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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Dec 06. 2023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과 <서울의 봄>을 보다

잊을만하면 '죽음'을 언급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삶'을 얘기한다. 직설적이지 않은, 나만의 방식으로.

그토록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으면 다 들어줄 테니, 아예 날을 잡아서 유언이라도 하라고 말한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네 어쩌네 하는 소리일랑 집어치우고, 정식으로, 아쉬움 없게 하고픈 말 다 남기고 떠나라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반응하면 엄마는 오히려 주춤한다. 어쩐지 살고 싶어 하는 듯한 눈빛이 된다. 그때 나는 'OO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라고 슬며시 제안한다. 집안에 드러누워 있어 봐야 통증만 더 생생하게 감지될 뿐'이지 않냐며, 삶으로 마음을 돌리도록 시동을 건다. <서울의 봄> 동반 관람도 이 과정을 거쳐 이뤄진 것이다.




엄마는 그 세대 많은 어른들이 그러하듯 군사독재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다. 박정희가 가난한 우리나라를 구제시켜 준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고, 그 딸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있다. 엄마의 기억 속에 그 시절이 미화되어 있는 것은 단지 이와 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젊음이 머물렀던 건강했던 신체가,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었던 시간이 그리운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가 <서울의 봄>이 12.12사태에 관한 영화라고 말하자, 엄마는 10.26 사태를 떠올렸다.

현직 대통령 시해 사건이 뉴스 긴급 속보로 타전되던 그 순간, 엄마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해 냈다. 며칠 전 일도 곧잘 잊어버리곤 하는 엄마가, 젊음을 되찾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내가 묻지도 않은 장면들을 지금의 현실 속으로 시시각각 불러냈다. 그렇게 엄마의 이야기는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던 그다음 해 5월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어쩐지, 소환된 엄마의 기억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보다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에 대한 충격이 훨씬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았다. 광주 민주화 항쟁과 관련된 긴박한 상황을 몸소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체신부(현 KT) 직원이었던 엄마는 광주로부터 타전되는 전보를 담당하던 '유선 통신사'였다.

광주에서 군인들이 시내로 쳐들어와 시민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통신을 접했을 때, 엄마를 포함해 주변에 있던 직원들 중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었던 이는 (엄마의 기억상)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시절, 권력에 굴복한 언론이 얼마나 섬뜩하리만치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한 이틀간 이어지며 타전되어 오던 광주발 전보가,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사람의 심장처럼, 멈춘 순간을 엄마는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기에 <서울의 봄>을 보러 가자는 내 제안이 평소보다 훨씬 수월하게 엄마에게 먹혀든 건지도 모르겠다.




3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영화는 긴장감을 가득 싣고, 마치 끝도 없는 활주로를 전속력으로 이륙하는 비행기처럼 폭풍 질주했다. 영화 관람 후 '심박 수 체크' 이미지를 올리는 것이 밈처럼 2,30대 사이에 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 격하게 공감될 정도로, 내 가슴이 시종일관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현실의 결말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는 인물을 마음을 다해 응원하게 만든 영화는, 그랬기에 마지막에 돌이키기 힘들 만큼의 허탈감을 안겨주며 끝이 났다.



<서울의 봄>을 엄마와 함께 보며 내가 몹시 놀란 지점은, 엄마가 여전히 그 시절 언론에 의해 길들여진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저게 진짜 있었던 일이라고? (대부분) 다 거짓말 아니냐?'라고 내게 거듭 물어보며, 엄마는 영화 내용을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심지어 최근 파주 시민들이, 전두환의 유해가 파주에 안장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나서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뉘앙스를 비추기까지 했다.



수많은 타인들의 피를 보면서까지 권력을 탐했던 자들의 시대가 과연 끝났을까, 서울의 봄은 곁에 다가와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드는 요즘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그날을 결코 기억할 수 없는 내가, 영화의 많은 장면들이 실제 인물이 했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 사실이었음을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그 시절을 어른으로 살았던 엄마에게 알려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아직 봄은 오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암울한 시절에서 온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내 아이들이 어른으로 살아갈 시대에는 결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더 이상 이 나라가 소수의 탐욕스러운 자들에 의해 병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울고 싶을 만큼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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