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봤자, 월급 삼백만 원도 안 될 거잖아?
월급이 올랐다고 기뻐하는 내게 엄마가 우습다는 듯 던진 한마디였다.
그 순간, 기뻐할 자유마저 박탈당한 것 같아 빈정이 살짝 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달리 무어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쥐꼬리 만한 봉급에 허리띠 졸라매며 살기는커녕,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보고 싶은 곳 다 가는 듯 사는 내가 엄마는 통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어쩐지 아이들 용돈 지갑까지 뒤적여가며 검소하게 살라고 닦달하고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느냐고 잊을만하면 내게 묻더라니….
급기야 얼마 전에는 돈을 보태줄 터이니 아이들을 보습학원에 보내라며 심히 걱정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내비쳤다. 엄마는 나와 짝꿍을, 얼마 안 되는 수입으로 아이들을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제대로 된 학원'에도 보내지 못하고 있는, 가련한 부모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결코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보습학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나와 짝꿍이 돌아가며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기에.
대신, 우리는 우리가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을 위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낸다. 악기나 미술 등, 예술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들 말이다. 삶의 수단은 아닐지언정, 어쩌면, 아름다운 삶을 위한 목적 그 자체일 것들…. 하지만 엄마에게 악기나 미술 따위는, 아이들이 학원씩이나 가서 배워야 할 일말의 가치가 없는, '쓸데없는 것들'의 영역에 속해 있는 듯하다.
이렇게 엄마가 중요시하는 '삶의 쓸모'와 내 ‘삶의 즐거움과 행복'이 부딪힌다. 결코 섞이지 않는 흑과 백의 빛깔로 아슬아슬하게 마주 서 있다가, 때로는 상대를 공격하는 칼이, 방어하는 방패가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가 생각하는 '쓸모'는 주로 돈을 모으고 지키는 것에 있고, 내 삶의 즐거움은 손안에 쥔 돈을 제대로, 잘 씀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에 닿아 있다.
커서 돈 잘 버는 어른이 되기 위해선 뭐니 뭐니 해도 영어 수학을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어른이 되어서는 미래에 경제력이 있는 노인으로 살기 위해 현재를 기꺼이 희생하고, 돈을 아끼고 절약하는 것에 진심을 다하는 삶. 엄마에게 올바른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렇기에 엄마는 같은 직장을 30년 넘게 다니며, 끝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을 우물 하나를 파면서도 한눈 한 번 팔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엄마가 인정했듯,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을 그저 묵묵히 회사와 집을 오가는 기계처럼 살면서도 버틸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엄마를, 아빠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란 나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를 저당 잡힌 채 살고 싶지 않다. 같은 자리에 한 우물만 파기보다는 여러 곳에 크기도 모양도 다양한 여러 우물들을 만들어 비교해 보고, 그 다양함을 알아가며 음미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굴비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눈으로만 간절하게 바라보며 굴비가 썩을 때까지 맛볼 나의 권리마저 포기하는, 그런 우매한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생을 다한 아빠에게 내가 느꼈던 유일한 안타까움은, 아빠가 이 좁은 땅을 한 번도 벗어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근사한 개인 바가 달린 5층짜리 빌딩의 주인이 되고 싶어 했던 아빠는, 매일매일 낡은 옷을 입고 해진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도, 그깟 커트비용 아끼느라 미용실 한번 가지 않으면서도, 있는 돈을 더 키워보고자 머리를 끙끙 싸매며 주식을 하고 로또 번호를 연구하면서도, 해외는커녕 바다 건너 제주도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앙상해진 몸 하나 겨우 누인 좁은 침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힘겹고 때론 지옥 같았을 나날들을 30년 넘게 버텨낸 결과로 받아 낸 퇴직금마저 엄마는 차마 손대지 못했다. (돈을) 아끼고 붙잡고 있는 것에 관성이 붙어버린 엄마의 마음은 끝내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엄마가, 싱그러운 청춘과 '현재의 행복'과 맞바꿨던 그것은 엄마 곁에서 얼마 머무르지도 못하고 일장춘몽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많던 퇴직금을 손에 쥐고도 엄마의 마음이 유일하게 허락했던 건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닌, 백화점에서 구입한 알량한 나의 줄무늬 티셔츠 하나였다. 지금은 어디로 사라졌는지조차 알 수 없는.
엄마와 아빠의 삶을 통해 나는 배웠다.
돈이란 녀석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더 욕망하게 만드는 탁월한 재주가 있다는 걸. 지금의 희생이 훗날 보상으로 돌아오리라는 믿음은 어쩌면 어리석은 인간의 오만이라는 것을.
나는 엄마와 아빠가 걸어간 길과 다른 길을 가며, 내게 주어진 시간 동안 삶의 수단이 아닌 목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나의 '지금'에게 가혹하게 굴고 싶지 않다. 쥐꼬리 만한 돈이라고 내가 가진 것을 업신여기며 가난한 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꿈꾸는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게로 온 돈이, 나와 가족들의 행복과 꿈을 위해 보람된 일을 하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러다 불현듯 '엄마의 쓸모'가 떠오르는 조바심 나는 어느 날이면, 느릿한 발걸음으로 복권이나 한 장 사러 가리라.
‘돈, 그게 뭐라고!’라고 맘껏 읊조려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