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복했던 기억
축제가 한창이던 에든버러의 여름날.
사람들의 들뜬 기운이 가득했던 '로열마일(The Royal Mile)' 거리 위를 점령하고 있던 즐거운 에너지. 그 길 위로 떨어진 동전을 주워 부리나케 쫓아간 내 딸아이에게, 축제만큼이나 환한 표정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던, 동전 주인이었던 이름 모를 관광객.
중세의 가파른 계단 위에서 엄마의 짐을 대신 들어주던 멋진 은발의 노신사와, 뒤돌아 서 소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던 엄마. 귀족들이 거주했다는 고성에서 눈을 빛내며 주변 풍경에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시선을 내어주던 엄마.
8월의 푸르른 신록과 묘하게 대비되던, 페스트의 암울한 기운이 남아있는 지하도시를 관통하던 '호러투어(Horror tour)'의 추억과, 에든버러 성을 내려다보는 밤하늘 위로 화려하게 피어나던 축제의 불꽃들. 그리고 고색창연한 도시만큼이나 분위기 있게 내려앉던 빗방울들을 가르며 공연장으로 향하던 그 길….
지금은 방문을 닫아걸고 할머니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사춘기 아이가, 아기 종달새처럼 쫑알거리며 엄마와 할머니 곁에 붙어 다녔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내 마음속에 ‘8월의 스코틀랜드’로 새겨져 있다.
내가 처음 스코틀랜드 여행을 제안했을 때 엄마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당시에도 몸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했던 엄마는, 본인의 인생에서 직항 노선 하나 없이 장장 10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스코틀랜드를 방문하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러나 행복한 청춘의 기억이 남아있는 스코틀랜드를 가족들과 재방문하는 것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였고, 내 굳은 의지와 설득 앞에서 엄마는 결국 모험을 강행해 보기로 (통 크게) 마음먹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여성 삼대가 함께 하는 여행계획을 짜는 동안 나는 몹시도 즐거웠다.
평소에도 여행을 사랑하지만, 이때의 여행을 앞두고는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로 탐험하는 사람처럼 그 어느 때보다 설렜고 기대감이 차올랐다.
물론, 모든 일정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조금 부담되기도, 꽤 오랜 시간 골머리를 앓기도 했다.
노모와 어린 딸을 생각해 가능한 동선을 최소화하면서 쾌적한, 그렇지만 나름 경제적인 숙소를 알아보고, 먹거리를 미리 예약하고 공연 티켓을 예매하는 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우리가 스코틀랜드를 방문했던 시기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에서는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50만 남짓한 중소도시 인구의 곱절은 될 것 같은 관광객들이 축제기간 동안 전 세계에서 모여들던 그때, 축제의 열기 속 에든버러는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었지만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보드랍고 상쾌해, 무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던 한국의 여름을 말끔히 잊게 해 주었다.
축제의 에든버러는, 백 파이프 소리 그득하던 거리 곳곳의 온갖 구경거리들 -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꽤 쏠쏠했다 - 이 끊임없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평소 '걷는다'는 인간 본연의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 엄마도 그곳에서만큼은 발 뒤꿈치가 까질 정도로 열심히 내 뒤를 쫓아다녔다. 최대한 많은 것들을 눈에 담아 비행기 요금과 체류비를 뽑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엄마를 그리 이끌었던 게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억지로 내디딘 발걸음이 결국엔 엄마에게 소중한 기억들을 남겨주었다.
내가 이 사실을 확신하는 이유는, 이따금 엄마방에서 들려오는 백파이프 소리 때문이다.
빼꼼 열린 문틈사이를 쳐다보고 있을라치면, 캄캄한 방에서 홀로 불빛을 발하고 있는 핸드폰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한 백파이프 공연 영상을 틀어놓은 채, 엄마는 한참을 같은 자세로 미동조차 하지 않고 추억을 곱씹고 있곤 한다.
나는 알고 있었다.
엄마가 그 시간을 그리워하리라는 사실을.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되새김질하며 즐거운 추억에 잠기리라는 것을.
그래서였다. '가지 않겠다'며 손사래 치던 엄마를 어떻게든 끌고 가야만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이유가.
때론 지치고 힘겨웠지만, 그곳에서의 모든 순간들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행복의 흔적으로, 죽기 전 눈앞에 ‘파노라마'와도 같은 모습으로 펼쳐질 형형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스코틀랜드를 다녀온 후 엄마는 한동안 후회가 가득 담긴 말투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때 발뒤꿈치가 더 까지도록 열심히 돌아다닐 걸 그랬어. 뒤꿈치가 아프더라도 너 따라 OO도 가고, OO도 가 볼 걸. 후회가 되네…."
젠장. 엄마는 늘 이런 식이다.
결국엔 '좋았다'로 끝나고 말 것을 덮어놓고 ‘싫다’며 시작도 하기 전에 청개구리 아이처럼 사람 힘을 쏙 빼놓는다.
후회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또다시 생각한다. 엄마와 딸아이와 함께 한 '8월의 스코틀랜드'를 포기했더라면 내 여생을 깊은 후회 속에서 살 뻔했다고.
앞으로 ‘미운 일흔’이 된 엄마를 마주하게 되면 그날의 추억들을 떠올리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