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서 떨어졌던 독후감을 공개하는 이유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의 독후감 대회 참관기

by 편성준

솔직하게 말하겠습니다. 돈이 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작년에 낸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아직도 '에세이 베스트 코너'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책 판 돈만으로는 생활이 안 되니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자 생각했지만 문제는 제가 할 수 있는 '이것'과 '저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정주영 설립자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의 독후감 대회를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상 상금이 천만 원이나 되고 심사위원장은 김수현 작가가 맡는 등 여러 가지로 굉장한 대회였습니다. 저는 이 대회에 참여해서 꼭 상금을 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제 결심을 말하진 않았습니다. 교보문고에 같이 갔던 아내에게만 "독후감을 한 번 써보려고 해."라고 속삭이며 정주영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집어 들었을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을 탈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책을 매우 꼼꼼히 읽었습니다. 귀퉁이를 접고 줄도 쳐가며 메모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독후감 대회의 수상작도 열심히 찾아보았습니다. 모두 점잖고 판에 박은 듯한 글로 느껴졌습니다. 뭔가 활기차고 유니크한 나만의 독후감을 써보고 싶은 의욕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던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삶은 매우 드라마틱하더군요. 그가 살아온 시기가 그랬고 그가 태어났던 한반도라는 땅이 그랬습니다. '그래, 드라마틱하게 쓰자!'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성공했던 작품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영웅 서사'였다는 점에 착안해 정주영을 영웅으로 묘사하자고 마음먹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에서는 할리우드 흥행 공식 이야기를 하며 힘을 주었고 마지막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상상의 동물 히드라까지 동원해 저의 지식과 문장력을 돋보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여섯 시간을 휘리릭 흘려보냈습니다. 이 정도면 뭔가 상을 하나쯤 받지 않을까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초고를 쓰고 하루 정도 묵혀 놨다가 다시 들여다보며 수정을 했습니다. 주최 측에서 요구한 것보다 원고가 짧은 것 같아 내용을 더 늘리기도 했습니다. '아산 정신에 대한 이해와 창의성, 문장력이 포인트'라는 대회 요강을 다시 읽어보고 혹시 제가 아산정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는 않나 반성도 했습니다. 제목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했을 뿐이라 말하는 겸손의 영웅 서사>라고 붙였습니다. 아산정신의 요체가 나보다는 우리 모두를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에 있었고 독후감의 컨셉인 영웅 서사를 포기하기도 싫어 결정한 제목이었습니다. 더구나 글을 읽어보면 정주영은 실제로 매우 겸손한 영웅이기도 했습니다.


마감 시간인 오후 6시에 맞춰 응모서류와 독후감을 온라인으로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제출을 하고 나서 홈페이지를 다시 살펴보니 마감시간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주최 측에 전화를 걸었더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해서 자정까지 연장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미리 알았더라면 나도 좀 더 들여다 보고 원고를 고치는 건데. 그러나 이미 제출을 한 상황이었으므로 미련을 버리지 생각했습니다(그러나 미련은 버리자고 마음먹는다고 쉽게 버려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심사 결과 귀하께는 수상의 기회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라는 문제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놀란 것은 떨어졌다는 사실보다는 설마 떨어지겠느냐 생각한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충격이 컸습니다. 저는 이미 독후감 대회의 상금을 받아 어디 어디 써야겠다는 계산까지 마음속으로 하고 있었거든요. 참을 수 없이 수치심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돈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이 상금이 필요해,라고 생각하고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독후감을 썼으니 잘 될 리가 없었습니다. 허장성세......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 글을 공유하는 이유는 역시 돈을 바라고 무슨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입니다. 어떤 일을 좋아서 하고 돈이 자연스럽게 따라오길 바라야지 돈부터 생각하는 삿된 마음으로는 될 일도 그르친다는 걸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중·고등학생 부문 1,619건 대학생·대학원생, 일반 부문 4,753건으로 총 6,372건의 독후감이 접수되었고 14세부터 91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다고 하더군요. 수상작을 살펴보니 대상은 민족사관고등학교 학생이 ‘지도자의 품격’이란 주제로 탔고 금상은 중증의 코로나 확진환자를 돌보는 간호사가 쓴 ‘출입제한구역을 넘으며’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제목을 읽어보고(작품을 다 읽을 수 있는 건 대상 작품 하나) 제 독후감의 제목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일단 제목부터 잘못 붙인 글이더군요. 하나도 인상적이지 않았고 내용도 얼른 파악하기 힘든 제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떨어질 만한 글이었던 거죠.


