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꿈에 나타난 성북동소행성 남편의 위상
이른 아침 아내는 눈도 뜨지 않은 상태에서 "당신, 바보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젠 익숙한 일이라 옆에서 누워 자던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당신, 또 꿈꿨구나? 아내가 응,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에 방을 하나 새로 들였는데 내가 아내에게 얘기도 안 하고 웬 못생긴 레즈비언 커플에게 세를 주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세금으로 백만 원을 받은 것인데 겨우 그 돈을 받아 놓고 기한이 언제까지냐는 아내의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모른다고 대답을 해서 당신, 바보야?!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나는 꿈속에서 '공처가 컨셉이라 그렇다'는 다소 말이 안 되는 변명을 해 아내를 더욱 분노케 한 모양이다. 억울하다. 실생활에서 나는 '컨셉'이라는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나는 아내의 꿈속에서 바람도 피우고 약 올리고 도망도 치고 전세 계약까지 하느라 아주 바쁘다. 그런데 캐릭터는 죄다 허술하고 바보스러운 쪽이다. 평소 순자와 혜자에 눌려 사는 내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다. 아내는 백만 원을 받았으면 계약서가 있을 것 아니냐며 그걸 찾다가 깼다고 한다. 계약서를 찾았으면 또 야단을 맞았을 텐데, 그나마 거기서 깨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