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Mar 10. 2021

짝사랑의 위대함이 만든 책

이원하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대학 다닐 때 헤어진 여자 친구를 생각하면서 수많은 사랑 노래를 만든 선배를 하나 알고 있다. 실연의 아픔이 그렇게 아름다운 가사와 선율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경이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게 여겨졌다. 스무 살의 사랑은 이미 차갑게 식었더라도 사랑의 기억은 가슴속 불씨로 남아 언제까지고 따뜻하고 향기로운 노래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노래뿐 아니라 모든 글도 그렇지 않을까 한다. 작년에 만난 시집 중 가장 좋았던, 제목부터 홀딱 반하게 만들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의 시인 이원하는 3년 동안 짝사랑하던 남자를 생각하며 쓴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이원하의 이 산문집은 온통 그 남자에 대한 짝사랑의 편지글로 가득하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서 그는 '똑같은 얘기를 좀 어렵게 쓰면 시가 되고, 알아듣기 쉽게 쓰면 에세이가 되는 것 같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게 곧장 그의 시론이요 문장론이라 생각했다. 한 남자 때문에 쓰게 된 시와 그 시가 너무 어려워 이해하지 못할까 봐 또 쓰게 된 산문들. 모든 사랑은 놀랍지만 그중에서도 짝사랑이야말로 위대한 사랑이다. 짝사랑을 하는 사람은 메아리가 없을 걸 알면서도 매일 산 위로 올라가 누군가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비련의 시지프스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짝사랑 덕분에 우리는 이원하의 글을 읽는 기쁨을 맛본다. 그의 바보 같고 아픈 마음에 탑승한다.



부부는 우리의 관계가  붙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나는 속으로 환희에 젖어서 나도 여태껏 은밀하게 혼자만 간직하고 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내가 시인이 되어야만 했던 이유, 산문까지 쓰게  이유에 대해서 전부 말이에요. 시와 산문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그에게 전한  무려  년이 되어가는데도 그는 모르는 눈치 같다는 말도 했어요.


 시와 산문에는 온통  사람뿐이에요. 그에게 직접 꺼내지 못한 말들만을 써내요. 시에 전하고 싶은 말을 열심히 적었는데 그가 알아듣지 못하는  같아서 조금  이해하기 쉬운 산문을 쓰게  거예요. 산문마저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백만이 답이겠지요.


이원하 산문집 『내가 아니라 그가 나의 꽃』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함께 좋은 작품을 찾아내는 기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