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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9. 2022

청주에서 만난 감동적인 사람들

청주에 글 쓰러 왔다가 감동 먹은 사연

 

청주는 처음이었다. 아내는 나 혼자 한 달 반 정도 새 책의 원고를 쓸 수 있는 거처를 물색하다가 우리 집에 오는 '소행성 책 쓰기 워크숍'의 멤버 김해숙 선생을 떠올렸다. 청주에서 인문학 모임인 '해성 인문학 네트워크'를 책임지고 있는 분이니 발도 넓고 신용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는데 아내의 예상은 적중했다. 오랜 공동체 경험으로 인적 네트워크와 행동력을 겸비한 김 선생은 당장에 청주에 있는 방을 물색해서 계약을 성사시켜 주었다.

밥은 내가 알아서  먹되 하루   정도는 해인네(해성 인문학 네트워크) 와서 먹으라고 했는데 맙소사, 밥값이 2,500원이었다. 아내와  상자를 들고 처음 해인네에 인사를 갔을  누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웃음이 많고 목소리가 , 한눈에 봐도 장애가 있어 보이는 아이였다. PC 앞에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나하고는 밥을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다. 해인네는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저렴하게 밥을 먹여주는 것은 물론 전자 밥통과 이불, 식기, , 김치, 전기스토브 등도 빌려 주었다. 은누리의 어머니인 박은영 선생은 집에 있던 밥상을 빌려 주기도 했다.


나는 2,500원짜리 식권을 여덟  사서 끼니때마다 플라스틱 서랍에  장씩 넣고는 밥과 반찬을 무한정 퍼먹었다. 선생님들은 인문학 세미나나 스터디 준비를 하다가도 내가 가면 미리 마련해 놓은 밥과 반찬을 내주고는 함께 앉아서 먹었다.  하루는 밥을 먹는데 김해숙 선생이 온누리 학교 얘기를 하며 "교장 선생님이 날짜별로  일지를 써놓으셨더라"라는 얘기를 했다. 무슨 일지냐고 무심코 물었더니 은누리등산 가서 없어졌다가 열하루 만에 극적으로 구출된 사건 일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라서 옆에서 밥을 먹던 박은영 선생에게 " 시간을 어떻게 견디셨어요?"라고 물었고 박은영 선생은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그냥 웃기만 했다.

행방불명된 은누리를 찾으러 청주의 군과 경찰이 총동원되다시피 했고 박은영 선생 옆에는 김해숙 선생이 하루 종일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불에서 몸만  빠져나오면 동굴처럼 변하는  아시죠? 열흘 동안  집에 가면 슬라이딩해서 그렇게 잠만 자고 그대로 빠져나와서 박은영 선생한테 왔죠. 식구들도  이해해 줬고...... 하하." 김해숙 선생이 애써 장난스럽게 얘기했지만 나는 듣자마자 목이 메어 잠깐 애꿎은 천장을 쳐다보아야 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나. 뒤늦게 인문학 공부하러 모인 사람들이라는데 이렇게 끈끈할 수가 있나.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유튜브를 찾아보니 2  '청주 조은누리  실종 사건' 정말 대단했다. 지적 장애가 있는 여중생이 무심천 발원지에서 실종되었는데 마침 장마까지 져서 모두들 발을 동동 굴렀고, 마침내 열하루 만에  절벽 아래서 하사관과 군견이 은누리 찾아냈을  그녀는 낙엽을 덮어 체온을 유지하고 시냇물을 마셔가며 겨우 견디고 있던 상태였다. 발견된  내뱉은 첫마디는 "옥수수수염차 마시고 싶어요."였다고.


하루는 밥을 먹고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계획이라고 했더니 은누리 도서관 가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고 나섰다. 그런 모습에 선생님들은 신이 나서 "은누리도  역할을 하네?"라며 대견해했다. 은누리 함께 충북교육도서관까지 가서 나는 2 일반열람실로, 은누리 1층의 아동열람실로 각각 들어갔는데 나는 책을 찾다가 서가 옆에 세워 놓은 나무계단에 정강이를 세게 부딪히는 부상을 당했다. '도서관에서 다치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너무나 아팠으나 계속 문지르는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근처에 약국도 없었다. 나는   없이 다시 해인네로 가서 혹시 타박상이나 근육통에 바르는 연고가 있느냐 물었고 박은영 선생이 내준 타박상 연고를 정강이에 발랐다. 은누리 PC 앞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다음날 해인네에 너무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고 말했더니 김해숙 선생은 "편쌤이  다섯   때마다 식당 가서 오리고기랑 만두 사드리려고 했는데 그동안  편이나 쓰셨는지 모르겠네."라고 농담을 했다. 나는 아직 구상 중이라 제대로 완성한  없지만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그때부터는 속도를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무슨 얘기를 주고받다가 은누리가 "땡큐~!"라고 하길래 "웰컴." 그랬더니 그녀는 "으하하, 유어 웰컴이겠죠!"라며 나의 실수를 지적했다. 나는 순간 창피해져서 "나도 유어 웰컴인  아는데, 그냥 웰컴이라고  거야."라는 옹색한 변명을 했다. 어쨌든 은누리나는 영어로 농담을  정도로 가까워진 것이다. 내가 밥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릴 생각이라고 했더니 은누리 작은 목소리로 "편쌤, 다치지 마세요."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도서관 가서 정강이를 부딪힐까  하는 소리였다. 순간, 가슴이 찡했다. 은누리 알고 보니 '츤데레'였어. 나는 "유아 웰컴."이라고 중얼거리고는 해인네를 나왔다. 날이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나는 무슨 복을 타고났길래 가는 곳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고 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도서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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