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시집
일요일 오전 동네 식당에 내려가서 브런치로 갈비탕 한 그릇을 먹고 봄햇살을 받으며 전철역으로 가다가 서점에 들러 박준 시인의 새 시집을 샀다.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라는 시집이었다. 무심히 책을 펼치니 <능곡 빌라>라는 제목과 <그해 봄에>라는 시가 눈에 들어왔다. 두 번째 시가 더 재미 있어서 노트에 노란색 스태들러 연필로 일부를 옮겨보았다. 봄을 단박에 이토록 처연한 계절로 만들어버리다니. 박준은 시를 참 잘 쓰는구나 생각했다.
<그해 봄에>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