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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5. 2019

입문서의 탁월한 효용성

<처음 읽는 신영복>

내가 신영복 선생의 글을 맨 처음 만난 것은 <감옥으로보터의 사색>이었다. 누구나 그랬듯이 그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감옥이란 곳은 여름보다 겨울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대목이다. 여름엔 각자가 뿜어내는 열 때문에 서로를 밀어내지만 겨울철엔 추위 때문에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는 그 유명한 이야기는 한 편의 우화 같으면서도 쓰라린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뛰어난 성찰이었다. 그 책 이후로 대한민국은 신영복이라는 거대한 인물과 제대로 만나게 된다.

신영복의 생애를 읽다 보면 육사의 교관이었던 사람이 어찌하여 무기수가 될 수 있었을까, 라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소주병에 쓰여있는 '처음처럼'이나 '뉴스타파' 로고를 보면 글씨를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 있을까 감탄하게도 된다. 20년 간 감옥살이를 했으면 멍해지거나 최소한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될 법도 한데 그는 감옥 안에서 오히려 더 깊고 강해졌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니체가 얘기한 '오버맨'은 바로 이런 사람 아니었을까,라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다.

젊은 세대라면 이런 이의 글을 처음 대하는 게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너무 높고 웅장한 산 앞에 서면 오를 생각을 하는 것조차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이재은이 쓴 <처음 읽는 신영복>은 반가운 책이다. 이 책은 신영복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따뜻한 안내서 역할을 해줄 것이니까.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자. 이 책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마스터가 아니라 입문서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이제스트'는 또 아니다.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1988년 감옥에서 나와 첫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유고집으로 출간된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까지 저술한 수많은 책과 강연들에서 그가 일관되게 얘기하던 사상과 사유의 고갱이를 뽑아 10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저자의 전작 <최소한의 인문학>에서도 보았듯이 이재은은 신영복을 인용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서고금의 문학, 역사, 철학을 끌어와 보다 심층적인 분석과 풍성한 해석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입문서의 효용'을 느껴보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더구나 그 오브젝트가 신영복 선생이라면 더 강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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