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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05. 2021

비뚤어진 형님 문화를 양성하는 방송 언어

피렌체의 식탁 [성우제 칼럼] ’형’이라는 마법......

https://firenzedt.com/19414


JTBC 《팬텀 싱어》를 보면서 가장 보기 싫었던 건 결승팀으로 올라간 남자 싱어들이 모여서 제일 먼저 하는 게 '민쯩'을 까서 형과 동생으로 서열을 정하는 장면이었다. 사적인 자리에서 그러는 거야 말릴 이유가  없지만 문제는 방송에서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고 또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었다. 오늘 아침에 받은 뉴스 레터 《피렌체의 식탁》에서 [성우제 칼럼]이 이를 정면으로 다루었기에 나도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성우제 필자는 과거 신문 방송 초년 기자들이 경찰서 출입(일명 ‘사쓰마와리’)을 할 때 선배들이 가르치는 것 중 하나가 “형사를 형님이라고 불러라”였다고 회상한다. 형님이라는 호칭은 사회에서 만난 사이를 '유사 가족'으로 만드는 마법의 호칭이다. 그것도 예의범절을 갖춘 가족 형태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밀어주고 끌어주는 이익 단체 같은 가족이다. 전두환 패거리 같은 인간들은 이를 적극 활용해 권력을 잡고 우리 사회에 부정과 부패를 뿌리박게 했다.  예전에 제1공화국을 다룬  MBC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뭔가 구린 짓을 하고도 "내가 이 박사(이승만 대통령) 찾아가서 가서 무릎 한 번 꿇고 형님, 잘못했습니다, 하면 돼."라고 하던 대사가 기억난다. 공정을 해치고 범죄를 저질러도 형님이라는 말이면 다 통하는 비뚤어진 전통의 태동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형님 문화는 어느덧 우리의 전통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잘못된 관행을 부추기는 곳이 바로 방송국이고 그 장본인은 '아무 생각이 없는' 방송국 PD와 작가들이다. 성우제 필자도 지적했듯이 ‘유라인’이니 ‘강라인’이니 ‘규라인’이니 하는 단어는 조폭의 냄새를 풍기는데도 그냥 유머로 통용되며 '예능 사조직'을 형성했다(아마 그들은 지금도 그냥 농담이지 그게 무슨 사조직이냐?라고 할 것이다). 쇼프로에서 볼 수 있는 자막의 폭력성도 심각하다. 예전에 즐겨 보던 《TV 동물농장》에서 '누가 민중을 개 돼지라고 했나?'라는 자막을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동물을 다루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맥락에 전혀 맞지도 않고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말을 그저 '재미'로 쓰고 있는 것이다. 방송은 공적 영역이다. 날이 갈수록 시청자들은 방송에 나온 것은 무조건 사실이라 믿거나 사회적으로 공인받았다고 여긴다. 나는 심지어 마누라라는 단어가 '마주 누워라'의 준말이라 믿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방송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말을 잘 놓지 못하는 편이다. 그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너무 종적인 인간관계에 매여있다. 존댓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회의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형님'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자못 '인간적'일 수 있다. 그러나 방송은 힘이 센 존재인 만큼 나름의 철학과 윤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는 방송의 속성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국 PD와 작가들은 대사나 자막 하나를 만들 때도 '시대의 흐름을 선도한다'는 최소한의 소명의식을 깔고 일하기를 바란다. 당신들이 돈도 많이 벌고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서 드리는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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