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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6. 2020

미친 시간을 지나 다시 읽는 시간으로

일요일 아침에 쓰는 반성문

책을 내고 한 달 넘게 미친 듯이 내 책 얘기만 했다. 처음엔 책이 안 팔릴까 봐 노심초사했고, 책이 의외로 잘 나갈 땐 아니 이럴 수가 있느냐며 감탄했고, 첫 리뷰가 올라왔을 때 고마워 어쩔 줄 몰랐고, 책이 동네서점 매대에 누워있는 걸 보면 감격에 겨워하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마치 이 세상 모든 게 내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맨 처음 하는 생각은 내가 책에 썼던 글 중에 사람들이 어떤 글을 좋아했더라? 였고 잠들기 전에도 내일은 또 어떤 리뷰가 올라올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꿈에서도 노란 표지의 내 책이 보였고 엄유정 작가의 일러스트가 어른거렸다. 일종의 집착이요 정신병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매일 같이 몇 건씩 올리는 내 글과 사진에 댓글을 다는 데 바빠서 다른 책을 읽을 여유도 없었다. 무슨 글이든 썼다 하면 결국 내 책 얘기로 귀결되었다. 내가 하는 책 자랑과 책 걱정을 혹시라도 놓치는 사람이 있을까 봐 브런치에 올린 글을 인스타그램에도 올리고 페이스북으로도 연계시켜 이중 삼중으로 노출을 시켰다.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공해를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나를 아내는 불안한 마음으로 쳐다봤다. 사람들이 지겨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은근히 내비쳤다. 그러나 눈에 뭔가가 씐 나에게 그런 은근함이 감지될 리가 없었다. 나는 미쳐 있었다.


읽다가 시간이 없어서 덮어놨던 정성갑의 [집을 쫓는 모험]을 다시 펼쳐 들었다.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엔 돌핀호텔과 귀가 매력적인 여자가 나오지만 이 책엔 아파트와 한옥, 빌라, 협소주택 들이 차례대로 나왔고 '집을 쫓는 모험이 곧 나를 찾는 모험'이라는 깨달음도 나왔다. 한기호 소장님을 만난 다음날 동양서림에 주문했던 차무진의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를 찾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책이나 영화, 드라마 들을 얼마나 건성으로 읽고 보았는지 뼈저리게 반성했다. 내친김에 그의 소설 [인 더 백]도 단숨에 읽었다. 아내가 사서 읽고 있던 김윤정의 [작은 가게에서 진심을 배우다]를 옆에서 훔쳐 읽었고 김병민의 [숨은 과학]을 사서 일단 머리말부터 밑줄을 쳤다. '서촌그책방' 사장님이 추천해서 사 온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중 <구멍> <코요테> <아술>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었는데 한 편 한 편 너무 뛰어난 단편들이라 함부로 책장을 넘기기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엘리자베트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 이후 이렇게 뛰어난 소설들을 읽는 재미는 오랜만이었다. 참, 스트라우트의 소설 [모든 것이 가능하다]도 사놨는데 단 한 장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속편 격인 [다시 올리브]는 서점에서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당분간 읽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넷플릭스도 가입만 해놓고 건성으로 보내다가 요 며칠 아내와 함께 [퀸스 갬빗] 6편을 겨우 봤다) 도대체 내 책에 관한 글을 쓰고 내 책에 관한 글과 사진들에 댓글을 다는 미친 짓을 하느라 다른 책을 읽을 시간이 이렇게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한심했다.  


미친 시간을 지나 다시 읽는 시간으로 -


 오늘 아침에 이런 생각이 들길래 곧장 책상 앞으로 와 앉아 일단 [집을 쫓는 모험]을 마저 다 읽고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케이크 가게를 지나다가 맛있어 보이길래 먹기 시작한 달디 단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서 한 달 내내 그 케이크만 먹고 산 느낌이다. 이제 다른 야채도 먹고 수프와 과일과 커피도 맛보아야겠다. 정신을 가다듬어야겠다. 내 책을 맨 밑에 깔았다. 얌전히 있어라. 당분간 나도 숨 좀 쉬자. 너 때문에 나 잠깐 정신이 나갔었어.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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