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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1. 2021

말해지지 않은 것까지 말해야 좋은 글이죠

how 2 write

어제 영화 리뷰를 하나 쓰면서 우리 부모 세대에는 생일날 고깃국을 먹은 게 평소에 먹기 힘든 음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평범하고 비루한 사람이라도 생일날만큼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걸 그냥 생각난 대로 쓰면 방금 내가 쓴 것처럼 되는 것이고(평범하고 비루한 사람이라도 생일날만큼은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좀 더 깊게 생각하면 김종삼의 시처럼 된다.

돌아가신 분이라 전화나 이메일로 물어볼 순 없지만 아마도 선생은 '인간의 존엄'에 대해 생각하며 생일의 가치를 떠올렸을 것이고 보다 극적인 상황을 찾아 몇 날 며칠을 헤매다가 일제강점기 거지소녀와 그 아버지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掌篇·2」라는 드라마틱하고 통쾌한 시가 탄생했다.


때는 일제강점기. 경복궁에 조선총독부가 있던 시절 거지들이 우글거리던 청계천변엔 뭐든 십 전 한 푼 만 받는 국밥집에 식전 댓바람부터 거지소녀가 눈먼 아비를 데리고 나타난다. 주인 영감이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소녀는 태연했다. 오늘은 동냥하러 온 게 아니고 당당하게 돈을 내고 사 먹으러 온 거라 말하며 동전 두 닢을 내민다. 그리고 오늘이 아비 생일이라고 말한다. 어떤가. 생일날만큼은 누구나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소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시의 제목은 '掌篇·2'다. 손바닥 장 자를 써서 장편이다. 손바닥 안에 들어갈 정도로 짧다는 뜻이다. 그러나 거기 담긴 이야기는 단숨에 백 년의 시공간을 뛰어넘는다.

글은 언어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글은 말해지지 않는 것까지 말할 수 있으므로 말보다 위대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글을 쓰려하는 것이다. 글을 쓰자. 쓰는 게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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