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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Dec 23. 2023

<죽은 시인의 사회>, 눈, 그리고 베토벤 황제 2악장

곧 크리스마스에요.


어제 다큐멘터리 <크레센도>를 본 이후 마음이 고양되어 있는 상태인 저는, 저녁 설거지를 하며 오래간만에 리베라 소년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틀었어요. 임윤찬의 연주만큼이나 천상의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베란다 밖으로 여전히 하얀 눈으로 덮인 나무와 지붕들이 보이네요. 어쩐지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될 것 같아요. 눈이 내리든, 아니면 지금의 눈이 녹지 않고 땅 위에 머물러 있든 말이죠.


마른 나뭇가지 위에 머물러 있는 눈에서 처연한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잠시 생명의 활기가 사라진 곳을 따뜻이 덮어주고 있는 눈이기에 그러하겠지요.


불현듯,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이 떠올라요. <크레센도>를 본 후, 집에서 들었던 임윤찬 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때문일 거예요.


<죽은 시인의 사회>에는 베토벤의 황제 2악장이 아련하게 흐릅니다. 죽기 직전의 닐이 마지막으로 키팅 선생님의 방에서 상담을 나누는 장면에서요. 닐 역의 로버트 숀 레오나드 배우의 연기가 너무 가슴 아리게 다가왔던 씬이었어요. 그때 잔잔히 깔리던 베토벤의 선율을 아직도 전 잊을 수가 없어요.

닐의 운명은 바뀔 수도 있었을까요? 미리 끝을 알고있다는 건 조금 슬픈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한 장면.

닐의 죽음 후, 닐의 이름을 외치며 온통 눈으로 뒤덮인 벌판 위를 달려가던 토드(에단 호크)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넘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눈밭 위를 미끄러져 내려가던 토드가 먼 곳으로 시선을 향한 채 멈춰 서네요. 마치 그곳에 닐이 서 있기라도 한 듯이요. 잠시 말없이 주변 풍경을 눈에 담던 토드가 말합니다.


“너무 아름다워!”


그의 뒷모습을 향해 있는 카메라는 잡지 못했지만, 이렇게 말하는 토드의 눈에서는 눈물이 보일 듯 말 듯 흘러내리고 있었을 테지요. 토드는 분명 그 순간,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고 있는 아름다운 눈 뒤에 감쳐줘 있는 세상의 슬픔과 절망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거예요. 저는 내리는 눈을 보면, 끝도 없이 펼쳐진 눈밭의 절절하고도 처연했던, <죽은 시인의 사회>의 이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이곳은 미국 동부 델라웨어주에 있는 사립학교인 세인트 앤드류 스쿨 부근이라고 합니다. 이 장면은, 롱테이크로 한 번만에 촬영되었다고 해요.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이었고, 함박눈이 그치기 전에 이 씬의 촬영을 마치고 싶었던 감독의 고심이 컸다고 하네요. 다행히 에단 호크 배우의 열연 덕분에 한 번에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쳤다고 합니다.


언젠가 저도 꼭 한 번은 무한대로 펼쳐진 눈밭을 달려 나가 보고 싶어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이 온통 눈으로만 가득한 그런 곳에서 말이죠..


<죽은 시인의 사회>때문인지, ‘황제’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악장이 더욱 슬프도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사람으로 치자면 생명이 다한, 그렇기에 다시 시작할 에너지를 품고 있는 계절, 겨울이라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겠지요.


모두들 해피 크리스마스!!

https://youtu.be/B0jls9_kGPU?si=1WKaXJIkQo6Ghdom

임윤찬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2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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