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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2. 2020

편의점 사장님의 독후감

편의점과 부동산 사장님이 읽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책을 읽기 전 커피를 한 잔 사려고 집 앞 편의점에 갔더니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책을 잘 읽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제 밤에 술안주 사러 가는 길에 내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사인본을 선물로 드렸더니 그 인사를 하시는 것이었다. 책이 나오고 나서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겐 한 권도 그냥 주지 않고 직접 사서 읽어달라 부탁을 했지만 우리 동네 정든부동산 사장님과 세븐일레븐 성북문화점 사장님께는 책을 선물로 드렸다.


정든부동산 사장님은 우리가 한옥으로 이사를 오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고 또 책을 엄청 좋아하는 분이었다. 결정적으로 어느날 내게 백지에 싸인을 해달라고 하더니 그걸 사무실 벽에 붙여놓으신 분이다. 도대체 왜 내 싸인을 받으신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지금도 정든부동산에 가면 '공처가 편성준'이라고 쓴 내 글씨가 벽에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러니 어찌 책을 선물로 드리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장님은 자신도 어렸을 때 문학소녀였다고 했다. 며칠 전 우리집 손님방을 둘러보러 오신 어떤 손님은 '작가가 사는 집'이라는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는 내 페이스북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을 다 찾아보셨다고 했다. 아마 책도 사서 읽고 계신 것 같았다. 책 한 권 드린 것뿐인데 벌써 이런 광고 효과가 생기다니. 정말 잘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의점 사장님은 성북동의 대소사를 다 꿰고 있는 것은 물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성상담까지 해줄 정도의 '빅 마우스'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모든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아는 것도 많다. 바로 옆의 고깃집 '성북동10길' 사장님의 증언에 의하면 '그분은 여행사 사장님을 오래 했는데 그거 말고도 이것저것 안 해본 일이 없고 도대체 모르는 게 없는 분'이라는 것이다. 내가 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사러 가면 세탁소 사장님이나 사모님이 편의점에 서서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편의점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 사장님께 어찌 내 책을 드리지 않을 수가 있단 말인가. 사장님은 하와이까지 신혼여행을 가서 호텔 수영장에서 누워만 있다가 왔느냐고 물으며 웃으셨다. 내 책을 읽으신 것이다. 내가 여행지에서 악착같이 돌아다니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더니 자기도 여행사를 오래 해봐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하셨다. 처음엔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다는 제목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책을 읽다 보니 공감이 간다고도 말씀하셨다. 내가 노는 것과 쉬는 것은 다르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쓴 책이고,  좀 바보 같이 살아도 큰일 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더니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덕담도 해주셨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어려운 문장이 나오면 이내 손에서 놓게 되는데 이 책은 내용도 쉽고 공감되는 구석이 많아서 계속 읽게 된다고도 하셨다. 커피머신에서 내려받은 커피가 식을 정도로 오랫동안 말씀을 하셨지만 도중에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미지근해진 커피를 두 손으로 감싸고 집으로 돌아왔다. 커피는 이미 식었지만 마음이 아주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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