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통’이 벌인 소란

by 지뉴

몇 달 전 어느 날이었다.

엄마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엄마에겐 먼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엄마가 먼저,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얘기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별일'이 있었던 게 확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선 엄마는 '별일이 없다'라며 애써 부인했다.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추궁하고 싶지는 않았다. 추궁까지 하면서 알고 싶지도 않았고. 나는 망설임 없이 뒤돌아 방문 쪽을 향했다. 그때였다.

“강이랑 일이 좀 있었다..."

돌아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엄마가 툭, 던지듯이 말을 꺼냈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엄마는 결혼을 앞둔 남동생과 다툰 모양이었다. 생전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내가 아는 한, 엄마가 동생과 실랑이를 벌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의아스러운 마음에 엄마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무슨 일인데?”

내 물음에 엄마가 입을 열기 시작하자, 말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뒤따라 올라왔다.

엄마의 얘기를 듣고 보니, 동생을 불러다 교육이라도 좀 시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듣기에 정말 별 것도 아닌 엄마 행동에 동생이 분노를 참지 못한 상황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동생에게 했다는 엄마의 행동은 내겐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엄마는 '관심'을 '감시'에 가까운 말과 행동을 통해 표현한다. 언젠가 내 글에서 썼듯이 말이다. 엄마와 오랜 동거 중인 나는 엄마의 그러한 말과 행동에 익숙하지만, 멀리 사는 동생은 화가 많이 솟구쳤나 보다. 평소에는 이런 엄마를 겪을 일이 없었겠지만, 결혼이라는 거사를 앞두고 잦은 연락을 취하면서 일이 불거지고 말았던 것이다.



상황은 이랬다.

결혼 전, 짝꿍이 될 아가씨와 함께 여러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지던 동생에게 엄마가 (동생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한) 문자를 여러 차례에 걸쳐 보냈다.

엄마와 일이 터진 그날도 동생은 짝꿍 될 아가씨와 함께 신혼집 근처에서 지인들과 술 한잔을 걸치고 있었다.

동생 말로는, 그날 엄마의 마지막 문자가 온 건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에 집착하곤 하는 엄마는, 엄마 기준에서 밤늦도록 술 마시고 있는 동생 - 마흔 넘은 남성이 자정도 되기 전에, 집 근처에서 마시는 술이 걱정거리가 될 만한 일인가? - 이 몹시도 걱정스러웠다고 한다. 저러다 길바닥에서 고꾸라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고도(동생은 대학 신입생 때 소주 9병(?)인가를 마시고 산송장이 된 채로 친구들에게 업혀 들어온 적이 있긴 하다).



이 지점에서 동생이 폭발해 버린 거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간섭을 받고 살아야 하는 거야?!' 하는 생각에.

내가 보기에 남자는 여자보다 부모의 간섭에 면역력이 약한 것 같다. 혹여 '마마보이' 소리라도 들을까 두려워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평소의 동생을 생각해 보면 저렇게까지 화낼 애가 아닌데, 싶었는데 나중에 동생과 통화하면서 동생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엄마 입장에서는, 단지 걱정스러워 문자 몇 통 보냈을 뿐인데 동생이 그토록 화를 내는 이유를 결단코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지도 않다!'라며 심술이 잔뜩 오른 얼굴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내뱉기까지 한 걸 보면.

그런데 엄마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동안 결혼 준비를 하며 동생은 맘 속으로 엄마에 대한 원망을 쌓아가고 있었다. - 엄마는 동생의 결혼을 축하해 주기는커녕 시시때때로 결혼에 관한 걱정만 잔뜩 늘어놓았다고 한다 - 그렇게 맘 속에 켜켜이 쌓여가던 동생의 원망이, 엄마의 간섭 아닌 간섭으로 인한 짜증과 함께 팡, 하고 터져 나와버린 것이다.



나도 유사한 일을 겪어봤기에 동생의 원망 섞인 분노에 공감이 됐다.

가장 큰 문제는, 엄마가 자식의 짝꿍 될 사람에게 심통을 - 그 심통 아빠한테나 부렸으면 좋았을걸 - 부린다는 것이다. 짝꿍 될 인물이 웬만한 부와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지금의 짝꿍을 만나기 전 사귀었던, 우유부단한 수련의였던 그놈에게 엄마는 이해불가할 정도로 관대했다!)



