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어제저녁엔 밥을 먹고 나니 TV를 보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나는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져 아내에게 "지금부터 스터디카페에 가서 네 시간만 책을 읽다 올게."라고 말했다. 우리 동네에는 초월스터디카페라고 있는데 나는 여기 단골이다. 이름은 좀 아스트랄하지만 괜찮은 곳이라 뭔가 급하게 강의 준비를 해야 하거나 글을 쓸 일이 있으면 여기 가서 쓰곤 한다. 네 시간에 삼천 원이니 커피 한 잔 값밖에 안 된다. 들고 간 책은 이기호의 단편집『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였다. 이 책은 예전에 도서관에서 몇 편 읽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 '독하다 토요일'에서 회원 한 분이 이 책을 작년에 사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아직 도서 리스트를 정하지 않았다면 핑계 김에 같이 읽고 싶어서요, 라고 말하는 바람에 2022년 첫 번째 도서로 정하고 동양서림에서 구입한 책이다.
맨 앞에 있는 「최미진은 어디로」는 예전에 다른 곳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찌질하고 재밌다. 특히 '속으로 혹시 박형서가 올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부분은 너무 웃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점점 슬퍼진다. 표제작인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도 그렇고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에 이르러서는 사연의 기구함과 슬픔이 찌질함을 넘어 내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 정도다. 이기호는 나쁜 사람이다. 데뷔 시절 『최순덕 성령충만기』 때부터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못된 습성이 있다.
밤 12시 반쯤 내가 컵라면을 하나 들고 집으로 들어오며 "소설이 너무 슬퍼서 술을 마시려고......"라고 말했더니 아내가 "미쳤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뜯어말리진 않았다. 소주를 한 병 마시며 OCN에서 틀어주는 전도연 주연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다시 보았다. 아내는 브런치에 쓴 <남편 밥상 vs., 내 밥상>이라는 글이 어디 노출되어 25만 뷰나 나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https://brunch.co.kr/@savvyoon/812). 글이 떴으면 좋아해야지 왜 한숨을 내쉬는가. 왜 떴는지 몰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인생 자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소설이 웃기고 슬퍼서 약간 미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