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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3. 2020

코로나 19 시대의 '독하다 토요일' 풍경

차무진의 [인 더 백]

하루 100 명 안팎이던 코로나 19 신규 확진자 수가 최근 500~600 명에 이르더니 오늘 아침(일요일)엔 마침내 1,030 명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모든 모임과 일정이 취소되고 연기되는 상황입니다. 탱크와 비행기는 보이지 않지만 전쟁 상황과 별 다를 바가 없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 아내와 저는 오전에 모 잡지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장소는 저희 집이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너무 엄중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습니다. 기자와 포토그래퍼 모두 오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손부터 씻게 했습니다. 저희가 마스크를 벗지 않으니 그들도 계속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를 진행하더군요. 얼마 전에 낸 저의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 대한 얘기와 저희가 사는 모습에 대해 한참 나누었고 기사용 사진을 찍을 때만 잠깐 마스크를 벗었습니다. 포토그래퍼가 자꾸 웃으라고 하는데 갑자기 웃는 게 어색해서 얼굴에 쥐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들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잠깐 동네를 산책했습니다. 홍익사대부속고등학교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선 아내가 새천년호프 앞에 멈춰 서더니 "여보, 치킨 하나 튀겨 가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독하다 토요일' 시즌 5의 세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인데 줌을 이용한 비대면 모임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술을 조금 마셔도 될 것 같았습니다. 사장님에게 치킨을 한 마리 포장해 달라고 하고는 가게 앞 플라스틱 파라솔 탁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습니다. 닭을 다 튀긴 사장님이 밖으로 나와 치킨 봉지를 아내에게 내미는 불경스러운 짓을 저질렀고 아내는 "남편에게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빈손으로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저는 얼른 사장님에게 치킨 봉지를 받아 들어 아내를 따라갔습니다. 아내는 치킨 봉지를 일부러 자신에게 건네 준 것이라며 사장님도 어쩔 수 없는 꼰대라고 화를 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테이블 위에 노트북 두 개와 후라이드 치킨,  병맥주 등을 펼쳐 놓았습니다. 독토 회원이자 교육공무원인 김성희 씨가 직장에서 줌 대화방을 개설해 줘서 편하게 온라인 모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요즘 온라인 교육 일정이 너무 바빠져 직장에서 밤을 새울 지경이라고 합니다. 임기홍 씨가 출장 때문에 참석을 못한다는 소식을 카톡방에 알려왔고 오진이 씨도 지금 운전 중이라 들어오질 못한다고 알려 왔습니다. 김하늬 씨는 이번엔 책을 많이 못 읽어서 그냥 얼굴을 비추는 데 의의를 두겠다고 했고 최용석 씨도 책을 못 읽어 송구하다는 사연을 전해왔습니다. 창작 판소리와 커피숍 운영을 병행하고 있는 최용석 씨는 요즘 커피숍의 매출이 3분의 1로 줄어 다른 일이 오는 대로 다 받는 실정이라고 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 책을 읽을 겨를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박재희 씨가 들어오고 김은주 씨, 서동현 씨가 들어오는 동안 각자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세시 이십 분경에 드디어 제가 '독하다 토요일' 행사를 시작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번에 함께 읽고 얘기할 책은 차무진의 소설 [인 더 백]이었습니다. 이 장편소설은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고 식인 바이러스가 퍼져 아수라장이 된 한반도 상황에서 아들을 데리고 무사히 고향까지 가고 싶어 하는 해병대 출신의 소설가 동민의 모험을 그린 아포칼립토 소설입니다. 극단적인 상황이 닥치면 이성과 도덕이 사라지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세상을 생지옥으로 변합니다. 저는 마침 차무진 작가의 또 다른 책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를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기 때문에 [인 더 백]에 대한 느낌이 아주 좋은 상태였습니다. 박재희 씨는 "이런 소설 처음이다"라는 소감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장면 장면 묘사들이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한데 앞부분이 너무 잔인해서 읽는 게 쉽지 않았지만 나름의 쾌감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처음엔 소설가에 대한 약간의 편견이 있어서 별로겠지 생각하며 읽다가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인 더 백'이라는 제목도 신선했고 시대상과 역사성, 이데올로기, 인간의 본질 등 작품 전체에 걸쳐 '레이어'가 참 많은 소설이라는 생각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김하늬 씨는 이 작가의 이전 소설 [해인]을 먼저 읽었는데 명로진 선생의 초청으로 작가를 직접 만났을 때 “작가가 할 말이 너무 많아 보여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좀 버거웠기에 앞으로는 밀도를 조금 풀어놓는 부분도 있었으면...”이라고 솔직한 느낌과 바람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을 읽어보니 이전의 단점이라 여기던 부분은 사라지고 진행이 훨씬 매끄러워져 좋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해인]도 잔인한 장면이 많았는데 이 작품은 그냥 잔인하기만 한 게 아니라 조밀도가 높아진 느낌이라 했습니다.


김은주 씨는 자신은 무서움을 많이 타 호러 영화도 못 보는데 이 작품은 외려 잘 읽었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선정한 배경에는 김은주 씨가 있었습니다. 차무진 작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던 김은주 씨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람에 독토 회원들 모두 이 소설을 읽게 된 것입니다. 그는 책을 읽기 전에는 특이한 소재나 아이템 위주의 소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신파적 요소까지 있어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다 읽은 후엔 '나의 백엔 뭐가 들어 있어야 하나' 하는 철학적 질문까지 하게 되었다는 소감을 남겼지만 그래도 그 생생한 잔인함 때문에 책을 쭉쭉 읽어나가진 못하고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에세이 [죽은 자의 집 청소]와 번갈아 읽었다고 했습니다.


