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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3. 2022

새벽 여섯 시에 걸려온 전화

당신에게도 아무 때나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주일 지났을 때의 일이다. 일이 있어서 불광동에 있는 본가에 갔던 나는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새벽에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와 은평둘레길을 걸었다. 동네를 벗어나 야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문득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내(당시는 여자 친구)였다.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니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하면서도 아내는 반가워했다. 자신도 나처럼 밤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혹시나 하고 전화를 걸어 봤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전화를  이유는 내가 계속 '도망' 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었던 나는 아내를 만난 후에도 진도 나가는  망설이고 있었다. 적지 않은 세월을 혼자 살아왔으니 솔로 생활에 불편한 점이 별로 없었고 주변에 행복한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도 망설임의  이유였다. 그러나 가장  문제는 ' 하나 살기도 이렇게 힘든데 주제넘게 누구를 책임지며 평생을 같이 살아?' 하는 비겁한 마음이었다.


아내는 전화기를 통해 말했다. "이제 그만 도망쳐요. 오빠는 지금 나와 사귀고 있는 거야." 어찌 보면 뻔한 말이었지만 아내의 이런 압박(?)에 나는 오히려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 어찌 되었든 가보자. 둘이 마음 맞춰 살아보면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해서 아내와 나는 연애와 동거를 거쳐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아내와 나 사이에 생긴 또 다른 묵계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이르거나 늦은 시간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쯤 있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전화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 급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결정적일 때면 전화를 안 받는 사람이 정말 싫다.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물어보면 대게 '배터리가 방전돼서'나 '회의를 하느라' '일에 열중해서' 같은 이유를 댄다. 그러나 전화를 못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라는 게 과연 살면서 얼마나 될까. 나는 자신이 열심히 일하는 걸 그렇게 생색내는 것도 일종의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밥벌이'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을 하다가도 잠깐 전화를 받을 여유 정도는 가지고 살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요즘은 통화보다는 메신저를 더 많이 쓰긴 하지만.  


책을 쓰려고 청주로 내려온 나는 오늘도 아내와 아침저녁으로 두 번 통화를 했다. 특별한 얘기는 없다. 그저 각자 먹은 음식과 오늘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늘어놓다가 끊는다. 그래도 전화를 안 하면 뭔가 섭섭하고 마음이 께름칙하다. 오늘 전화를 끊으면서 아무 때나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반가워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남들보다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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