. 일명 '조기 잔치'라고 불릴 만큼 많은 양의 파지 조기가 나왔다. 전날부터 새벽까지 선생이 직접 손질을 하셨다는데 전혀 짜지 않고 맛이 좋았다. 조기구이, 조기찌개, 그리고 잘 담근 김치와 문어탕, 김, 흰쌀밥까지 전형적인 남도의 밥상이었다. 아내는 집 주변 경치가 너무 좋다며 돈만 있으면 여기에 당장 땅을 사놓고 싶다고 외치며 같이 간 사람들을 부추겼다. 나는 밥을 먹고 혼자 해안가를 산책했는데 바닷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김오현 선생이 오셔서 씻김굿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질배(길배)에 돈을 놓는 분들은 거의 다 5만 원짜리를 놓는데 어느 짓궂은 인사 중에는 신용카드를 꺼내 질배에 지익 긋고 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일종의 유머인 것이다. 사람들이 놓고 가는 돈은 행사의 잡비나 출연자 비용으로 쓰이지만 옛날 돈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그 돈이 주 수입원이어서 모두들 관심을 집중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쌍도리 돈 돈 닷돈, 도리도리 돈 돈 닷돈'이었는데 이는 풀어 얘기하면 "야, 상 위에 돈 얼마 놓았냐?" "다섯 냥 놨다."라는 뜻으로 주고받는 일종의 은어라는 것이었다. 그밖에도 기기묘묘한 우리 민속음악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아내 덕에 나도 가끔은 진도에 온다. 오면 귀 호강하고 입 호강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참 뜻 깊은 시간이기도 하다. 진도는 워낙 우리 민속음악과 춤이 발달한 곳이라 '한집 건너 한집이 인간문화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술적 소양이 깊은 고장이다. 이곳 사람들이 하는 소리나 춤을 보다가 아마추어들을 보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다행히 지금은 씻김굿 등 민속 음악들을 하는 중심축이 젊은 사람들로 이동하고 있다.어렸을 때부터 가업으로 익힌 소리나 악기, 춤은 대학에 진학한 뒤에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한다. 그들이 모여 펼치는 공연을 보고 있으면 우리 전통예술의 미래가 밝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거듭 보는 씻김굿이 쓸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처음 씻김굿을 볼 때 고수 김태영이 해준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으면 슬프죠. 그런데 진도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슬퍼하기만 하지 않아요. 그 사람의 마지막 길을 보다 밝고 떠들썩하게 배웅해 주는 거죠. 그래서 일종의 축제처럼 변하는 거예요." 그렇다. 씻김굿은 이제 공연이 되고 축제가 되어야 한다. 내년에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도씻김굿이라는 '축제'를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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