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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l 26. 2024

웃기는 중매쟁이의 기쁨

누군가를 (은근히) 웃기기.

누군가에게 내 취향을 인정받기.

위의 두 가지는, 최근 들어 내게 큰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다.



주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일상적으로 아재개그를 고심하고,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원했던 반응을 마주하고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즐거워하는 짝꿍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언제 철들려고 저러나’ 싶어 헛웃음을 짓던 나였다. 내 개그 코드가 짝꿍과 맞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일상의 사소한 상황에서 어쭙잖은 웃음 포인트를 찾아낸 뒤, 마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짝꿍이, 어떤 때는 좀 모자란 사람처럼 보여 안쓰러운 마음마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랬던 내가 점점 그를 닮아가고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자꾸 누군가를 웃기고 싶다.

물론, 짝꿍처럼 대놓고 유치 찬란한 - 짝꿍아 조금 미안 - 단어와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 은근히 재미있는 문장들을 녹여낸 대화로 말이다. 이러한 웃음 유발은 주로 다소 엉뚱하거나 독특한 상황을 끄집어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때, 내가 기대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MSG가 필요하다. 그것이 고양된 목소리 톤이든, 실제보다 조금 극화된 상황이든.



캘리그래피 모임에 나가면, 누군가를 웃기고 싶은 내 욕망이 최대치로 발현되는 듯하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편안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캘리 모임에서는 각자의 취향이 공유되는 기회가 흔하다. 책, 영화, 드라마, 여행지, 심지어 달밤의 산책 코스까지. 취향을 나누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자리에서 고양된 나의 머릿속은,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구체적 상황이 담긴 어떤 문장을 입에 올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느라 분주해진다. 그렇게 입 밖으로 투척된 내 말에 혹여 사람들이 웃음이라도 터뜨릴라치면, 나의 기분은 상승하다 못해, 도파민 체험의 순간을 만끽하기에 이른다. 그 순간의 나는,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웃음 유발을 위해 짝꿍이 노력하던 그 구구절절한 모습들에 납득되고야 만다.

최근 캘리 모임에서는 드라마 <커넥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작은 나였다. 최근 드라마에 다소 심드렁해져 있었던,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내게 기분 좋게 걸려든 작품이 배우 '지성' 주연의 <커넥션>이었고, 나는 흥미롭게 감상한 이 이야기를 다른 멤버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다 '지성이 너무 말라서 카메라 앵글에 따라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라며 안타까워하는 반응이 나왔는데,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나이 들수록 급격한 다이어트를 하면 안 된다'라는 말에 이어, 내가 더 이상 다이어트를 하기 어려운 이유들을, MSG를 살짝 첨가해, 늘어놓았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60대 멤버가 큰 소리로 웃으며, 한 손으로는 내 팔을 부여잡고 반대편 팔로는 내 등짝을 두드려댔다. 살짝 따끔한 느낌이 들었으나, 기분만큼은 좋았다. 나의 욕망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몹시도 기다려 온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는, 감읍하게도, 아래와 같은 말을 내게 건넸다.

  "지뉴씨, 사람이 왜 이렇게 웃겨! 깔깔~"

‘웃겨’라는 두 글자가, 마치 그녀의 입에서 큐피드의 화살을 타고 나온 듯 감미롭지만 강렬하게 내 귀를 관통했고, 나는 월급일의 기쁨보다 더 큰 희열을 느꼈다. 이러한 과한 기쁨이 '그분'을 부른 것인지, 그날의 캘리그래피에는, 내게 본디 없던, ‘예술적 미’마저 풍겨 나오는 것 같았다.



두 번째 기쁨의 순간은, 그 다음번 캘리 모임에서 나를 찾아왔다.
멤버들 중 두 명이, 너무나 고맙게도, 지난번 내 추천을 흘려듣지 않고 <커넥션>을, 그것도 정주행으로, 다 보고 온 것이었다.

  "커넥션 재밌더라. 지뉴씨 덕분에 오래간만에 괜찮은 스릴러물을 봤어."

이 말이 불러온 정신적 포만감에, 커피 한 잔으로 버티고 있던 허기가 잊히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드라마 중매쟁이'로서 기쁨을 맛본 것이었다. 몇 달 전 이곳 브런치에 올린, 드라마 관련 글들을 통해 느꼈던 즐거움과 보람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내 취향이 인정받는 느낌.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다정한 말. 타인이지만 취향으로 하나 되어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덧대어지는 것 같은 기분. 눈에 보이지 않는, 소소하지만 따듯하게 이어진 느낌이 나를 들뜨게 했다.



그렇게, '웃기는 중매쟁이'를 내 캐릭터의 하나로 삼고 싶어진 나는, 오늘도 웃음 유발의 순간을, 취향 공유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호시탐탐 안테나를 세우고 있다.

언젠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작은 웃음을 줄 기회가 닿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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