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람은,

by 지뉴

폐쇄적 삶 속에 갇혀 사는 엄마의 끝은 어떤 것일까, 이따금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건 아마도 엄마의 일상에서 몇 해 전 생을 달리 한 셋째 이모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르기 때문일 거다. 내 인생과 가까이 닿아있던 사람들의 - 내가 그(녀)를 좋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 서글프고 때론 비참하기까지 한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은 힘겨운 일이기에. 엄마의 바로 아랫동생인 셋째 이모는 오랜 기간 요양원에서 홀로 지내다 쓸쓸하고도 애달픈 이 땅에서의 생과 작별했다.



내 기억 속 젊은 날의 이모는 예쁘고 단아한 사람이었다. 대화를 나눌 때면 늘 쾌활한 기운을 뿜어 냈고, 손재주가 좋아 결혼을 한 이후에도 이따금 직접 조카들 옷을 만들어 주거나 맛깔스러운 솜씨로 만들어 낸 반찬을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 이모가 달라진 건 이모부와 거의 반강제적으로 헤어진 후, 자식들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혼자의 삶을 살게 되면서부터다.



기억난다.

때때로 혼자 지내는 이모 집에 들르면 마치 영화 <디 아더스>에서 처럼 환한 대낮에도 빛 하나 들지 않게 커튼이나 신문으로 꽁꽁 싸매두었던 창문들을 보고 놀랐던 순간이.

하루종일 캄캄하고 좁은 집에 스스로를 가두고 지내면서도, 자신은 식사 한 끼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서도 이모는 잊을만하면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과 나를 위해 맛있는 반찬을 손수 만들어 건네주곤 했다.

이모 집에는 늘 사과, 귤 등이 가득 담긴 과일 상자들이 집 한편에 놓여 있었는데, 이모에겐 그 과일들이 삼 시 세끼 식사와도 같았다. 이모는 과일을 유독 좋아했지만, 어쩐지 내게는 과일을 입에 달고 사는 이모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그래도 이모집을 방문하는 게 기꺼웠던 이유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이모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거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셋째 이모와

그러나 폐쇄적인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모는 조금씩 변해갔다.

처음엔 단순히 성격이 까탈스러워지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소한 일들도 재미있는 얘깃거리로 만들던 이모는 점점 기억을 잃어갔고, 부정적인 말들을 뱉어냈고,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공격했으며, 나중에는 가족들의 얼굴조차 못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모의 뇌는 치매를 앓으며 급격히 시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기억들을 잊고야 말겠다는 듯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이모를 지켜보며 나는 치매가 신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가장 무거운 벌 중의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내가 함께 했던 추억들이 내게만 의미 있는 것으로 남게 되는 마지막.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내가 아끼던 사람이 더 이상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닌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하는 무서운 형벌. 그건 마치 좀비영화에서 가족이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는 상황과 흡사해 보였다.

외롭고 쓸쓸하고 처량한 날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 앞에서 역시 삶이란 불공평하고, 신이 있다면 참 잔인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성실히 살아온 그들이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생에서 왜 이런 큰 벌을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나는 끓어오르는 질문을 되뇌곤 했다.



엄마도 이모만큼은 아니지만 폐쇄적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엄마의 활동 공간은 집, 그것도 엄마의 방이 거의 전부이다. 엄마에게 걷기, 햇빛, (사람들과의) 관계, 웃음, 의욕은 닿기 힘든 머나먼 나라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수면제 복용으로 이따금 환각을 일으키기까지 하는 엄마의 노쇠해 가는 뇌가, 폐쇄적 삶으로 인해 머지않아 이곳에서의 기억과 활기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이모의 마지막을 닮아가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이 불현듯 들이닥칠 때가 있다.

자꾸만 점멸하듯 깜빡깜빡거리는 엄마의 기억력에 엄마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치매 걸리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거'라고 딸 앞에서 당당하게 말하는 엄마의 말에 가슴이 내려앉고 나도 모르게 야단하듯 소리치게 된다.



때때로 엄마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가 향하는 마지막 정거장이 최소한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어두운 곳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병원 한편 좁고 차가운 침대 위에서 이별을 고하지 않았으면,

이 생의 기억을 나눈 가족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남기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천천히 작별을 나누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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