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애증의 관계
주로 전화를 걸어오는 쪽은 큰 이모다.
얼마 전 이모는 집에서 바지를 갈아입다가, 별안간 다리에 힘이 빠져 무게중심을 잃고 넘어져 엉덩이 뼈를 다치는 바람에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 이후, 불편한 다리로 인해 집안에 갇혀 지내다시피 한 이모에게선 (사고 이전보다 더 자주)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오곤 하는데, 대화는 기본 한 시간은 족히 넘게 지속된다. 무슨 할 이야기가 이다지도 많을까 궁금해져 이따금 엄마방 밖에서 가만히 엿들어보면, 그 내용이란 것이 대체로 큰 이모의 신세한탄과 그에 화답하는 엄마의 넋두리다. ‘힘들다’, ‘아프다’로 시작해 결국엔 ‘죽겠다’로 끝나는 말들.
이모는 엄마보다 더 걱정이 많고 염세적인 성향을 지녔는데, 처녀시절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하니 아무래도 힘겨웠던 시집살이가 이모를 이리 만든 것 같다.
성치 않은 본인의 몸, 쉰을 넘긴 자식과 심지어는 강남아파트의 가격까지 늘 이모의 걱정샘에 마르지 않는 소재거리를 제공한다. 아픈 몸을 더 아프게,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며.
이모에게 결혼의 트라우마를 안겨 준 시부모님은 이미 딴 세상 사람이 된 지 오래지만 이모는 여전히 그분들이 존재했었던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사람 같다. 엄마가 아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긴 통화시간 때문인지 이모와의 대화가 끝난 직후의 엄마는 대체로 조금 지쳐 보인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엄마의 표정이 밝았다. 저녁 산책을 나가자는 내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것도 매우 기꺼워하는 말투로. 어째 좀 수상하다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큰 이모가 며칠 머물다 가라고 하네. 짐을 좀 챙겨야겠어… 이모집까지 차로 좀 데려다줘."
이렇게 말하는 엄마는 어쩐지 소풍을 앞둔 어린애처럼 신이 나 보였다.
육 남매 중 맏이인 큰 이모와 둘째인 엄마는 엄마와 나처럼 '애(愛)와 증(憎)의 관계'를 오간다.
때로는 일 년이 넘도록 말 한마디 섞지 않을 정도로 열렬히 부딪히고 미워하면서도, 어느 순간 그 누구보다 서로를 의지하는 '베프'가 되어 함께 아파하고 위로한다.
항상 친구들이 많았던 이모와, 친구라고는 없었던 엄마가 나이 들어 서로의 가장 든든한 친구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는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된 두 자매는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오직 한 사람’이 되어 인생의 끝자락을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나이 들고 몸 아프니 친구들도 다 소용없더라' 하소연하는 큰 이모와, 별다른 사회적 관계없이 홀로 지내왔던 엄마를 보며 이따금 지금의 내 우정관계를 곱씹어보게 된다.
결국엔 생의 마지막까지 서로의 아픔을 내 것처럼 함께 나눌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 인생은 ‘괜찮았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러한 아픔은 오로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에 의해서만 온전히 공감받고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엄마와 이모를 통해 매번 새로이 깨닫게 된다.
이모에게도 엄마에게도 지금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돈도 명예도 아닌, 본인의 처지를 온전히 이해해 줄 단 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집안에 갇혀 지내는 답답한 현실이 그래도 견딜만하지 않을까. 그래서일 거다. 좀처럼 누군가를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이모가 기꺼이 엄마를 집으로 초대한 것도, 누군가의 제안을 짐스럽게 여기는 엄마가 선뜻 이모의 초대에 응한 이유도.
작은 기대 하나로 오래간만에 힘이 나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심란해진다. 내 역할이란 것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듯도 하고.
그런데, 이모집에 엄마를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내 마음이 이리도 홀가분한 건, 어쩐지 미운 네 살의 어린 자식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뒤돌아서던 그 기분이 되살아나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