엄마의 자식이 '잘났다'라고 생각해서인지, 결혼을 허락했으면서도 자꾸 '아깝다'는 말을 한다. 사람이 돈도, 물건도 아니고 '누가 아깝고' '누가 안 아깝다'는 건지 나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이 태도를 나도 겪었었다. 그런데 이번엔 동생이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동생은 그간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엄마가 자신이 선택한 짝꿍에 대해 내켜하지 않아 한다는 사실을 분명 눈치챘을 것이다.



동생에게 차마 말은 못 했지만, 엄마는 잊을만하면 내 앞에서 동생 칭찬을 하며 동생이 '얼마나 아까운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피력하려 했다. 웨딩 사진을 보며 '강이 인물이 참 훤하다… 누구누구가 그렇게 강이 칭찬을 하더라...'는 말을 하며 나를 붙잡고 동의를 구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동의 따위는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강이가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언젠가, 이런 말을 엄마에게 지나가듯 했을 뿐이었다.



나와 짝꿍이 결혼할 때는, 짝꿍이 나이가 어려 철이 없을 것 같다며 맘에 들지 않아 하더니, 이번에는 동생의 짝꿍이 (결혼하기에) 나이가 많다며 마뜩잖아했다. 그러면서 며느리가 될 아가씨에 대해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냐'라고 내게 물어왔다.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몇 번 보지도,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도 못한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강이가 좋대잖아. 그리고 예전의 걔보다는 나은 것 같아.” - 동생은 돌싱이다. -

내 대답을 듣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는 또다시 물었다. '어떤 면에서 그런 것 같냐'라고.



내가 이처럼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동생에 대한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그녀가 동생을 바라볼 때의 눈빛 때문이다. 그녀는, 동생의 평탄하지 못한 성장과정을 알면서도 부담스러워하기보다 오히려 안타깝게 여기는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그녀가, 최소한, 동생을 아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여전히 내켜하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엄마가 자식을 객관화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 대한 동생의 원망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강이가 나이 더 많아. 게다가 강이는 초혼도 아니잖아?”

"아빠도 인물 하나는 좋았잖아. 그래서 엄마 행복했어?"

"부자도 아닌 마흔 넘은 돌싱 남자를 좋아해 주는 아가씨가 어디 흔할 것 같아?"

"저러다 엄마 욕심으로 강이가 혹여 노총각으로 늙어가면 어떡할 거야?” 등등...



내가 입에 따발총이라도 문 것처럼 '다다다다~’ 말을 뱉어내자 엄마는 벙 찐 표정을 짓더니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이내 풀 죽은 목소리로,

"혹시 강이가 아가씨한테 이런 엄마 얘기 했으려나...?" 라며 쓸데없이 내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난 후, 엄마의 입에서 ‘결혼식에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은 쏙 들어갔다.



솔직히 난 동생이 결혼하겠다고 짝꿍을 데리고 온 사실만으로도 좋았다. 동생에게는 같은 남자로서 혹여라도 아빠의 모습을 닮아가면 어떡하나, 하는 근원적인 두려움이 있다. 엄마와 아빠의 징글징글한 결혼생활을 곁에서 보고 자라오며 동생은 나보다 더 결혼에 대해 절망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품어왔을 것이다. 그런 동생이, 이혼이라는 큰 아픔을 한번 겪고도, 쉬이 포기하지 않고 어른으로서 자신의 가정을 이루겠노라 다시 결심했다는 사실이 나는 기특했다.




결혼 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동생 부부를 보며 엄마는 이제 심통을 내려놓은 듯하다.

결국,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동생이 아니라 엄마였다. 하지만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는 스펀지같이 되어버린 엄마의 마음은 새로운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사실들을 제대로 받아들일 여력이 도통 없어 보인다.



결국, 내가 또다시 내린 결론은 잔소리다.

이성적으로 짚어주는 ‘교육’보다는 으름장 놓고, 때로는 아이 달래듯 구슬리는 잔소리가 엄마에겐 조금이나마 더 효력이 있어 보인다. 엄마가 내 말을 귓등으로 듣든, 콧등으로 듣든 간에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엄마는 딸의 한숨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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