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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09. 2021

함께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기쁨

독하다 토요일 시즌5_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

코로나 19의 기세가 좀 사그라들기를 바랐지만 이 전염병은 우리가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독하다 토요일 회원들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한정현 작가의 장편 『줄리아나 도쿄』입니다. 제목은 도쿄에서 유명한 나이트클럽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프고 기이한 이야기들과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뜻밖의 감동, 연대 등이 들어있는 소설입니다.


이번 모임은 마침 저희 집이 방송 촬영을 하는 날 열려서(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회원들께 양해를 구하고 모임 중간에 촬영을 했습니다. 다들 줌으로 참여했지만 정아름 씨와 김하늬 씨는 저희 집에 와서 직접 토론을 하고 짧은 인터뷰도 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니 방송국 PD가 두 분 다 왜 이렇게 말씀을 잘하시냐고 감탄을 하더군요.


저는 사실 이 책을 읽은 지가 꽤 지나서 모임을 앞두고 다시 읽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독서 메모를 해놓는 수첩을 찾아보니 『올리브 키터리지』을 읽기 직전이니 한여름이더군요. 아무튼 한주, 유키노, 한수 등 주요 등장인물이 엮어내는 이야기가 아프고 뭔가 분명치 않으면서도 묘한 매력을 주는 소설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와 소금사탕 이야기를 하던 꼬치구이 노인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더군요.


김은주 씨가 책을 재밌게 읽었다고 하며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오해와 이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얘기했습니다. 반면 윤혜자 씨는 자기는 소설이 좀 어려웠다면서 '유키노가 한주를 죽인 건가요?'라고 물었더니 김하늬 씨가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면서 사건의 흐름보다는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게 더 작품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냈습니다. 별다른 서사 없이 진행되는 일본 문학 특유의 느낌에 먼저 마음을 실어보는 건 어떠냐는 것이었죠. 자기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나니 이외로 '페이지 터너'처럼 책장이 잘 넘어가더라면서요.


최용석 씨는 주인공이 우리말을 구사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게 재미있는 은유로 느껴졌다고 했습니다(저도 이 부분이 좋았습니다. 주인공 한주는 어떤 사건 때문에 한국어를 잊고 일본어로만 얘기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국말을 잊어서 일본말로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지독한 아이러니로 느껴집니다). 소설이 아니라 드라마 문법으로 쓰인 것 같아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임기홍 씨는 소설을 읽는 게 너무 어렵게 느껴졌지만 꼬치구이 할아버지가 나오는 장면의 따뜻하고 친절한 느낌에서는 어느덧 마음이 풀어졌다고 밝혀서 반가웠습니다.


박재희 씨는 처음엔 내용이 너무 분절되어 있어서 작가와 교감하기 참 힘드네,라고 생각했지만 군데군데 좋은 문장 또한 많아 좀 혼란스러웠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밑줄을 그은 문장들을 보면 모두 감정에 대한 표현들이었다고 하면서 후반엔 있는 글들은 시어(詩語)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심지어 어떤 부분에서는 울기까지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구조를 보면 뭔가 이해하기가 힘든 게 사실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하늬 씨가 '그런 것들을 너무 쉽게 쓰면 소설이 통속적으로 흘러가니 일부러 복잡하게 꼬아놓음으로써 뻔하지 않은 소설이 탄생한 것 아니겠느냐'는 역발상적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박재희 씨도 그 의견에 찬성하면서 그렇게 하니 김추의 엄마 이야기까지 나온 게 다 절묘해진다고 기뻐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충분히 경청하며 섣불리 의견을 내지 않기로 유명한 서동현 씨가 '초반엔 다른 회원들처럼 혼란스러웠는데 작가가 스토리를 일부러 파편화했구나 하는 걸 깨닫고 나니 매우 흥미로웠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폭력에 대한 묘사와 그 대척점에 해방구로서 '줄리아나 도쿄'라는 공간을 놓은 점, 삶이 부서졌다는 표현 등등 소설의 모든 부분이 굉장히 재미있고 멋지게 느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김성희 씨는 일단 책 표지가 세련돼서 마음에 들었다면서 디아스포라와 폭력 등 심각한 문제들을 다룬 이 소설이  '줄리아나 도쿄'라는 통속적인 제목을 달고 있어서 '기분 좋게 배신을 당한 느낌'이라고 하며 웃었습니다.  자신은 책에 등장한 '정추'선생에 관심이 생겨서 그를 다룬 책을 따로 찾아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른바 '파생 독서'를 경험한 것이죠. 소설 속에 등장한 작가  다자이 오사무는 물론 조선작의 『영자의 전성시대』까지 찾아보았다니 정말 성실한 독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처음엔 예상외로 단단한 문장에 홀렸다가 내용이 뒤죽박죽 되어 있는 것 같아 괴로워하기도 했는데 여러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해 보니 결국 작가의 의도와도 더 가까워지고 이번 역시 좋은 작품을 읽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역시 독하다 토요일이라는 모임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을 끝내고 시간 되는 대로 다들 세줄 평을 써서 카톡방에 올려 주었습니다.  말이 세줄 평이지 길이 제한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독후감이 되었습니다. 다음 달엔(후기를 늦게 써서 벌써 이번 주가 되었습니다만) 시즌5의 마지막인데 조선희 선생의 대하소설 『세 여자』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와 상해, 러시아, 미국 등을 날아다니던 젊은이들 이야기입니다. 생각보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작가인 조선희 선생도 시간이 맞으면 모임에 참석할 의향이 있다고 하셨는데 윤혜자 씨가 문의를 해보기로 했으니 기대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바빠 독토 후기를 자꾸 빼먹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 시즌엔 더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줄 평들)