서동현 씨도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자기는 전쟁영화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인데 초반 신이 좀 불편한 감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구조가 좋았고 반전도 훌륭했다고 했습니다. '군화 한 켤레' 부분을 얘기하다가 아직 안 읽은 분들도 있으니 스포일을 자제하겠다고 하며 말을 아끼기도 했습니다. 제가 “스토리텔러로 소문난 차무진 작가지만 책을 읽어보면 의외로 생경한 문학적 단어를 많이 쓰더라.”라고 했더니 서동현 씨도 그 지적에 동감하면서 다만 문장은 좋으나 문단 구분이 좀 거친 게 흠이라는 평도 내놓았습니다.


박재희 씨는 이 소설의 반전이 좋았는데 혹시 그게 처음부터의 설정이었는지 아니면 중간부터였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김은주 씨가 즉석에서 차무진 작가에게 카톡 메신저로 그 내용을 물어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차무진 작가도 오늘 이 모임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부득이한 사정 때문에 오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는 소감을 전했고 자신의 책을 들고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눠 줘서 너무 고맙다는 뜻도 알려왔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무서운 게 나오면 눈을 감는 버릇 때문에 자동차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윤혜자 씨는 이 소설 앞부분이 너무 무섭고 잔인해 조금 읽다가 포기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은 작품보다 이 소설이 나온 '요다'라는 출판사 얘기를 좀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예전엔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은 사람은 소설책을 내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등을 쓴 김민섭 작가가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계속 글을 올리던 김동식이라는 사람을 눈여겨보다가 직접 만나서 [회색 인간] 등 전작으로 소설집 세 권을 한꺼번에 발간해 히트를 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일반인도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길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김동식의 소설들을 펴낸 '요다'라는 서브컬처 전문 출판사의 대표는 <기획회의>를 만들고 발간하는 한기호 소장입니다(그 옛날 [소설 동의보감]이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같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었던 분이기도 하죠). 한기호 소장님은 얼마 전 제가 책을 냈을 때도 저희 부부를 불러 많은 도움과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윤혜자 씨가 십여 년 전 한기호 소장님과 함께 일을 했던 인연 덕분이기도 합니다. 윤혜자 씨는 [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도 요다에서 나왔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습니다.


서동현 씨가 소설 175 페이지에 있는 볼드체 문장 ‘누워 있던 시체가 상반신을 일으킨 채 앉아 있었다.’에 대해 이야기하며 책에 볼드체로 된 문장이 딱 두 군데인데 모두 이 장면을 기점으로 작품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남을 얘기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시계(제가 순토 시계가 진짜 있는지 인터넷으로 찾아봤다고 했더니 서동현 씨가 자신은 그 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또 놀랐습니다)가 느려지는 게 중요한 모티브인데 같은 시계를 동민은 왼쪽 손목에 차고 메어린은 오른쪽 손목에 찬다고 말하자 모두들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책을 정말 꼼꼼히 읽는 눈 밝은 독자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김은주 씨가 동민과 메어린의 관계를 동일인으로 얘기할 때 저도 히라노 게이치로의 ‘분인’ 개념을 언뜻 떠올렸으나 워낙 다른 분들의 의견이 이어지는 바람에 입 밖으로까지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박재희 씨가 분위기는 매우 다르지만 빌 브라이슨이 걸핏하면 친구 카츠 얘기를 자꾸 꺼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서 다들 웃었습니다.


책 얘기를 어느 정도 하고 나자 다시 코로나 19 얘기가 나왔고, 요즘은 모두 우리들처럼 줌으로 회의나 모임을 하니 도대체 줌이라는 회사는 돈을 얼마나 버는 걸까 하는 부러운 지탄도 나왔습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확대될 것 같으니 연말엔 정말 줌 앞에 모여 술을 마시자는 얘기까지 하고 모두들 회의실을 나갔습니다. 저와 윤혜자 씨는 줌을 끄고 치킨에 맥주를 계속 마시다가 네시 반쯤 같은 동네에 사는 독토 회원에게 전화를 걸어 술이나  마시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 회원은 단박에 좋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저는 윤혜자 씨의 명령에 의해 육전을 부칠 소고기를 사러 동네 정육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소고기를 한 근 끊어 왔더니 그새 동네 사는 독토 회원이 위스키를 한 병 들고 오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또 과음을 하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니 독하다 토요일 모임을 너무 서둘러 끝내는 바람에 '세 줄 평'을 남기라는 부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후기를 쓰려고 오늘 책상에 앉으니 비로소 그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다음엔 꼭 세 줄 평을 써보라고 할 작정입니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야 결석을 했던 정아름 씨가 "두통이 너무 심해서 낮잠을 좀 잔다는 게 거의 다섯 시간을 잤네요."라는 사연을 보내와 회원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정아름 씨는 너무 워커홀릭이라 걱정입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오자 두 개를 찾아냈는데 303 페이지에 나오는 '제사, 계속 모십시오'는 '제사, 계속 모시십시오'의 오기가 분명하고 372 페이지의 '정부군에 대한 뼈문 오기로 황산을 던지던 일'에서 '뼈문'이 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지지난달 모임에서 얘기한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 편과 지난 달 모임 최진영의 [해가 지는 쪽으로] 후기를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책을 발간하고 출판기념회와 인터뷰 등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이긴 했으니 두 달이나 후기를 쓰지 못하니 진행자로서 그 죄책감이 너무 큽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한 편이라도 꼭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일요일 저녁입니다. 모두들 남은 휴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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