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은 '나중에 잘 쓰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서울시민대학 글쓰기 강의 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전자책으로 은유의 『쓰기의 말들』을 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종이책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전차책으로도 가지고 있더군요. 심지어 밑줄을 여러 군데 쳐놓았습니다. 그런데도 기억을 못 하다니, 심각합니다. 몇 페이지를 건성으로 넘기다가 이태준 선생의 글 밑에 붙은 본문을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저는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단은 쓰기 시작하세요'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정말 아무렇게나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뒤에 그 글을 고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게 반복되면 그렇게 쓰는 게 버릇이 되어 잘 쓰는 걸 경험하지 못하고 계속 쓰기만 합니다. 그러면 성취의 기쁨 같은 건 느낄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지금 쓰는 글이 최선이어야 합니다. 지금 온몸을 던져서 최상의 글을 쓰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당신의 글은 탄력을 잃습니다. 지금부터 잘 쓰기 위해 노력해야 겨우, 어쩌다가 잘 써집니다. 필자가 대충 쓰는 글은 독자도 대충 읽습니다. 신기하게도 독자들은 글에서 그런 걸 다 느끼니까요. 최선을 다해 쓰십시오. 그리고 좋은 글을 썼다는 성취의 기쁨을 느껴 보십시오. 글쓰기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 자체가 보상이라고 앤 라모트도, 바바라 애버크롬비도, 나탈리 골드버그도, 스티븐 킹도, 고미숙 선생도....... 아무튼 많은 작가가 말했습니다.
있어도 괜찮은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 이태준
지역 신문에 싣는 단체 방문기를 썼는데 편집 회의에서 퇴짜 맞았다고, 아무리 고쳐도 글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친구가 도움을 청했다. 원고를 봤다. 200자 원고지 15매 내외 분량. 첫 문장은 T.S 엘리엇의 시구였고 잇달아 윤동주의 시구도 나왔다. 마지막 문단엔 구전 동시가 전문 인용되었고, 세르반테스의 잠언으로 글이 끝났다. 동서고금 잠언과 명시가 망라됐다. 당연히 글의 본론에 해당하는 단체의 활동 소개는 묻혔다. 내용 없이 장황한 말잔치가 돼버렸다.
먼저 인용한 시를 걷어 냈다. 본문 내용괴 어울리는 시 한 구절만 남겼다. '말하자면', '그러니까', '모두', '다 함께', '~을 가지고', '~에 관하여', '의', '도', '들'같이 별다른 역할이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단어, 부사, 조사를 삭제했다. 단체의 설립 목적과 주요 활동은 질의 응답 식으로 정리했다. 원고량이 삼분의 이로 줄었고 주제가 보였다.
친구에게 다듬은 원고를 보내며 퇴고의 변을 덧붙였다. 글쓰기에서 인용구는 과유불급이며 주제 전달을 돕지 않는다면 없는 게 낫다, 단체의 활동 소개만으로도 독자가 알아서 '훌륭함'을 느낄 테니 굳이 필자가 '멋지다', '대단하다'라고 칭송하지 않아도 된다, 이중 수식은 역효과가 난다 등등.
며칠 후 '산만하던 글이 깔끔해졌다'는 칭찬을 들었고 편집 회의에서 통과됐다는 전갈이 왔다. 나도 기뻤다. 남의 글에서는 잘 보이고 내 글에서는 안 보이는 게 슬프지만, 암튼 불순물과 첨가물은 몸에도 나쁘고 글에도 해롭다. 화려한 요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가 얼마나 적은가가 글의 성패를 가른다.
(은유의 『쓰기의 말들』 중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