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제카오일'에서 경험한 9일간의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 체험기
자신은 요리를 잘 알지도 못하고 할 줄도 모른다고 하지만 아내는 식재료를 선택할 때는 엄격한 편이다. 고기보다는 야채를 좋아하고 좋은 식재료를 찾아 SNS를 주의 깊게 살핀다. 요즘은 비건들을 위한 음식에도 관심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우리집에서 먹는 쌀, 계란, 채소 등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인연을 맺은 농부들에게 배송을 받아먹는 경우가 많다. 물론 동네 마트도 자주 이용한다. '베제카오일'을 수입하는 나비즈(Nabiz)의 최선희 대표도 그렇게 해서 맺은 인연이다. 아내가 올리브오일을 좋아해 '베제카 올리브오일'이라는 제품을 구입해 먹었는데 그걸 수입하는 유통사가 우리동네에 있어서 온라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만나다가 자연스럽게 최선희 대표와 친해지게 된 것이다.
연말에 최선희 대표와 나정일 이사가 우리집에 와인을 잔뜩 들고 온 적이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 19로 얼룩진 한 해를 돌아보며 와인을 마셨다. 그들은 와인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인 만큼 둘 다 와인에 조예기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나 대표가 가져온 와인들은 너무나 맛이 좋았다. 아내와 나는 그날 '내추럴 와인'에 대한 짧은 강의도 들을 수 있었다. 이전부터 좋은 식재료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외국 여행이나 출장 때마다 다른 나라의 좋은 음식들을 찾아 헤매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되는 올리브오일'이라는 금맥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드라마 작가 출신인 최 대표는 내가 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하면서 계속 나를 작가님, 작가님 하고 불렀다. 그러나 작가도 생활고를 해결하려면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일도 해야 하므로 요즘은 동네 고등학교로 방역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는데 그 일정도 12월 31일이면 다 끝이 난다고 했더니 두 사람이 눈을 반짝이며 1월에 자신들을 좀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1월에 입고되는 햇오일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지는데 금방 소진되는 '언필터' 제품까지 배송을 하려면 아무래도 일손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일머리도 없는 사람이 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어려운 일이 아닌 단순작업이기 때문에 상관없단다. 나는 마침 잘 되었다고 기뻐하며 중간에 신문사 인터뷰와 지방서점 북토크, 라디오 방송 출연 때는 좀 양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신문사 인터뷰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했고 북토크와 라디오 출연 때는 나 대신 아내 윤혜자가 가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졸지에 일자리와 일꾼 문제를 해결한 우리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와인잔을 높이 들었다.
1월 6일 아침 10시에 동소문동에 있는 지하 1층 사무실 겸 창고로 갔다. 두 사람은 벌써 한창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주문량을 확인하고 그걸 일일이 엑셀 전표와 주소록에 옮겨 스티커를 출력하고 붙이는 게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주문 제작했던 베제카 오일 전용 상자와 토마토 통조림 다떼리노 전용 상자들은 코로나 19 이후 벌어진 '골판지 대란' 덕분에 구경도 못하고 일반 박스로 포장을 해야 했다. 물론 나는 그런 고차원적인 일은 하지 못하고 일단 배달 박스 안에 , 동봉할 리플렛과 설명문이 든 봉투 작업부터 했다. 리플렛은 이미 접혀 있지만 새로 쓴 레터(리플렛에 넣지 못한 성분 얘기와 사용법 등을 새로 썼다)는 A4지를 삼등분해야 봉투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정확하게 접어야 했다. 