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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Oct 14. 2024

#18 고모가 알려준 비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를 제외하고는 잠을 자거나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보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면 조금 가려지고 잊히는 것 같았다. 내가 보고 싶지 않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고모와 같은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괴로웠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이 별로 없어 그나마 견딜 만했다. 고모와 이따금 집에서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하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방 안으로 피했다. 음악에 빠져들거나 억지로 잠을 청했다. 잠들지 못하는 순간에도 갓난아이가 엄마 품을 탐하듯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고모는 더 마르고 초췌해 보였다. 40대에 접어든 고모가 새 직장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은 듯했다. 미야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고, 미야를 바라보는 고모의 눈빛은 점점 상심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고모는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미야의 손을 붙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수요일 저녁이었고 창밖으로는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 하나를 미야와 함께 쓰고 온 고모의 오른쪽 팔다리 부분이 비에 젖어 있었다. 고모의 오른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고모가 움직일 때마다 봉지 안에서 유리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보일 듯 말 듯 목례만 하고 재빨리 그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부엌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미야가 보채는 소리. 그리고 고모가 고함지르는 소리. 나는 귓속 깊숙이 이어폰을 꽂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시 잠이 들었었나 보다. 비는 그친 듯했고, 짙은 어둠에 잠긴 사위가 시간이 꽤 흘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로 위 차들의 그림자가 천천히 늘어졌다 빠르게 사라졌다. 그림자의 자취를 좇던 어느 순간, 고모가 신경질적으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신우! 이신우!!”


  내가 나가지 않으면 소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나와 천천히 방문을 열었다. 불콰해진 고모의 얼굴 너머 어지러이 널려있는 초록색 병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인기척을 느낀 고모가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내 쪽을 노려보려 했지만, 어쩐지 고모의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곳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야! 너! 이리 와봐.”


  고모는 꼭 싸움이라도 벌이다 온 사람 같이 날이 서 있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술 많이 취하신 것 같은데 그만 주무세요.”

  “내가 너한테, 해줄 얘기가 있어. 그래, 꼭 해야지. 오늘!!”


  검지를 높이 치켜들어 정신없이 흔들어대던 고모가 나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실로 오래간만에 고모를 마주하고 앉았다. 아니, 고모와 단 둘이 앉아보기는 처음인 것 같았다. 고모와 나 사이엔 늘 완충지대처럼 할머니와 미야가 곁들어 있었다. 할머니와 미야가 없는 지금, 나 홀로 고모의 눈을 맞닥뜨리려니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의식적으로 어깨를 폈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고모의 눈에 핏기가 잔뜩 올라 있었다.


  “내가 엄마 때문에, 아니 니 할머니 때문에 그동안 얘기 못했는데 말이야….”


  ‘할머니’, ‘그동안 하지 못한 얘기’라는 고모의 말에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널뛰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해도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손을 뻗어 고모 잔에 담겨 있던 술을 미처 인지할 새도 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이 자식이, 고등학생 주제에!”


  고모가 나를 쏘아보며 소리치더니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하기야, 우리 집안사람들이 다들 술을 잘 마셔. 타고난 술꾼이야 술꾼. 니 아빠도 내 아빠도. 심지어 나도…. 흐흐흐”


  고모가 처음 들어보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뱉어냈다.


  “너!! 할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알아? 그놈의 술 때문에 뒤진 거야.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던 술이 자기 심장 멎게 하는 줄도 모르고 퍼 마시다가… 물론 내가 좀 거들긴 했지만….”

 “돕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두려웠던 마음이 흐트러진 자리에 답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거세게 타올랐다.


  “그때 내가 몇 살이었나… 아마 아홉 살쯤 됐을 거야.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거든. 참 달게 잤어… 그런데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잠에서 깨버렸어.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고모가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기울이더니 잠시 호흡을 골랐다. 이어질 뒷 이야기가 궁금해 나는 하마터면 고모를 독촉할 뻔했지만, 고모의 갑작스러운 트림 소리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고모가 얼굴을 내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화장실에 가려는데 큰방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거야. 봤더니, 아빠가 방바닥에 널브러져 가슴을 쥐고 낑낑거리고 있더라고. 놀란 마음에 아빠 가까이 다가가려다가 멈칫했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거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그런데 그다음 순간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고모가 눈을 치뜨며 나를 노려봤다.


  “어땠는데요…?”


  왠지 말꼬리가 흐려졌다. 고모는 잔 가득 소주를 따라 크게 한 모금 더 들이켠 후 잠시 내 표정을 살폈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어. 아빠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말이야. 누군가 어린 나를 대신해 통쾌하게 복수해주고 있는 것 같았거든.”


  이 말을 한 후 고모는 미친 사람처럼 웃어댔다. 그런 고모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순간의 고모는 마치 사악한 영혼에 빙의된 사람 같았다.


  “어린 나이에도 알겠더라. 내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으면 아빠는 저 세상으로 가겠다는 걸…. 그런데 간절하게 보고 싶었어. 그렇게 아빠 생명이 꺼져가는 모습을… 생각했지. 이제 더 이상 이 사람이 우리를 괴롭히는 일 따위는 없겠구나… “


  여기까지 말한 고모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바닥으로 향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내가 죽인 거야! 나는 끝까지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어. 아무도 몰랐어. 니 할머니조차도…. 난 그저 부모에게 방치된 채 홀로 낮잠을 자고 있던 가련한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거야. 그리고, 니 엄마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얘기는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게 어느 정도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할머니가 말했다. 그 시절 그 정도의 폭력은 흔한 일이었다고. 견딜 만한 거였다고. 할머니가 내게 해주지 않았던 얘기들이 도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걸까?


