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ug 31. 2021

정유정이라는 쌈빡한 스토리텔러를 소유하는  즐거움

정유정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리뷰

소설가들은 소설을 쓰기 전에 해야  일이 많다. 일단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소설에 등장하는 직업군의 속성과 실제 모습을 제대로 알려줄 전문가도 필요하다. 정유정처럼 강력 사건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탐구하는 스타일의 작가라면 경찰이나 법조인, 기자처럼 강력범과 수시로 접하는 사람들을 만나 질문을 던지고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범죄심리학 등도 따로 공부해야 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가가  근방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훈훈한 말을 남겼다지만 후배 소설가 정세랑의 생각은 다른다. 그는 "쓰다가 막힌다는  그만큼 공부를  했다는 얘기고 아직 사람도  만났다는 얘기다."라고 잘라 말한다. 정유정은    떠서 "소설가가  글이라면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하지만 특히 과학적인 부분에선 절대로 틀리면  된다."라고 강조한다. 그들은 이야기꾼이지만 동시에 핍진성으로 가득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과 영장류의 교감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주제를 다뤘던 소설 『진이, 지니』를 끝낸 정유정의 눈엔 자신의 행복을 전시하느라 바쁜 현대인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SNS 올라오는 스냅사진들의 터무니없는 밝음 속엔 '인스타그램엔 절망이 없다'라는 정지우의  제목처럼 어딘가 과장되고 나르시시스트적인 불안과 결핍이 감지되었던 것이다. 정유정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못할  없는 신유정이라는 나르시시스트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인물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경쾌한 문체와 스토리를 싣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는 '아름다운 문장'이라는 말을 믿지 않기에 자신의 문장들은 철저하게 스토리에만 복무하도록 한다. 대신 이야기의 구조가 아름답도록 정확하고 빈틈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또다시 매의 눈이 된다. 누군가 이혼을  경우 아이들의 면접 교섭권은 어떻게  생성되고 조정되는지, 이행 명령을 어겼을 경우 과태료는 얼마나 나오는지, 감치명령은 며칠 만에 나오는지 등을 시시콜콜 조사한다. 신유정·신재인 자매가 어렸을  봤던 <미세스 다웃파이어>라는 영화가  년도에 개봉했는지 조사하는  기본이고 거기 나오는 보모의 모습이 어땠는지 정확히 그리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기도 한다.  『완전한 행복』은 그런 과정을 통해 탄생한 완전체 스릴러다.


탐정물과 스릴러의 가장 큰 차이는 관객이 범인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라고 한다. 정유정의 소설들은 언제나 초반에 범인이 드러나지만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까지 도무지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다. 마치 견고하게 설계된 건축물에 들어선 느낌인데 복도를 지나 방문을 하나씩 열 때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스릴러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장들을 자주 구사하는 작가 덕분에 마냥 심각하지만도 않다.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번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력을 타고 스스로 흥미진진함의 한계를 넓혀가다가 아주 강렬한 피날레를 선보이며 막을 내린다. 1940년대 고딕 스릴러와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를 동시에 풍기는 캐릭터들의 한복판엔 정유정이라는 성실한 스토리텔러가 버티고 있다. 소설을 아직 안 읽었다면 이번 주말엔 꼭 읽어보시기 바란다. 『7년의 밤』이후로 정유정이라는 이름만으로 무조건 책을 구입해도 된다고 믿어왔는데 이번에도 그 믿음은 배신당하지 않았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책으로 읽어야 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