최선희 대표가 삼분의 일 지점을 쉽게 찾는 방법을 가르쳐 줬고 나는 그대로 따라 했다. 편지봉투를 만드는 책상 위에 찌그러진 현대카드M이 한 장 있길래 뭐냐고 물었더니 나 이사님이 편지 접을 때 쓰는 도구라고 했다. "공학도 출신은 도구를 쓰더라구요, 허."라고 나 이사를 비웃는 최 대표였지만 막상 내가 사용을 해보니 선 따라 종이가 쫙 접히는 맛이 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박스 만드는 걸 최선희 대표가 가르쳐줬다. 박스는 박스테이프로 밑판을 세로로 길게 한 번 붙이고 가로로 두 번, 다시 세로로 두 번 붙여 박스가 뜯어지거나 밑이 빠지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비닐로 감싼 올리브 오일 병을 넣고 다시 위쪽을 같은 방식으로 테이핑 한 뒤 스티커 형태로 된 송장을 붙이고 왼쪽 위에 '취급주의' 빨간색 스티커도 붙여야 한다. 테이프를 워낙 많이 쓰다 보니 '테이프 커팅기'는 기본이다. 나는 우체국에서 이걸 본 적은 있지만 직접 써보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열 번 정도 써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박스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서 일단 병의 크기와 개수를 생각한 뒤 박스 크기를 정해야 한다. 베제카오일은 250ml와 500ml 두 가지 타입으로 되어 있는데 250ml 스무 병, 하는 식으로 심플하게 주문을 넣는다면 박스를 뜯을 필요도 없이(레터를 넣어야 하니까 살짝 뜯기는 해야겠지만) 그대로 발송하면 되지만 250ml 3병, 500ml 5병 같은 식이면 중간 정도 크기의 박스를 만들어 에어 비닐(일명 뽁뽁이)로 감싸서 넣어야 한다. 실제로 제품 주문은 1병, 3병, 15병 하는 식으로 고객 마음이었다. 에어 비닐은 책상 뒤쪽에서 뽑아 올려 상 위에 펴 놓고 병을 누인 뒤 둘둘 감싸고 커터칼로 잘라야 하는데 맨 밑에 들어가는 병들은 책상 크기로 두 번 잡아당긴 만큼 감싸야하고 중간 병은 한 번 반 정도를 감아도 된다. 그렇게 해서 병들이 흔들리지 않는지 확인하고 위쪽을 닫은 뒤 아까처럼 테이핑을 여러 번 해야 하나의 박스 포장이 끝난다. 포장을 한 박스들은 사무실 안에 쎃아두기도 하고 문 밖 복도에 놔두기도 한다. 문 밖 계단 밑에 쌓아둔 상자들은 나중에 연락을 받고 온 택배 기사들이 트럭에 실어간다고 했다.
박스 만드는 일을 두 시간 정도 했더니 어깨가 아프고 손목이 시렸다. 계속 서서 작업을 해야 하니 발과 다리도 아팠다. 최 대표와 나 이사는 '우리는 성격이 급해서' 일을 놔두지 못하는 타입이니 작가님은 혼자 알아서 쉬면서 하라고 했지만 나 혼자 일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멍때리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건 뭔가 반칙인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불경스러운 짓 같아서 하지 않았다. 정말 점심시간 빼고는 계속 지속되는 경건한 노동의 현장이었다. 나 이사는 15병이 넘는 박스 포장의 요령을 가르쳐 주며 에어 비닐을 아끼지 않고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괜히 비닐을 아끼려다가 비싼 병 제품이 포장 불량으로 깨지면 낭패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집에서 택배를 받을 때는 뽁뽁이를 너무 많이 쓰는 제품들을 보고 혀를 차곤 했는데 막상 내가 발송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 누구나 자신이 선 곳에서 보이는 만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 이사는 병을 포장하기 전에 병뚜껑을 손으로 하나하나 돌려보는 것도 잊지 말라고 부탁했다. 가끔 뚜껑이 제대로 안 닫혀 있어 새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포장 배송 같지만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베제카오일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생산되는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손으로 수확하고 24시간 안에 저온압축 방식으로 제조된다. 특히 1월에 나오는 '언필터'는 그 해의 첫 올리브오일을 짤 때 딱 한 번만 나오는 상품이라 늘 조기 매진된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조리할 때는 대부분 필터 제품을 쓰고 직접 먹거나 빵을 찍어 먹을 때는 올리브 특유의 맛이 살아있는 언필터를 많이 쓴다고 한다(제품의 가격은 같다). 올리브 오일을 워낙 좋아하는 나 이사는 매일 공복에 언필터를 한 숟가락씩 복용하고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뜻이리라.
