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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1. 2021

「내주다·내어주다」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

사소한 맞춤법이 사람 잡습니다


저는 가끔 아무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어려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산 적이 있는데 하루는 혼자 놀다가 벽장 안의 팔각형 성냥통의 성냥을 와락 쏟은 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에게 야단을 맞을 게 두려워진 저는 그걸 다시 채워 넣으려고 저녁 내내 씨름을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성냥은 거의 다 됐다가도 마지막에 가서 쏟아지곤 했으니까요.  나중에 집으로 돌아와 그 모습을 목격한 할머니가 그러시더군요. 그깟 성냥통 좀 쏟아지면 어때서 그걸 채우느라 울고 지랄이냐.  

브런치에서 어떤 작가의 글을 읽다가 '독자가 내어준 시간의 가치'라는 대목을 만났습니다. 저는 전에도 시간을 '내어주다'라는 말이 왠지 틀린 표현 같아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주다' 맞고 '내어주다' 뭔가 잘못 , 과잉된 표현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보리국어바로쓰기사전> 찾아보니 내닫다, 내딛다 같은 말만 있고 내주다에 대한 언급이 없더군요. 섭섭했습니다. 힘들 때마다 의지하던 사전이었는데 이번만큼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없이 인터넷으로 문체부 국립국어원에 가서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내주다와 내어주다가 있더군요. 으아, 살았습니다. 거기엔   전쯤 저처럼 내주다와 내어주다가 헷갈려 질문을  사람이 있었고 다행히  밑에 친절한 답변이 달려 있었습니다.


─위 표제어 '내주다'와 같은 의미의 표현으로 '내어 주다'를 쓸 수 있는지요?

그리고 '내주다'와 '내어 주다'는 문법적으로는 어떤 차이가 있고 그 쓰임은 어떻게 되는지요?

또한 '내어 주다'의 띄어쓰기는 '내어 주다(원칙)/내어주다(허용)'가 바른지요?


안녕하십니까?

한 단어로 굳어져 쓰이는 '내주다'의 의미는 보이신 바와 같습니다. 즉, '넣어 두었던 물건 따위를 꺼내어 주다', '가지고 있던 것을 남에게 넘겨주다/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남에게 넘겨주다/마련하여 주다'의 의미인 한 단어 '내주다'를 쓸 맥락에서는 이와 같이 쓰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한편, 한 단어 '내주다'를 쓸 맥락이 아니고 동사 '나다'의 사동사인 '내다'에 보조 동사 '주다'를 결합하여 쓴 경우라면 '내어 주다'로 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또, 이는 '내어주다'로 붙여서 쓰는 것도 허용합니다. '내다'는 의미가 여러 가지이므로 '표준 국어 대사전'에 '나다'를 검색하여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길, 통로, 창문 따위가 생기게 하다'를 뜻하는 '내다'와 앞 동사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행위에 영향을 미침을 나타내는 보조 동사 '주다'를 이어 쓴 '내어 주다'가 있습니다.(길을 내어 주다/광고를 내어 주다/가게를 내어 주다) 덧붙여, '내어 주다'는 '내 주다'와 같이 줄여 쓸 수 있으며, '내주다'로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합니다.

결국 '내주다'와 '내어주다'는 같은 표현이었고 둘 다 쓸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오늘까지 꼭 써야 하는 리뷰가 하나 있는데 이것 때문에 소중한 아침 시간을 다 쓰고 말았습니다. 억울합니다. 힘이 다 빠져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내주다와 내어주다에 대한 의문을 풀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 이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빨리 시간을 내서 리뷰를 마저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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