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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7. 2022

네 시간짜리 연극을 보는 이유

연극 《금조 이야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6시간, 《엔젤스  아메리카》가 장장 8시간이었으니(나는 청주에  있느라 2부는  봤다) 이번 연극 《금조 이야기》의 260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조금 낫다고 해도 되겠다.  이렇게  연극을 보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세상 모든 시름을 잊고 허구의 세계로 몸을 던져버리자는 마음인 걸까, 아니면 인간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시간 반으로는 모자란다는 새로운 장편 서사의 발현을 목격하려는 호기심일까. '금조 이야기'  작가 김도영은 이에 대하여 "뭔가를 견디면서 봤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말한다. 공대 출신이면서 희곡을 쓰는  여성 작가는 전쟁 이야기만 고집스럽게 쓰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번에는 잃어버린 일곱 살짜리 딸을 찾으려  6.25 전쟁터 곳곳을 헤매는 금조 이야기다.


그는 금조가 피란길에 만나는 30명이 넘는 사람과 동물들을 보여주며 "같이 버틴다는 게 피란 아닌가"라고 되묻고 있는 듯하다. 연극은 매우 세련된 대사는 물론 사람과 동물이 대화를 나누는 열린 구성, 빈틈없는 배우들의 열연이 합쳐져 딱딱한 의자에서의 4시간을 버티게 해 준다(아내가 일어서며 엉덩이 아프다는 얘기를 했는데 마침 복도에서 어떤 여성 관객이 "아, 내 엉덩이!"라고 외치는 걸 보고 킥킥 웃었다). 그렇다, 우린 함께 버텼다. 연극 안의 인물들은 6.25 전쟁의 비극과 만나며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고민으로 버텼다면 연극 밖의 관객들은 '어떤 인간이 어떤 일을 겪으며 사는가를 상상하는 게 작가가 할 일'이라는 김도영의  소명의식에 따라 허구의 세계가 육화되는 것을 체험하는 쾌감으로 버텼다. 6.25 전쟁 중인 서울과 어느 기차역, 일제강점기의 개마고원, 시인과 하인, 말하는 개와 표범과 토끼, 말들이 한 무대에 등장하면서도 모두의 동의를 얻어내는 기적을 경험하다니!


아내가 십만 원의 회비를 내고 국립극단 회원이  후로 우리는 30퍼센트 할인된 가격으로 남들보다 먼저 좋은 연극을 안내받는 특권을 누리고 있고, 웬만하면 들어오는 연극을  보려 노력하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로드    씨어터》에서 아주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문예주 배우 때문에라도  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역시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다. 우리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이기도 하다. 금조 역을 맡은 윤현길의 캐릭터 분석력과 대사 능력이 돋보였으며 온몸을 던져 아무르 역을 표현한 이은지도 눈부셨다. 다들 고르게 연기를 잘해서 가장 나이 많은 배우 박용수 연기가 제일 처진다는 느낌이  정도였다. 연극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짧은  리뷰가 그에게 조금이라도 격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김도영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모든  없고  없는 연극배우들'에게도 위안이   있기를. 표를 구할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울역 뒤쪽에 있는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4 10일까지 상연한다. 물론 강추한다.

커튼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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