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먼로의「어머니의 가구(Family Furniture)」를 읽다가
아내는 형제자매들 중 공부를 제일 잘하는 편이었는데 집에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아빠가 '계집애가 똑똑한 척한다'며 미워했던 게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 있다고 한다(나도 어렸을 땐 제법 똑똑한 아이였으나 바보짓 역시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미움을 받을 기회까지는 없었다). 우리나라에선 특히 여자애가 너무 똑똑하면 되바라졌다고 구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 떠도는 '동아제약 성차별 면접기' 같은 걸 읽어봐도 그런 인식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지 알 수 있다.
가끔은 외국 소설책을 읽다가도 그런 장면과 마주친다. 남녀차별이나 페미니즘 문제는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 인류에 고루 해당되는 이슈인 것이다. 지난주에 앨리스 먼로의 「어머니의 가구(Family Furniture)」라는 단편을 읽다가 그런 내용을 다룬 문단을 발견하고 아내에게 그 구절을 읽어줬다. 나중에 작가로 성장한 주인공이 어렸을 때 가족들에게 당했던 부당한 대접을 회상하는 장면이었다. 아내는 그걸 듣더니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가족들이 나를 두고 똑똑하다고 할 때 그 말은 머리가 좋다는 뜻도 있었지만 대개는 비난의 뜻, 그러니까 고집이 세고 관심을 끌고 싶어 하며, 밉살스러운 짓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식구들은 "아, 쟤는 좀 지나치게 똑똑해."라고 말하곤 했다. 실은 똑똑한 척 좀 하지 말라는 뜻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