내가 청주와 충주 서점으로 북토크를 간 날은 아내가 나 대신 나와서 수고를 해줬고 둘이 함께 출근해 일을 한 적도 있었다. 아내는 박스 만드는 걸 배울 때 처음으로 만난 테이프 커팅기를 보고 "이건 도대체 어떤 천재가 만든 발명품이냐?"며 감탄했다.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는 것도 편하고 테이프를 잘라 낸 뒤 표면의 에어 부분을 문질러 빈 공간이 생기지 않게 하는 장치까지 콤팩트하게 모두 달려 있는 게 정말 최고의 '적정기술'이라는 것이다. 다만 테이프를 교체할 때는 스프링의 힘이 너무 강해서 내가 자주 도와줘야 했지만 아내는 이것도 금세 스스로 터득해 버렸다. 아무래도 아내는 나보다 일머리도 뛰어난 것 같았다. 최 대표와 나 이사는 출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에게 과분한 일당을 지급하면서도 저녁 다섯 시가 되면 빨리 일손을 놓고 퇴근하라고 소리를 지르기 일쑤였다. 그리고 진짜 무거운 걸 옮겨야 할 때는 대학로의 무명 연극배우들을 불러 아르바이트를 시키기도 했다. 우리를 놔두고 또 다른 인력을 부르다니 이건 염치 없는 일이 아니냐고 했더니, 이건 힘 잘 쓰는 젊은 사람들이 해야 빨리 끝나는 일이고 또 이런 식으로 해서 되도록 무명 배우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선량한 사람들을 이웃으로 두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나 이사가 치킨과 맥주를 사줄 때도 많았다. 우리는 첫날에도 일이 끝난 뒤 내 추천으로 한성대입구역 '꼬꼬댁꼬꼬'에 가서 치킨과 생맥주를 먹었다. 첫날 베제카올리브오일 한 박스와 다떼리노 토마토 캔 한 박스를 구입해 오라고 명령했던 아내도 꼬꼬댁꼬꼬로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최 대표와 나 이사는 정말 베제카오일을 사랑했다. 좋아하는 제품 판매를 생업으로 삼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위험과 책임을 도맡아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일단 두 사람은 제품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비싼 운임을 주고 냉장운송을 고집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국제운송비가 크게 올랐지만 무턱대고 가격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택배비는 4,000원으로 올랐지만 첫날처럼 서울 시내에 눈이 내리면 모든 택배 서비스가 마비되어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다. 실제로 하루는 우리가 출근했더니 택배 서비스에 과부하가 걸려 택배사가 물량을 제한했으니 천천히 일을 진행하라고 한 적도 있었다. 송장 출력이 안 되니 포장을 해놔도 배달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덕분에 산처럼 쌓여 있던 제품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고 하며 웃었다. 햇오일들이 다 소진되면서 우리도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마지막 날 퇴근할 때 9일 치의 임금이 현금으로 지급되었다. 나는 그날 부친상을 당한 대학 써클 선배에게 드릴 부조금 십만 원을 빼고 나머지를 모두 아내에게 주었는데 내가 아내에게 뭔가 다른 돈을 송금하고 나자 그 현금은 다시 내 지갑으로 돌아왔다. 나는 미장원에 가서 아내의 커트 파마 비용과 내 머리 커트 비용을 내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사소한 비용을 지불했는데 어느덧 지갑 안의 돈은 창고 안에 쌓여 있던 상자처럼 순식간에 소진되고 말았다. 그래도 평생 처음 경험한 박스 포장 아르바이트의 추억과 좋은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마음은 꽤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아내가 해주는 베제카 오일이 들어간 스파게티와 시금치 무침, 그리고 발사믹 식초와 함께 섞어 빵에 찍어먹는 베 제카 오일의 풍부한 맛도 당분간 내 혀와 위를 행복하게 해 줄 게 분명하고.
[베제카올리브오일 구입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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