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고달프면서도, 때때로 흥미롭다. 긴 고난의 시기 중간중간 찬스처럼 등장하는 행복의 순간들에 기대어 버티고 견디다 보면, 인생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을 내게 선사하기도 한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할 무렵의 나는, 끈질기게 나를 비집고 들어오는 허무감으로 어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체적인 좌절감을 극복하고자 십 년 넘게 있던 교직을 박차고 나와 다른 직업의 세계로 들어왔건만, 잠깐 동안의 만족감이 가시고 나자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나를 괴롭혔다.
'이런 삶을 위해, 뒤늦은 나이에 아이들을 소홀히 돌보면서까지,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가'하는 생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육체적 괴로움은 덜해졌지만, 정신적 고통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 같았다. 나는 행복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유형의 인간인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럭저럭 안정적인 젊은 날들을 채워나가면, 편안하고 괜찮은 노년의 삶을 맞이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두루뭉술한 사춘기를 지나왔던 나는, 중년의 삶도 미래에 다가올 노후도 '그저 무난하게' 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간절했던 목표를 달성한 중년이 되어 급작스럽게 맞닥뜨린 공허감은, 이제껏 느껴보았던 그 어떤 극한 감정에 뒤처지지 않을 만큼 크게 다가왔고, 이러한 마음을 추스르는데 익숙하지 못했던 나는 뒤늦은 사춘기를 겪는 듯,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심적인 방황을 이어갔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런저런 다양한 체험들을 해보며 스스로를 다스려보려 했지만, 순간의 안정이 머무를 뿐, 궁극적인 허무가 가시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림 한 장이었다. 늦은 밤, 곤히 잠들어 있는 배우자 곁에서, 따스한 스탠드 불빛을 받으며 오른손에는 펜을, 왼손에는 작은 공책을 든 채 생각에 잠겨 있는 주부의 모습이 담긴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위로, '마흔, 마음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나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그 그림을 보는데 순간,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죽도로 세게 탁, 하고 내려치며 오랫동안 고심하며 품어왔던 화두에 대한 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랬다. 내게 가장 절실했던 건 바로, 내 것임에도 그동안 정작 관심 갖지 못했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돌보는 것이었다. 나는, 등잔 밑이 어두웠던 정도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것도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가진 것을 지키려 애쓰거나, '성장'이라는 단어에 집착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촉했지만 (아직도 이 집착은 내 안에 살아남아 있지만), 정작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다독이지 못하고 대충 무시하고 무마하며 살아왔던 거였다. 그랬던 내게 한 장의 그림이,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글을 쓰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그림 한 장에 바로 글쓰기를 시작한 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일련의 연쇄적 우연들이 이어져 필연적으로 내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던 것 같다. '글을 써보라'라고 격려해 준 이가, 지워지지 않는 깊은 인상을 머릿속에 남긴 어떤 장면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은 환경적 요소가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는, 내가 이 세상에 내놓은 첫 책이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서점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공간 한켠을 차지하는 행운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내가 애정을 듬뿍 담아 창조해 낸 이야기로, 오랜 시간 독자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사랑해마지 않는 서점에서 말이다. 물론, 이 행운은 오래지 않은, 이번 한 달간 한시적으로 머물다 가는 것이다. 그래서 짝꿍과 함께, 가깝지 않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모습을 직접 눈 안에 담기 위해 방문했던 것이고.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짧은 방문 시간이었지만 나는 확신한다. 몇 해 전, 하늘 높이 날아오르던 초롱이의 뒷모습처럼, 오래도록 이 장면이 나와 함께하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게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리라는 것을.
서점을 나온 짝꿍과 나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우주제빵소'로 향했다. 우주제빵소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주얼리정'이자, <자이언트>의 '조필연'이었던 배우 정보석이 운영하는 카페다. 그가 종종 카페를 들른다는 소문을 입수한 우리 커플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근사하게 사인받을 상상을 하며 필기구를 챙겨갔다. 그런데 웬걸, 불과 며칠 전까지 열려 있었던 카페는, 리모델링을 위해 운영을 멈춘 상태였다. 분명 네** 에서는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었건만. 당황스러웠던 우리는 네**을 타박하며, 생각지도 못한 사태를 맞닥뜨리고 잠시 갈 곳을 잃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곳이 이웃해 있던 아래의 카페였다. 이 카페를 보자 우리는 왜 주얼리정의 가게가 리모델링에 들어갔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수더분하다 못해, 심지어, 낡아 보이는 빛바랜 초록색 카페에 비해, 우리의 시야에 잡힌 옆 카페는 화려한 궁전처럼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불과 몇 미터 거리 되지 않는 곳에 큰 카페가 두 군데나 있는 이 상황은 아마도 우리나라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언젠가 읽었던 장강명 작가의 <산 자들> 속 '현수동 빵집 삼국지' 이야기를 떠올렸다.
멀리까지 온 발걸음이 아쉬웠던 우리는, 이웃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며 잠시 얘기를 나누고 가기로 했다.
현대적이고 새것의 느낌인 겉모습에 비해, 카페 내부에서는 중세 유럽의 '앤틱'함이 물씬 풍겨져 나왔다. 대중교통을 여러 번 갈아타고, 등에 땀이 나도록 걸어 다닌 짝꿍과 내 얼굴은, 밤새 일 한 사람의 그것처럼 초췌해졌지만, 우리는 이내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젖어들어, 마치 따뜻한 잉글리시 티와 함께 오후 나절의 한가함을 즐기는 유럽의 귀족이 된 듯한 기분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이름 모를 페스트리에 각자의 미각을 내맡겼다. 또다시 찰나의 행복이 우리 곁에 머무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목적지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이곳이 우리가 본디 가고자 했던 곳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역시, 인생은 계획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막다른 골목에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만나게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