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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6. 2021

내 가슴에 인 세제 거품은 못 본 척 넘어가 주오

골목길에 버려진 중국집 배달 그릇을 보고 든 생각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입구에 중국집 멜라민 그릇이 담긴 비닐봉지가 며칠째 방치되어 있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런가 보다 했는데 사흘이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배달원이 수거해 가는  깜빡 잊은  같았다.  상태로 버려지면 다행이지만 뒤늦게라도 찾아간다면  그릇은 설거지를 거친  다시 손님 식탁 위에 오를 것이다. 더럽고 부패한 음식 찌꺼기를 며칠이나 품고 있던 멜라민 그릇. 나는  번이나 그걸 몰래 가져다 우리  쓰레기봉투에 넣어 같이 버리는 상상을 하다가 참았다.  괜히 그릇을 들고 오다가 들키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서였다.  

배달음식 그릇 상습 절도범, 알고 보니 유명 작가로 밝혀져... 아, 내가 유명 작가는 아니지. 그래도 7쇄를 찍었으니까 아주 무명이라고 하기는 그렇고... 애매하네. 역시 책을 더 팔았어야 해... 뭐 이런 난삽한 생각을 하다가 영영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었다.

어제저녁 아내와 동네로 산책을 나갔다가 '성북동 익스체인지'에서 충동적으로 바지를 하나 사 가지고  들어오다 보니 골목길에 멜라민 그릇이 없었다. 배달원이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수거를 해간 것 같았다.  왠지 섭섭한 마음이 일었고 이상하게 공범이 된 것 같은 느낌조차 들었다.  어쩌면 나와 같은 시대를 사는 어른들은 모두 다 중국집 배달 그릇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저분하고 치사한 생각을 품고 살다가 게으른 손으로 대충 설거지를 하고는 깨끗한 척하는. 그러니 서로 조심하자. 무방비 상태로 갑자기 친해져 서로의 손이나 가슴을 비벼대다가 미처 씻어내지 못한 세제 거품이 퐁퐁 일어나면 곤란해질 테니까. 제발 내 가슴에 인 세제 거품은 못 본 척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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