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숙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
"메모를 뒤적이는 건 무엇을 쓸지 찾는 과정이에요. 메모 상태는 부화 전 알과 같아요...... 메모가 중요하긴 하지만 써놓고 펼쳐보지 않으면 그냥 메모 그대로 있겠죠.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뒤적이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 무엇이 어떤 것과 결합해서 무얼 만들지 누가 알겠어요." - 이승우
마음산책이 2020년에 창업 20년을 맞아 신형철, 김금희, 김연수, 이기호, 임경선, 손보미 김소연, 김숨, 황인숙 등 20명의 문인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궁리한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을 어젯밤에 조금 더 읽다 잤다. 소설가 이승우가 메모에 대해 얘기하던 장면에 밑줄을 그어 놨는데 아침에 일어나 캐비초크를 타 먹으며 다시 책을 열어 첫 페이지를 보니 내가 밑줄 그은 내용이 그대로 머리말 전 페이지에 인쇄되어 있었다. 아, 정은숙 대표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괜히 으쓱했다.
이승우는 학생들에게 창작 방법을 다른 누구보다 잘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소설을 열심히 쓰는 게 최선의 방법이겠구나' 생각하고 열심히 쓴다고 한다. 실질적이면서도 겸손하고 멋진 스승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그가 쓴 『사랑의 생애』를 황홀하게 읽고 광고계 친구 강석권 CD와 만나 그 책 얘기를 하며 광화문에서 고기를 구워 먹은 적이 있다. 남자 놈 둘이 만나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좋았다.
잘 만들어진 인터뷰집들은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존중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행간에 읽혀서 좋다. 『스무 해의 폴짝』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인터뷰이의 발 치수와 좋아하는 색상을 먼저 물은 뒤 준비해 간 운동화를 신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시작한다. 자신이 선택한 색상의 운동화를 신거나 만지고 있는 작가의 사진으로 시작하는 인터뷰는 여러모로 참 좋다. 너무 두꺼워서 책상에 놓으면 자꾸 책이 닫히려 한다는 점 하나만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