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의 산문집 『다독임』
책날개에 조금 크게 쓰인 '오은'이라는 이름 아래로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쓸 때마다 찾아오는 기진맥진함이 좋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느낌 때문이 아니라, 어떤 시간에 내가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느낌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책을 읽기 전부터 감탄했다.
소설을 읽을 땐 맨 처음부터 읽지만 에세이나 산문집은 아무 데나 펼쳐 한 꼭지를 먼저 읽은 뒤 처음으로 돌아가는 버릇이 있다. 오은의 산문집 『다독임』을 아무 데다 펼쳤더니 대뜸 <다음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글이 나왔다. "직장을 그만둔 지 일주일이 지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글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와 거의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된다.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하는 오은 시인을 만난 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도 마지막엔 이렇게 묻곤 한다. "그래서 다음엔 뭘 할 건데?" 급기야 "결혼할 사람이 부자인가 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당장 결혼할 계획도 없는데). 그라고 왜 불안한 마음이 없었겠는가. 다음에 뭘 할 거냐는 질문에 뾰족한 답을 하고 싶은 건 누구보다도 그 질문을 받은 사람 아니겠는가. 다만 오은 시인은 회사를 그만둔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고 아직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상황에서는 좀 딴 생각도 해보고 싶은 마음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살면서 다음이라는 걸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었음을 깨닫는다. 10대에는 공부를 하느라, 20대에선 스펙을 쌓느라, 30대에는 취업을 하느라, 40대에는 가족을 부양하느라 머릿속으로 다음을 그려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니 나도 '다음에 하면 되지.'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란 거의 없다. 이번에 못 했으면 다음에 하면 되는 것이다. 오은 시인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를 소개하면서 '두 번은 없다. 그러나 다음이 있다.'라고 말한다. 다음에만 할 수 있는 것들, 다음이라 비로소 가능한 일들이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오은은 이 책의 제목 안에 다정한 의태어 다독임은 물론 '다독(多讀)'의 뜻도 함께 담겨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책 맨 앞에 있는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밤의 다독임에는 늘 책이 있었다. 다독(多讀)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오은 시인은 팟캐스트나 인스타그램 라이브, 유튜브 등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얼마 전엔JTBC 「방구석 1열」에도 나왔는데 아내와 나는 볼 때마다 어떻게 저리 말을 잘할까 하고 감탄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고 책 앞머리에서 밝히기는 했지만 내 생각엔 그보다 평소에 언어유희든 인문학적 해석이든 말에 대한 훈련과 놀이를 게을리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그 예 중 하나가 여행사 광고 카피로 유명한 '너랑 나랑 노랑'이다. 이 카피는 오 시인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한데 제목에 저작권이 없으므로 광고에 쓰인 것 같다(여행사에서 오은 시인에게 인사라도 한 번 했을까 궁금하다).
짐작했듯이 이 책의 제목은 편집자인 김민정 시인이 뽑았다고 한다. 정말 제목을 잘 짓는 편집자가 아닐 수 없다. 그 짧은 제목 안에서도 자신의 인장을 찍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 밖에도 이 책엔 다정하고 정겨운 이름들이 등장한다. 어릴 적 친구는 물론 아는 소설가 누나,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 할아버지, 휴대폰으로 캔디 크러시 게임을 하던 소년, 그리고 해마다 사월이면 생각나는 세월호 아이들과 독일에서 사망한 허수경 시인의 이름까지. 그 이름 하나하나에 사연이 있고 그리움이 있다. 한 마디로 다독다독과 다정함이 난무하는 책이다. 참, 대학로를 자주 나가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위트 앤 시니컬'이 다시 문을 연다>라는 글을 읽는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은 시인이 김현 시인을 만나 들었던 그의 '계획'은 너무나 웃기고도 재밌으니 혹시 궁금한 분은 책을 사서 읽으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