  “엄마가, 왜요?”

  “니 엄마는… 니 아빠가 죽게 만든 거야. 나는 내 아빠를, 니 아빠는 니 엄마를… 그러니까, 너도 조심해!”


  고모의 눈매가 위협적으로 번뜩였다.


  “도대체, 어떻게요? 엄마도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죽은 거예요?!”

  “기억이 안 나? 정말, 하나도…?”


  고모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고모가 왜 내 몸속 피에 대해 반복적으로 말했었는지.


  “그래서 난, 너와 같이 살 수가 없어. 너와 같이 있으면, 나나 미야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거잖아? 나는 말이야, 미안하지만, 신우 네가… 불편하고, 두려워.”


  솔직히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엔 난 아직 어렸고, 막막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머리에 전기로 충격이라도 가하는 듯 머리가 찌릿해져 왔다.


  “스무 살 될 때 까지만요. 그때까지만 참고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스무 살이 되면 고모가 말하지 않아도 제가 알아서 독립할 거예요. 대학 보내달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을게요. 그때쯤이면 자립정착금도 나올 거고, 그걸로 어떻게든 혼자 살아갈 방법을 찾아볼게요. 그리고… 고모 다시 취직하시면 제가 미야 돌볼게요. 아침에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오후에 데리러 가고, 밥도 챙겨 먹이고…. 저 잘할 수 있어요!”


  고모 앞에서 그토록 길고 절실하게 말한 적은 없었다. 고모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그러든지… 너나, 나나, 생각해 보면… 다 불쌍한 인생이니까. 우리 왜 이렇게 불쌍하냐. 불쌍해, 불쌍해. 불쌍해서 살 수가 없어….”


  불쌍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던 고모가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더니, 졸린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런데 고모… 왜, 지금 나한테 이런 얘기하는 거예요?”


  혹여 고모가 듣지 못할까 나는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 내 인생도 모르잖아. 바보 같은 니 할머니처럼 나도 한순간 저세상으로 가 버릴지도. 그렇게 되면 우리 미야는, 미야는….”


  고개를 번쩍 치켜든 고모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제가, 돌볼 거예요.”


  고모가 낯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또다시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고모는 꼭 술로 죽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술잔을 꺾는 고모의 팔목을 꽉 붙잡았다.  


  “그만 드세요. 그렇게 드시는 거 싫어요.”


  나는 당황한 고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모의 팔목을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간절한 마음이 내 손에 점점 더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았다. 고모의 눈빛이 조금 부드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고모가 힘없이 잔을 내려놓았다.


  “… 할머니 장롱에서 이걸 발견했어요.”


  나는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사진을 고모에게 내밀었다. 고모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너한테 줄 게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냉장고 쪽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고모가 냉장고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에 뭔가를 끄적여 내게 내밀었다. 종이에는 처음 보는 주소가 적혀 있었다.


  “니 엄마 있는 곳이야.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아.”


    그건 꿈이었을까, 되살아난 내 오랜 기억이었을까.  고모와 얘기를 나눈 그날 밤, 나는 낯익은 듯 낯선 장면 하나를 보았다. 코끝을 할퀴는 익숙한 냄새와 함께.     


  눈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여자 그리고 남자. 나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여자의 손에 날카로워 보이는 물건이 들려 있었고, 남자의 손이 여자의 손목을 거머쥐고 있었다. 여자의 손안에 든 물건이 빛을 받아 섬광처럼 번쩍이던 순간, 나는 그만 눈을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물건의 형체가 서서히 명확한 형태를 드러냈다. 그건, 칼이었다.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그러나 어느 순간 칼은 남자의 손끝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휘둘리고 있었다. 나를 향해 점점 다가오던 날카로운 칼날에 극한의 공포심을 느낀 나는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처음에는 입이 얼어버린 듯 목구멍에서 ‘꺽꺽’ 거리는 소리만 간신히 올라왔다. 그러다 마침내 소리가 되어 나온 두 음절로 된 단어. 꼭 다문 입술이 살며시 벌어지며 나오던 그 말은, ‘엄마’였다. 이윽고 허공을 향해 불규칙적으로 흩뿌려지던 빨간 액체 방울들과 코끝을 스쳐가던 비릿한 냄새. 그리고 들려오던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눈을 떴다. 눈앞의 현실처럼 생생한 꿈이었다. 베개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로 흥건했다. 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목이 메어왔다. 속에서 단단하게 똬리를 틀고 있던 무엇인가가 중력을 거스르며 터져 나오려 했다. 기어가다시피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를 붙잡고 속에 있는 것들을 한참 동안 게워낸 후 겨우 방으로 돌아와 다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그렇게 며칠을 앓았다. 밥도 먹지 못했다. 근근이 발을 끌고 부엌으로 나가면 고모가 끓여 놓은 식은 죽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몇 숟가락을 뜨기도 전에 또다시 속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조금 정신이 들 때면 물 한 모금 겨우 삼켰다.


  지독한 열감기였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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