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Oct 22. 2021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반말을 하는 걸까?

동네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

새벽형 인간은 아니지만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의 소음이 좋고(우리 집은 서울이지만 골목 안쪽에 있어서 자동차 오토바이 소리는 잘 안 들린다) 일상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방해 없이 내 마음대로 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일찍 눈이 떠지면 그대로 마루로 나와 책을 읽거나 뭘 끄적이곤 하는 편이다. 간단한 간식과 함께 마시는 커피 한 잔은 아침에 누리는 작은 사치다.  십여 년 전 혼자 살 땐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담배부터 피워 물었는데 어느 날 문득 금연을 시작한 후로는 그런 악습은 사라졌다. 주방에서 커피를 내려 마실 수도 있지만 나는 동네 세븐일레븐으로 갈 때가 더 많다. 커피를 내리느라 덜그럭거리다 아내를 깨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시간에 편의점 사장님과 나누는 평범한 인사말이 즐거워서이기도 하다. 단골로 다니는 세븐일레븐 사장님은 평일이면 늘 밤새 일하고 아침 8시쯤에 퇴근을 하신다. 그래서 어떤 날엔  근무 중 두 번을 만날 때도 있다. 밤엔 술, 아침엔 커피. 나처럼 변함없이 단일 품목만 사가는 손님도 드물지 않을까 싶어 가끔 혼자 웃는다.  젊어서는 여행사를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다는 사장님은 말씀도 재밌게 하시고 무엇보다 내 책의 열혈 독자다. 가끔은 "새 책 또 안 나와요?"라고 물으며 내 글쓰기를 응원하신다.


그제 아침에도 일곱 시쯤 세븐일레븐에 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큰 걸로 한 잔이요."라고 했더니 늘 그랬던 것처럼 "네, 천오백만 원입니다."라는 농담을 한다. 천오백 원짜리 커피를 천오백만 원이라 하는 것이다.  내가 이천 원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면 이번엔  "여기 거스름돈 오백만 원이요." 하며 오백 원짜리 동전을 내민다. 전형적인 '아재개그'지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의 긴장을 깨는 '루틴'이 되었다. 사장님이 동전을 내밀며 간밤에 있었던 손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님이 뜸한 시간엔 편의점에 있는 PC로  좋아하는 올드팝을 좀 크게 틀어 놓는 편인데 오늘 새벽엔 어떤 손님이 담배를 한 갑 달라고 하면서 "젊은 사람이 이런 음악을 다 아네?"라고 대뜸 반말을 하더라는 것이다.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냐 물었더니 쉰다섯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장님이"내가 열 살은 더 많은데 뭐가 젊다는 거예요?"라고 항의를 하는데 마침 문이 열리더니 사장님 동네 후배가 들어섰고 그 후배를 본 손님이 "어, 형." 하고 자기도 모르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졸지에 모두의 나이가 밝혀졌다.  편의점 사장님 - 동네 후배 - 쉰다섯 살 손님 순으로.  


문제는 나이가 아니다. "도대체  사람은  반말을 하는 거죠?" 내가 이렇게 물으니 편의점 사장님은 "몰라요. 여기서 일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만나니까."라고 말하며 쓰게 웃었다. 물론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얼핏 보면 사장님이  젊어 보이긴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뜸 반말을 하는  아니지 않나. 나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한다(친근해지고 싶어서 반말을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과 친근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상대방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서). '금연 표시가 없어도 금연이 기본입니다'라는 표어처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나이 불문하고 존댓말을 하는  옳다. 물론 모두가 반말을 하는 경우엔 예외다. 얼마  유행하던 소셜 네트워크 '클럽하우스'에서 '예의 있는 반말' 쓰는 방에 거서 아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나이 어린 학생이나 직장인은 물론 저명한 교수나 박사까지 참여자 모두 반말을 쓰다 보니 쓸데없는 배려나 격식 없이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했다. 얼마  SBS에서 봤던 <당신이 혹하는 사이 2> 마찬가지였다. 제작에 참여한 방송작가이자 뚜라미 후배인 장윤정에게 들어보니 반말은 의도했던  아니었다고 한다. 친구들끼리 골방에 모여 얘기하는 것처럼 세트를 만들어 줬더니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반말로 하더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하면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반말은 민주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말이 영어나 일어처럼 존댓말과 반말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날이 오면 반말을 해도 되겠지만 그때까지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무조건 존댓말을 해야 한다. 이건 사회생활의 요령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말이나 글이나  어렵다.


*오늘의 맞춤법 : 존댓말(O) 존대말(X)

사이시옷을 붙일 때 뒷말의 첫소리가 ㄴ,ㅁ이고 그 앞에서 ㄴ소리가 덧날 때 표기한다. 즉 ‘존댄말’로 니은이 두 번 발음되므로 사이시옷을 붙이는 것이 맞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메인에 들어갈 때마다 아내 글이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