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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0. 2020

이 책으로 '잘난척쟁이'들을 무찌르자!

김병민의 [숨은 과학]

모처럼 파티에 간다(코로나 19 이전이라고 해두자).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를 차려입는 정장 파티라도 좋고 캐주얼 차림의 모임, 하다 못해 친구들끼리 여는 파자마 파티라도 상관없다. 모름지기 파티라면 처음 만나는 선남선녀들 사이에서 새로운 인연을 기대해 보기도 하고 조금 멀어졌던 지인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수도 있는 기회다. 그런데 이런 모임마다 출몰해서 흥을 깨는 빌런들이 꼭 있으니 바로 '잘난척쟁이'들이다. 그들은 시사 교양은 물론 과학 지식, 서브 컬처에 이르기까지 전문가들이 들춰보면 알량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그럴듯한 지식과 말발로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게다가 그런 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만만한 표정에 목소리엔 윤기가 흐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나처럼 임기응변에 능하지 못하고 기본 상식도 턱없이 부족한 인간들은 세상 만물의 이치를 두루 섭렵하고 있는 듯한 그들의 교만 또는 기만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파티장의 불행아'로 살아오던 나에게도 드디어 한 줄기 광명이 비쳤으니 과학 저술가 김병민의 신간 [숨은 과학]을 손에 넣은 것이다. 과학책이 어떻게 파티장의 잘난척쟁이들을 무찔러 줄 수 있냐고? 김병민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교수지만 철학, SF, 시, 에세이, 만화까지 즐겨 읽는 르네상스적 인간이자 잡식성 지식인이다. 그런 그이기에 과학적 상식이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도 단순 지식 전달에 그치지 않고 인간·역사·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 말발이 설 수밖에 없다. 가령 어떤 잘난척쟁이가 누군가의 성공을 우연의 결과라고 폄하하면서 "그런 걸 영어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하는데 '세렌딥'은 스리랑카의 옛 이름이기도 합니다."라고 잘난 척을 했다고 치자. 예전 같으면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저 자식은 어떻게 맨날 저런 걸 알고 있는 거지?'라고 화를 냈을 당신은 이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세렌디피티의 대표적이 경우는 '테팔'이라는 프라이팬 상표로 널리 알려진 테플론의 발견을 들 수 있는데요, 이는 원래 팬이 아니라 냉장고의 냉매를 만들려다가 우연히 발견된 물질 테프론에 대해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 담당자가 듀폰사 직원을 통해 우연히 접하면서 세상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얘기한 것과는 달리 모든 우연한 발견이나 행운 뒤에도 끊임없는 실패와 그 실패를 통해 배우려는 과학자들의 기본자세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충고해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얘기하다가 보면 당신도 또 다른 빌런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겸손을 탑재하지 못한 지식의 시전은 늘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이 책은 '빛의 속도로 나는 슈퍼맨'이라는 메타포로 빛의 속도가 초속 30만 킬로미터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결국 빛이 일정한 속도의 상수값을 가지기에 오늘날의 화상통화나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18세의 천재였던 윌리엄 퍼킨이 실수로 보라색 염료를 발견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해양자원을 보호할 수 있었는지도 알려준다. 이는 석유의 발견으로 향유고래의 포획을 중지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로도 이어지는데 만약 당신이 영문학 전공자라면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예로 들면서 나름의 교양을 뽐낼 수도 있을 것이다. 김병민은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눈만 뜨면 미세먼지 수치를 검색하지만 석탄 연료를 주로 사용했던 1980년대의 서울은 당시의 중국보다 공기가 더 나빴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런데 이런 것만 알려주고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미세먼지마저 걸러주는 성능 좋은 마스크가 아니라 '과학으로 증명된 범인을 찾고, 더디고 불편해도 참고 실행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드는 것인데, 그 불편함을 참고 수고할 의향이 있는지부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거시적인 통찰까지 던져준다. 이런 생각은 책 안에서 코로나 19나 아프리카 돼지열병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거론할 때 역시 빛이 난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이유는 평소 상상하지 못했던 극적 상황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장르이기 때문인데 김병민의 [숨은 과학]이 좋았던 이유도 비슷하다.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과학의 원리와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거기에 인간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는 머리말 '우물에 숨은 과학'이라는 글에서 세상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도 자칫하면 왜곡되어 '진실의 옷'을 입는다고 말한다. 지식만 있고 통찰이 없으면 아느니만 못한 지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또 말한다. 세상에 쓸데없는 지식은 없다고. 예를 들어 만년필에 대해 남들보다 조금 더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생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아, 만년필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책에서 찾아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 챕터를 읽고 나면 당신도 당장 쓸데없을 것 같은 지식에 인문학적 시각과 논리를 붙이고 예술적인 스토리텔링까지 가미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창조해 내고 싶어질 테니까. 일독을 권한다. 머리맡에 두고 날마다 한 챕터씩 읽으면 점점 뇌가 섹시해진다, 에 백만 원쯤 걸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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