며칠 전 성북천을 산책하다가 이 독후감을 공개하자는 생각을 하며 스마트폰에 아이디어를 녹음했습니다. 떨어진 독후감을 왜 공개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떨어진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삿된 마음이 일을 어떻게 일을 그르치는가에 대한 생각들을 녹음했더군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이 글을 씁니다. 어쩌면 이것도 월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편의점 커피를 사다 마시며 쓰기엔 적당하지 않은 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래 '쓸 데 없는 짓을 많이 할수록 행복해진다' 주의이기도 하고 또 이런 쓸 데 없는 짓들이 언젠가는 의미 있는 일로 변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리 괴롭거나 허망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만 생각하고 뭔가를 하면 불행해진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달았으니 너무 안달하며 살지 말자 다짐을 해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혹시 독후감 대회 같은 거 열리는 거 알고 계시면 제게 따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일이 잘 되면 후사하겠...... 아아, 아직도 저는 정신을 못 차렸습니다. 큰일입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했을 뿐이라 말하는 겸손의 영웅 서사>


흥행에 성공한 할리우드 영화들을 분석해보면 '영웅의 여정'이라는 스토리텔링 서사를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뭔가를 이룩해내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를 읽으면서 할리우드 영화나 무협지에서 느꼈던 속도감과 희열을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이 영화나 소설 속의 영웅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살았고 또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적극적인 의지와 신념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영화 보듯 책 속으로 빠져들어갔던 것 같다.

경제 불황에 코로나 19 팬데믹까지 겹쳐 세상은 더 살기 힘들어졌다.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내 생각엔 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6·25 사변,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오일 쇼크 등등 격변의 역사 현장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정주영의 시대야말로 진정한 헬조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주영은 너무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거듭 가출을 시도하다가 네 번 만에 겨우 성공해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었다. 주어진 환경으로만 생각하면 절망밖에 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는 인천부두에서 맨손으로 하역작업을 할 때도 서울의 쌀가게에서 일할 때도 특유의 부지런함과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늘 더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만들어 갔다.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그가 벌인 일은 모두 대한민국 경제의 역사가 되었고 각각의 사업들은 다 한 편의 드라마였다. 그는 6·25 이전부터 건설회사를 세워 폐허가 된 우리나라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고 자동차 수리점으로 출발해 자동차 회사로 발전시킨 기업을 통해 남한 기계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는데 이는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그의 학력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힘든 성과들이다. 그가 1970년대 조선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그게 성공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조선소는커녕 큰 배를 만들어본 경험을 가진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2년 3개월이라는 최단 시일에 조선소를 건설하면서 동시에 유조선 2척을 건조해내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도대체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하길래 손대는 일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무턱대고 계속되는 운이란 없다. 그는 말한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이라고. 자신은 일단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시켜야 한다고 마음먹는다고. 그리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고한 신념만 있으면 세상에 못 할 일은 없다고.


그는 한 번 약속했던 일은 손해가 나더라도 끝까지 완수하고야 마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전쟁이 끝난 직후 고령교 복구공사로 죽을 고생을 하고도 빚만 떠안았을 때도 그는 '값비싼 수업료를 냈다'라고 생각했고 태국 고속도로 공사로 손해를 봤을 때도 돈보다는 신용을 지켰다는 사실에 더 큰 의의를 두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늘 새옹지마와 같다. 그런 시련들이 결국 새로운 일들을 몰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고령교 공사 경험 덕분에 한강인도교 복구공사를 수주할 수 있었으며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의 시공사로 현대건설이 선정된 것도 태국 도로공사에서 보여주었던 성실성 덕분이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이렇게 회사의 이익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그가 돈만 좇아 다닌 것은 아니다. 그는 한 번도 부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오히려 의식주를 얼마나 갖추고 누리며 사느냐는 문제가 아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게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가 사업을 할 때 먼저 생각하는 기준도 돈이 될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나라와 민족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였다.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보람은 남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지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주창했던 'Innovation'과도 같은 개념인데 정주영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이런 생각들을 삶의 중심에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삿된 마음이 없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바로 아래 인용한 글이다.