김은주 :

처음엔 내가 난독증에라도 걸렸나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살다 보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홍상수 영화)” 것이 많은 것처럼, “과거는 미래에 항상 더 명확해지(오버 스토리, 리차드 파워스)”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은 오해를 기반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에 이르러서야 조금씩 이해가 됐다. 데이트 폭력이나 계층의 취향 등이 껄끄러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리아나 도쿄 같은 해방구나 꼬치구이 할아버지의 따뜻한 환대-이해나 오해를 넘어서는 환대-가 우리가 살고 사랑하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이 좋았다.



편성준 :

예를 들어 나는 '데이트 폭력을 참고 견디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한주와 유키노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이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신문기사나 뉴스로는 알 수 없는 사람 개개인의 마음들을 소설을 통해 읽는다. 나아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다. '독하다 토요일' 사람들과 함께  한정현의 『줄리아나 도쿄』를 읽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 고맙다. 소설가에게도. 함께 읽어준 사람들에게도.  


서동현 :

이 책은 폭력과 해방구에 관한 이야기다. 절반쯤 읽어야 얼개가 머리에 들어오는 특이한 구조는, 내게 좀 더 눈 부릅뜨고 귀 기울여 읽어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폭력은 평범한 얼굴일 때 가장 잔혹하고 끔찍하다. 그래서 작가는 한주의 애인의 이름을 지움으로써 그 인간성을 증발시켜버렸다. 이야기 속 눈은 아픔을 덮어주는 희고 아름다운 이불이자, 동시에 언젠간 녹아 사라질 상처를 뜻하는 듯하다. 상처 받은 이들은 그렇게 부서진 삶을 조금씩 딛고 일어서서 자신을 온전히 내보이는 '단상'으로, '제자리'로 나아간다.

한주가 유키노에게 말했다. "제자리에 있어주세요." 유키노가 한주에게 말했다. "한주 씨가 그랬잖아요. 그 사람이 있고 싶은 곳이 제자리라고."


오진이 :

눈 오는 겨울에 발자국처럼 찍힌 줄리아나 도쿄를 읽을 수 있어 '독하다'에 감사드려요. 데이트 폭력. 동성애, 편견, 연구의 허실, 이해와 오해, 선택과 무책임 등등 많은 주제가 버거워서 정리가 쉬 되진 않았지만 굳이 정리할 필요가 있을까, 란 생각도 들게 했어요.

줄리아나 도쿄가 번화가가 아닌 미타미공업지구 인근이라는 거.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영등포에 와서 스트레스를 풀었을까? 란 상상까지. 암튼 섣부르지 않게 이면까지 볼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구요. 줄리아나 도쿄무대에서 혹은 우리나라의 여느 무대에서든 물아의 지경에 오른 이들을 애정할 수 있을듯요~ 3월에 뵐게요. 짧은 시간이지만 반가웠습니다


박재희 :

새것. 내게 <줄리아나 도쿄>는 이제까지 읽은 소설의 어떤 구조나 서사와 닮지 않아 좋았다.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며칠 동안 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덮어버린 풍경이라 해도,  허공에 날리며 떠돌고 다시 하늘로 오르다 땅에 닿기도 전에 사라지거나 녹아버린 눈송이도 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신으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해야 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 자신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사랑인가? 타자에게서 나를 볼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자신이 되는 것으로 기어코 사랑을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결정하는 내 자리, 나의 무대, 그리고 내 삶에 관해 말할 것이 있는 내 삶의 화자가 되는 것에 관한 소설이다. 아픔과 상처를 알아보고 함께 앓고 치유하는 주인공의 대화는 시어로 쓰여있다. 오키나와 섬 전체를 둘러싼 고무나무처럼 만나지 못해도 다시는 보지 못해도 서로를 지키는 그런 사랑을 생각한다. 윤이상과 정추의 음악을 찾아 듣고 끄트머리를 넉넉하게 자른 김밥을 먹어야겠습니다. 3월에는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김하늬 :

내용이 분명히 연결되지 않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 분명 이 소설은 의의가 있다. 비슷한 경험을 한 두 인물이 서로를 동정하지도 않으며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모습에서, 직접 겪지 않았던 경험을 엿볼 수 있었다. 전반적인 내용을 찝찝하거나 암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반적으로 따스하게 느껴짐은 그 둘의 연대가 슬그머니 다가왔기 때문인 것 같다.


정아름

책의 초반부는 여행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이후에는 한주와 유키노의 삶의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보는 묘미가 있는 책이었다. 모든 아픔은, 그게 데이트 폭력이든,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아픈 시선이든, 그 아픔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손 내미는 어떤 존재만 있다면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낄 수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생각해보았다. 끝내 등장하지 않는 한주의 옛 남자 친구 이름은 한주의 공포와 아픔인 것 같아서 내 마음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그것 역시 한주의 삶에 대한 의지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다시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공부해야 할 포인트들도 매우 많아 보인다. 독토를 통해 이렇게 또 좋은 작품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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