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보았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서문을 열던, 밤하늘의 불꽃 아래서 오색찬란한 빛을 발하던 궁전과도 같은 곳.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들이 낭만적인 데이트를 이어가고, 누군가의 꿈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곳. 그리고 40대인 지금의 나를 여전히 그 시절의 소녀감성으로 되돌아가게 만들어 주는 곳.
현생의 무게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월요일을 놀이공원에서 보낸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들떴다. 월요병 따위는 지나가던 O나 줘버려도 되리라.
드라마에서처럼 놀이공원을 통째로 빌려 둘만의 데이트를 즐길 능력은 안되지만, 월요일의 놀이공원이라면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그곳의 모든 것들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놀이공원에 가기도 전부터 온갖 즐거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마치 소풍을 앞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월요일의 놀이공원이 한산하리라는 생각은 나의 오판이었다.
월요일의 놀이공원은 사람들 - 특히 교복 입은 커플들(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놀이공원을 찾는 것이 유행인 듯하다) - 로 가득했다. 몇몇 놀이기구를 제외하면 한 시간 넘게 대기줄이 이어지고, '매직 패스'로 불리는 자본주의가 어김없이 존재하고, 때로는 새치기로 인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빈틈없이 즐거워 보였다.
때 이른 더위 속에서 기나긴 대기 줄에 서 있으면서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타인들과 대화와 웃음을 나누었다. 티끌만큼의 짜증도 없이 행복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곳. 극강의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공포(혹은 두려움)와 스릴 속에서도 불현듯 인생의 교훈을 깨우치게 되기도 하는 곳.
그곳에 풍덩, 시원하게 몸을 담근 채 신이 난 아이의 마음으로 한 주를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탄 놀이기구는 총 세 종류였다. '바이킹', '자이로 드롭',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렌치 레볼루션'(롤러코스터).
'바이킹'과 '자이로 드롭'의 경우엔 한 번에 탑승하는 인원이 많아 상대적으로 대기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프렌치 레볼루션'은 탑승을 위해 70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소요됐다.
1) 바이킹
'L 놀이공원'에는 바이킹이 실내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규모나 올라가는 높이 면에서 결코 실외의 것에 뒤지지 않는다.
이제껏 내가 타본 바이킹 중에 가장 스릴 넘쳤던 것은 인천 월미도 놀이공원의 것이었는데, 'L 놀이공원'의 실내 바이킹이 주는 긴장감도 그에 못지않았다.
'L 놀이공원'의 실내 바이킹은 대략 열 번 정도의 스윙이 이어지는데, 거의 90도로 꺾어지는 각도로 인해 안전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좌석을 이탈해 하늘 위로 솟구쳐 오를 듯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러다 7번째 스윙 지점부터는 상승 고도가 조금씩 낮아지며 높이와 주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정겨운 추임새처럼 들려온다.
바이킹은 현장에서 시간 예약제로 운행되고 있는데, 우리가 탑승했던 12시 30분경에는 대기 인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후로 넘어가면서부터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중간중간 발생하는 빈 좌석에 착석할 수 있는 줄이 따로 있긴 하다)
2) 자이로 드롭
내가 처음 'L 놀이공원'의 자이로 드롭을 탄 것은 20년 전이었다.
그 당시 자이로 드롭은 각종 놀이기구를 섭렵했던 내게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놀이기구가 주는 스릴과 공포감을 즐기는 나로서도 자이로 드롭의 실체를 느끼고 난 후로는 두 번 다시 타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극악한 속도와 그로 인한 공포감'이 역대급이었기 때문이다.
상상해 보라. 아파트 20층이 훌쩍 넘는 높이(70미터)를 시속 100킬로에 가까운 속도로 자유낙하하는 그 기분을!
혹시 아직 자이로 드롭을 타보지 않은 사람은 아래의 글을 통해 상상해 보면 대강의 느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자이로 드롭을 탑승하기에 앞서 사람들은 신발을 벗어 기구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 얌전히 올려놓는다. 신발을 벗어 든 사람들의 표정이 마치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해내려는 이들처럼 비장하다.
- 모든 탑승이 끝나고 직원이 안전바를 확인하고 나면 잠시 후 기구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 마치 거대한 자석처럼 생긴 물체가 놀이기구를 붙잡아 하늘 높이 끌어올린다.
- 올라가는 십 여 초의 시간 동안 좌석은 천천히 회전하며 상승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감당하기 힘든 높이에서 오는 공포감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 가장 두려운 지점은 꼭대기에서 잠시 멈추는 순간이다. 미리 시간을 재어 보니 기구는 자유낙하를 하기 직전 약 4초간 70미터 높이에서 정지된 상태로 머물러 있었다.
- 그러고 난 후, 놀이기구를 붙잡고 있던 물체가 그 '악력'을 순간적으로 풀어헤치면, 놀이기구는 오롯이 중력 가속도에 몸을 내맡긴 채, 약 3초 간 거대한 바람폭풍을 일으키며 까마득한 지상 위로 내리 꽂힌다.
생각보다 자이로 드롭의 대기 줄은 길지 않다. 그만큼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는 놀이기구라는 말일 테다. 이날도 남자친구와 함께 데이트를 하러 온 한 여성이 폭풍 오열하며 하차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공포감을 줄일 수 있는 핵심은 '언제 떨어질지를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년 전에는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찰나의 순간 동안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었으나, 이번에는 '4초'를 세며 마음속으로 다가올 폭풍의 순간을 준비했고, 자유낙하를 (덜 쫄리는 맘으로) 나름 즐길 수 있었다.
3) 프렌치 레볼루션
여타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보다 다소 규모가 작은 편이라 처음엔 얕잡아 보기 십상이다.
그러나 2분 정도의 탑승 시간 동안 짧지만 아주 강렬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는 경로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 놀이공원 내 건물 사이 좁은 공간을 마치 재주를 부리듯이 비집고 질주하며,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조명으로 가득한 동굴을 통과하기도 한다 -
상대적으로 낙차가 적은 레일이지만 질주하는 속도가 어마무시하다. 안경이나 모자를 착용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이름에 걸맞게 거의 ‘혁명' 수준으로 내달리며 열차는 쉼 없이 탑승객들의 혼을 빼놓는다. 어마어마한 아드레날린을 사정없이 뽑아낸다.
한 시간도 더 되는 가장 긴 시간 대기를 한 후 탑승한 터라 놀이기구를 타기 전까지 아이의 불만이 컸다.
하지만 탑승 후, 아이는 '기다린 보람이 있다'라고 말하며 백 퍼센트에 가까운 만족도를 보였고, 이후 며칠간 몸속에 잔재하던 아드레날린을 주체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놀이기구를 즐기는 가운데 새삼 깨닫게 된 네 가지 사실이 있다.
1. ‘처음'이라는 사실이 도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2. 내려갈 때를 알면 (삶은) 그다지 두렵지 않다.
3. 두려움도 함께라면 견딜만하다.
4. 용기가 없다면 지루함은 극복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삶의 지루함을 떨쳐내기 위해선 - 크든 작든 - 끊임없는 도전이 필요할 것이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러한 도전이 오롯이 홀로 부딪쳐내야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인, 두려운 '처음'을 극복할 용기를 낸 자에게 생은 앞으로 나아갈 활력을 선물처럼 안겨주곤 한다.
그래서 월요병을 잘 극복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물론이다'. 그에 못지않은 화요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문제였지만.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한 주가 분명 보통의 한 주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남으리라는 사실이다. 역시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는, 삶의 고단함을 극복하게 만드는 긍정의 에너지를 우리에게 선사해 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