"어떤 도공(陶工)이 지금까지 없었던 최고의 작품을 내야지 하고 최고에 대한 욕심을 가득 품었다고 해서 그 도자기가 최고의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념무상으로 최고의 작품을 낸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오로지 도자기를 빚는 일 자체에만 혼신을 기울였을 때 최고의 작품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나는 그저 일이 좋고 재미있어서, 사업이 굴러가면서 커지는 것이 즐겁고 수없이 많은 도전과 모험, 시련과 승부, 그런 것들이 좋아서 평생을 일하는 재미로 산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싫어하는, 재벌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그저 일이 좋고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던 그는 자신 또한 '돈이 좀 많은 노동자'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일을 도와준 노동자들, 즉 평범한 사람들이 모든 것의 주체라고 여겼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일해서 크게 발전한 뒤 거두는 최선의 보람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과 희망을 주는 일이라는 생각의 연장선에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아산재단'이다. 요즘처럼 각자도생이라는 살벌한 단어가 판치는 세상에서 의료·복지·연구·장학 등 사람에게 꼭 필요하고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사업을 펼치는 재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평소 기업을 하는 최종 목표가 사회복지라고 즐겨 말했던 그는 이 재단을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나 포드 재단에 버금가게 성장시키는 게 목표라고 했는데 알고 보면 그가 말하는 '복지 개념'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자연스럽게 실천하던 필수 덕목이었다. 돈이 없어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기능공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한 것도 현대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 내기로도 유명했다. 한겨울에 보리밭을 떠다가 푸른색으로 뒤덮었던 유엔군 묘지 단장 사건은 널리 알려진 일화이고 방조제 공사를 할 때 못 쓰는 스웨덴 고철선을 끌어다 가라앉혀 물막이를 했던 묘수는 '정주영 공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기상천외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장 놀라웠던 사건은(출간 이후의 일이라 이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훔쳤던 소 판 돈 70원을 갚는 마음으로 소떼 500마리를 싣고 판문점을 건너간 아들의 퍼포먼스였다. 전쟁 이후 민간인으로는 처음 판문점을 넘어갔던 이 이벤트를 보고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기 소르망(Guy Sorman)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는 학식이 없다고 생각도 지혜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80 평생 인생역정으로 보여주는 고마운 충고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상상의 동물 히드라는 머리가 하나 잘리면 두 개의 머리가 생겨난다고 한다. 위기를 통해 더 강해지는 것인데 정주영의 삶이 꼭 그러했다. 정주영은 이 땅이 가장 혼란하던 시절 태어나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도 실망하거니 포기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시련 앞에 서면 힘이 솟는 스타일이었다. 자동차 사업을 시작할 때 포드사와 자동차 조립기술 계약을 맺기가 힘들다는 동생의 말에 그가 되물은 말은 "해보기나 했어?"였다고 한다. 일단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말부터 하지 말자는 것은 그의 평생 신념이자 일을 대하는 태도였던 것이다. 건설, 자동차, 조선, 원자력발전소, 중동 진출, 88 올림픽 유치 등등 국민 경제를 일으켰던 현대의 발자취들은 그대로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겹친다. 그러나 이 책은 현대의 역사가 대한민국 현대사라는 식의 거만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다만 나도 당신들만큼 어려운 일을 많이 당한 사람이지만 '나' 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묵묵히 꾸준하게 일한 덕분에 어느 정도 성취도 이루고 존경도 받게 되었다며 수줍게 웃는 선한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일 뿐이다. 서두에 영웅 서사 얘기를 했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영웅은 먼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태어나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웃음과 눈물을 함께 나누었던 정주영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선배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뜨거운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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