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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6. 2020

사는 것부터 살아보는 것까지 다 나를 찾는 모험이더라

정성갑의 [집을 쫓는 모험]을 읽고

어제 집에 있는 50도짜리 술을 몇 잔 마시고 캘리를 썼더니 ‘쫗’이 됐어요. 죄송해요.

내가 성북동 한옥을 사서 수리한 뒤 이사를 하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그래서, 집값은 얼마고 수리비는 평당 얼마나 들었는데?"였다. 다른 질문들이 많이 나올 법도 하지만 어김없이 이 질문이 제일 먼저였고 결론을 대신하는 것도 결국은 이것이었다. [집을 쫓는 모혐]을 쓴 저자 정성갑 에디터도 나와 비슷한 질문을 숱하게 받았으리라. 그래서 그는 아예 책날개 프로필을 '아파트를 잘못 팔아 6억을 손해 봤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차피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할 내용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내가 정성갑 에디터를 만난 것은 CGV에서 열었던 '정성갑의 하우스토크'에서였다. 나도 그때 한옥으로 이사를 막 마친 후였으므로 한옥집으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하기도 했고, 집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토크 콘서트를 할 때는 어떤 방식으로 할까 궁금하기도 해서 갔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정성갑이라는 캐릭터의 청사진이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그의 몸과 영혼에 대한 엑스레이다. 그가 살았던 아파트와 한옥, 빌라, 협소주택은 그대로 그를 투영하고 나아가 그의 미래까지 짐작케 해준다. 조해진의 소설 [여름을 지나다]에는 ‘삶이란 결국 집과 집을 떠도는 과정이 아닐까’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는 이 명제를 정성갑의 책에서 다시 한번 만난 기분이다.

대한민국은 아파트가 아니면 제대로 된 집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나라다. 당장 단독주택으로 대출을 받아 보면 알 수 있다. 정성갑 에디터도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이런 서러움을 톡톡히 당했다. 그래서 아파트와 단독주택 담보대출 균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한옥으로 이사를 오면서 대출의 어려움 때문에 밤잠을 설쳤으니까. 그는 아파트와 한옥, 빌라, 협소주택을 고루 경험한 '이사와 정착'의 달인이다. 이사 스트레스가 부부 사별 스트레스 다음이라는 얘기를 들을 적이 있으니 보통 일은 아닐 텐데, 그는 끊임없이 이사라는 모험을 감행한다. 이사를 할 때 필요한 게 뭐냐. 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건 용기란다. 그는 중국집 메뉴를 선택할 때는 우유부단하지만 이사를 결정할 때는 대범해진다. 그리고는 곧 후회를 한다. 이사는 물론이고 집을 짓거나 수리할 때는 계획대로 되는 일이라는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왜 자꾸 이사를 감행하는 걸까. 내가 어떤 사람일까 끊임없이 사유하는 철학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리빙'과 '라이프'의 차이를 알고 있는 그는 아파트든 한옥이든 직접 살아봐야 의문이 풀리고 직성이 풀리는 리얼리스트이면서 동시에 그곳에서 요요마가 연주하는 바흐와 데이미언 라이스의 음울한 목소리를 들어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로맨티시스트다. 그래서 그가 이사를 하는 과정에서는 어질어질한 숫자들이 왔다 갔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로 <아무르>나 <워낭소리>, <아웃 오브 아프리카> 같은 영화들이 거론되고 필요할 때마다 소설가 루쉰이나 박완서의 말이 등장한다(나는 그가 소개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음예예찬>이라는 책을 찾아 읽어볼 생각이다).

그는 묻는다. 기껏 비싼 아파트를 사놓고 툭하면 답답하다면서 밖으로 산책을 나서는 아이러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베란다가 확장된 아파트로 들어가면서 넓어진 거실만 생각하느라 잃어버린 공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나아가 미래를 위해 늘 오늘을 희생하는 우리들의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엔 돌핀호텔과 귀가 매력적인 여성이 나오지만 [집을 쫓는 모험]엔 아파트와 한옥, 빌라, 협소주택 들이 차례대로 나오고 '집을 쫓는 모험이 곧 나를 찾는 모험'이라는 깨달음이 나온다. 오랜만에 잘 읽히는 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찌질함까지 다 드러내는 문체가 너무나 솔직해서 속이 다 후련할 정도다. 작가가 솔직하게 쓰면 읽는 이들이 ‘야, 얘는 이렇게 생각을 다 했네?’라고 할까? 아니다. “어,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라고 무릎을 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글쓴이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집을 차례로 옮겨 다니는 행위를 '모험'이라는 컨셉으로 묶어준 기획자의 능력 또한 최고였다는 걸 깨닫는다. 나도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몽스북 안지선 대표가 ‘둘 다 논다’라는 컨셉을 정해 준 뒤 비로소 내가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방향성을 정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이 너무 좋아서 뭔가 꼬투리를 잡을 게 없을까 찾다가 겨우 발견한 게 69페이지에 있는 '루이비통'이라는 단어다. 오자는 아니고 띄어쓰기를 잘못해서 '루이 비통'으로 쓰여 있다. 쪼잔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이런 오류는 2쇄부터 바로 잡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해마다 쇄를 거듭할 것이므로 이런 지적 사항은 초판을 가진 사람들만 누리는 은밀하고도 사소한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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