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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6. 2021

가구회사 회장님과 패왕별희

비난이나 비교보다는 칭찬이 더 효과가 좋은 이유

광고대행사를 다니며 카피라이터로 일할 때 침대 광고를 만드는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국내 굴지의 가구회사 대회의실에 가서 동료들과 함께 이주일 넘게 준비한 기획서와 시안들을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이 침대를 살 소비자는 누구이며 그들의 마음속엔 어떤 욕망이 들어 있는지, 또 이 회사에서 만드는 침대만의 특징과 소구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면 어떤 그림과 카피를 써야 하는지에 대해 연구한 아이디어와 커뮤니케이션 방법론을 한 시간에 걸쳐 전부 발표했습니다. 저의 설명이 모두 끝나자 좌중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고 회의실에 흐르는 이상한 포스에 짓눌린 탓인지 감히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몇 초 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정가운데 앉아서 프리젠테이션을 지켜보던 회장님이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잘 들었어요. 그러나 미진합니다. 아니, 중요한 핵심은 다 놓쳤어요! 어떻게 가구를, 침대를 이렇게 모르나. 침대는 가구의 꽃입니다. 소비자 조사를 하긴 한 거예요? 도대체 몇 명이나 설문을 한 거예요? 나는 광고를 모르지만 소비자는 잘 압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목수 출신으로 국내 굴지의 가구회사를 세운 회장님의 카리스마는 대단했습니다. 프리젠터를 맡아 오랜만에 양복을 빼입고 가서 의욕적으로 TV광고 시안들을 설명했던 저는 쏟아지는 회장님의 질책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습니다. 아아, 완전히 망했구나.


그런데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장비와 시안들을 챙기고 있는 우리를 향해 임원들이 와서 악수를 청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수고했어요. 오늘 회장님 뭐 기분 좋은 일이 있으신 모양인데?!" 기가 막혔습니다.

"네에~? 저게 기분이 좋으신 거라고요?" 제가 이렇게 놀라자 임원 중 한 분이 한 마디를 더 보태셨습니다.

"그럼요. 오늘은 화도 별로 안 내시고......"

"아. 네......"

"평소 같았으면 우린 아직도 혼나고 있을걸. 오늘은 기분이 무척 좋으신 거예요."

처음부터 다시 아이데이션을 할 필요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면서도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 분들은 평소에 얼마나 회장님에게 당하며 살길래 이 정도에도 기뻐하는 걸까. 남의 밑에서 일하며 월급을 받는다는 건 다 이런 걸까. 문득 첸 카이거의 『패왕별희』가 생각났습니다. 영화엔 어렸을 때부터 극단에 들어가 경극을 배우다가 너무 힘들어 잠깐 도망친 아이들이 우연히 유명 배우들의 경극을 구경하며 우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멋있게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나 맞았길래..."라는 대사가 너무 웃기면서도 슬펐죠. 그런데 그날 만난 가구회사 임원들이 딱 그 아이들 같았습니다. 아, 도대체 이 분들은 얼마나 맞았길래 이런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걸까.


생각해 보니 저도 매를 많이 맞았습니다. 군대 사격장에서 총 쏘기 전 조교에게 시범 케이스로 걸려 얻어맞은 것 말고도 보이지 않는 매는 늘 존재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낫으로 깎고 대패로 다듬은 나무 몽둥이에 유성매직으로 '사랑의 매'라 써서 들고 다니는 반인권적 선생님도 있었고 사회에 나와 회사 다닐 때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선배들의 꼰대질에 맞아 쓰러지기도 수십 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습니다. 깐깐한 성격이었던 아내는 의외로 '도대체 넌 왜 그 모양이냐?'라고 야단을 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대신 "당신은 옷차림부터 생긴 것까지 이것저것 다 엉망이지만 그래도 아이디어를 잘 내는 편이니까 괜찮아." "사람이 착하고 정력이 세." "글을 참 잘 써서 좋아."라고 틈 날 때마다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난생처음 그런 칭찬 세례를 받아 본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상하더군요. 그냥 하는 말일뿐인데도 귀한 산삼을 고아먹거나 값비싼 영양제를 맞은 것처럼 그때마다 힘이 났습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아내의 칭찬 덕에 저는 글을 쓰는 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내서 좋은 반응을 얻고 글쓰기 강사로서의 이력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편입니까? 가까운 사람이나 동료들에게 칭찬을 많이 하나요 아니면 되도록 까다롭게 비판을 하는 편인가요.  경험으로 봐서는 비난이나 비교보다는 잘했다고 북돋우는 것이   효과가 좋습니다. 가는 말에 채찍질 마십시오. 우리는 말이 아니니까요. 말도 채찍보다는 당근을  좋아할 겁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고 싶다면,  사람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면 비난 대신 칭찬을 하십시오.  드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칭찬은 고래도 발기하게 한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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