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공장 전시 SPRING>
양평에 있는 폐공장에서 열리는 특별한 전시회에 왔다. 발달장애인들이 그린 수많은 그림과 예술작품들이 예전에 방직공장이었던 건물 내부 곳곳에 전시되어 있었다. 너무나 많은 그림들이 벽이나 천으로 된 캔버스에 걸려 있었고 예전에 공장에서 쓰던 물레나 기계 위에도 작품들이 놓여 있는 특이한 전시였다.
먼저 정은혜 작가가 연필로 그린 초상화들을 보았는데 스케치의 수가 압도적이었다. 삼사 년 사이 이천 명이 넘는 사람을 그렸다고 한다. 어찌 이렇게 많은 사람의 얼굴을 그릴 생각을 했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났을 때마다 그의 초상화를 그리며 눈을 맞추고 누군가의 내면을 생각했을 작가의 마음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아내는 초상화들을 보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전시실로 가서 이명선 작가의 클레이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찰흙으로 빚은 수많은 공룡들이 대단했다. 복도부터 펼쳐진 공룡들을 구경하다가 방으로 들어와 동영상 카메라 옆에 서 있는 분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그분은 다름 아닌 정은혜 작가의 아버지이자 전시를 기획한 서동일 감독이었다.
서 감독님은 은혜 작가의 어머니인 장차현실 작가와 함께 은혜 씨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하면서 딸의 그림 작업을 몇 년간 지켜보게 되었는데 이제는 엄마 아빠 딸 식구 셋 중 유일하게 생활비를 버는 사람이 정은혜 작가가 되었다고 하며 웃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다시 카메라를 잡게 된 새 다큐멘터리에서는 이번 전시회도 다룰 계획이라고 한다.
저마다의 작품도 작품이었지만 공간이 주는 힘도 대단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폐공장을 전시실로 쓰는 아이디어도 신선했고 작품들 성격에 따라 기존 시설들을 이용한 점도 좋았다. 다만 대관료 문제로 이틀밖에 전시를 하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웠다(여기는 평소에 영화 촬영장으로 자주 활용된다고 한다).
나는 서동일 감독님에게 공교롭게 이번 공익광고 공모 주제가 '사회적 약자 보호: 발달장애자' 편이라서 장애인들에 대한 스터디를 조금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이런 전시를 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서 감독도 기업 홍보실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광고인 출신이었다.
사실 이 전시회를 보게 된 것은 치유자 정혜신 선생과 이명수 선생 때문이었다. 오늘 여기서는 전시회 말고도 두 분의 강의가 있었는데 우리 부부는 당연히 두 분의 강의를 들었다. 지난번에도 한 번 들은 강의였고 아내나 나 모두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여러 번 읽었지만 강의는 여전히 넋을 잃을 정도로 재미가 있고 즐거웠다. 우리 부부는 질문 시간에 별로 질문할 내용이 없어 뻘쭘해하는 편인데 비해 다른 분들은 저마다 가슴에 맺힌 고민과 경험이 너무 많아서 다양한 질문들이 나온다. 그걸 듣다 보면 참 나름대로 다들 힘든 일이 많구나 생각하게 되고 내가 가진 고민들은 참 나이브하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늘 들은 강의 내용 중에서는 '경계'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적 페르소나에 대한 이야기, 개별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시 귀에 와서 꽂혔다. 두 분의 강의 내용은 나중에 다시 한번 찬찬히 리뷰를 써볼 생각이다.
강의가 끝나고 장애자들 멤버로 이루어진 퓨전 사물놀이팀 땀띠'의 공연을 보다가 서촌에 사는 설재우 씨 커플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아내는 장차현실 작가에게 이 전시를 서울에서도 할 수 있을까를 조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했다. 오늘 함께 오지 못한 지인 중 발달장애자 가족이 있는데 그런 의향을 대신 물어봐 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장차현실 작가는 자기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므로 다른 분들과 천천히 의논을 해보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양평에 살고 있는 정혜신 이명수 선생께 우리 간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이명수 선생이 "밥 사줄까?"라고 다정하게 묻길래 고맙지만 괜찮다고 하고 나중에 성북동 소행성에나 한 번 놀러 오시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공장 바로 옆에 있는 망향비빔국수집에 들어가 비빔국수와 잔치국수, 고기만두를 먹고 전철을 탔다. 어린이날 좋은 전시와 강의에 공연까지 봤으니 인문학적으론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법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우리는 배가 부른 뒤에야 서울 가는 전철을 잡아타고 비로소 희희낙락하였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