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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3. 2021

등기 메시지 보고 철렁했던 사연

박남철 시집을 빌려준 고마운 김상득 작가

등기가 왔다는 카톡 메시지가 오면 가슴부터 철렁 내려앉는다. 등기는 무서운 것(고소장, 내용증명, 출두고지서 등등)들이라는 선입견이 있어서다. 그런데 발송인이 김상득이다. 김상득 작가. 며칠 전 내가 박남철 시집 가지고 계신 분은 연락 달라고 했을 때 시집을 빌려 주겠다는 메시지를 보내더니 정말 보내준 것이다. 아내가 옆에서 "요즘 책을 등기로 보내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신이 났다.

등기 봉투를 펼치니 '김상득 엎드림'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 분 또 왜 이러시나. 김상득 작가는 아내 때문에 알게 된 분이고 예전에 우리 집에도 왔었는데 어제 떡집 백일 포스팅 댓글에서 나의 옛 동료에게 클라이언트의 위용을 뽐내기도 했다.


아무튼 봉투를 가위로 자르고 도서출판 청하에서 나온 시집을 꺼내 휘리릭 펼쳤더니 마침 이십여 년 전 『저녁거리마다 청춘을 세워두고』라는 시집에서 일부분만 읽었던 기억이 나는 박남철의 시 「어떤 자식일까」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박남철 시인이 이성복 시인의 문제적 시집 『구르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처음 발견하고 싱어송라이터 송창식의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의 시다. 반가운 마음에 그 시를 단박에 옮겨본다.(시집에 '가나다리'라고 오자를 내다니 이건 좀 어이가 없다)

어떤 자식일까
- 李晟馥을 발견하고

  나는 오늘 오래간 만에 우표를 사려고 책가게엘 들렀다가 며칠 전에 혼자서 어디 고독이나 좀 씹어 보려고 들어갔던 다방에서 宋唱植이의 '가나다라'라는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거의 두어 시간 동안 가게 주인의 눈총까지 받아가며 (천 오백원이 마침 주머니에 없었기에 남의 詩集을 돈 주고 사는 실수는 다행히 저지르지 않았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드는가'ㄴ지 뭔지를 읽어 내려가다가 마침내, 감히, 이따위 엉터리 詩集을 낸 놈은 아예 아무도 몰래 없애 버려야만 된다는 단호한 결정을 내리면서 가슴에 슬쩍 칼처럼 품고 책가게를 나왔었다

  젠장, 宋唱植이 자식이야 뭐 딴따라니까 뭐 내 영업에 그다지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엉터리 천재 비슷한 자식을 앞으로 더 오래 살려 두었다간, 두고 두고 후회스러울 것은 뻔한 노릇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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