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앓고 있던 사이, 계절은 10월로 넘어가고 있었다. 은학산 꼭대기 부근 초록이 옅어진 곳에 노을이 스며든 듯 붉은 기운이 서서히 번져갔다. 누운 채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면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는지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이 비워지는 날들이 나는 좋았다. 때때로 송이 얼굴이 떠오르던 순간을 제외하고는.
몸이 회복되어 갈 때쯤 송이가 집으로 찾아왔다. 병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바스락거리는 비닐에 싸인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손에 든 채로. 그런 송이 모습이 어색해 보였지만, 송이에게서 무언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라 조금 감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송이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건지 확인하러 온 거야. 연락도 잘 안 되고 말이야….”
송이는 현관 입구에서 바구니만 건네고 돌아서 가려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휴대폰 창을 열어본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며칠 동안 나는 하루의 시간을 빛의 방향이나 세기로 가늠했고, 이나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은 기억이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 학교에 안 있고, 어떻게 왔어?”
오후 한시 무렵이었다. 뺨 위로 내려앉는 쨍한 햇살이 편의점에서의 어느 오후를 불러들이던 그 순간, 송이가 금세 뒤돌아 다시 햇빛 속으로 사라질까 봐 불안한 마음이 일었다.
“시험 기간이잖아.”
“아….”
“좀 괜찮아진 거야?”
“덕분에, 괜찮아.”
“너 가끔 보면 말투가 꼭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같더라?”
칭찬인지 꾸중인지 알 수 없는 송이의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학교는 언제 올 거야?”
송이가 물었다.
“아마 다음 주…. 잠시, 들어올래?”
말하자마자 후회가 밀려들었다. 들키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와락, 튀어나와 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자 사람 친구가 집에 온 건 송이가 처음이었다.
“그럼, 음료수 한 잔만 얻어먹고 갈까? 10월인데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네.”
송이는 우리 집에 몇 번 와본 사람처럼, 한번 쭈뼛거리지도 않고, 손부채질을 해가며 퍽 자연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섰다. 가까이에서 보니 송이의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부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은 송이는, 내가 내온 차가운 생수 한 잔을 눈 깜짝할 사이 비우고는 집안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가 네 집이구나….”
“요즘 내가 이래서… 정리를 못했어. 정신없지?”
“뭐, 좀 그래 보이긴 한데, 우리가 그런 거 따지는 사이는 아니잖아?”
송이가 부엌 구석으로 과일 바구니를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그런 거 따지는 사이는 아니’라는 말이, 송이의 입에서 나온 ‘우리’라는 두 음절이 오늘따라 정겹게 들렸다. 때때로 말에도 육신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온기가 깃든 두 팔처럼, 누군가의 말에 지친 몸과 마음을 내맡겨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뭘 이런 걸 가지고 왔어?”
눈으로 바구니를 좇던 내 입에서 드라마에서나 들었을 법한 말이 툭 떨어져 나왔다.
“병문안 오면서 빈손으로 오기는 좀 그렇잖아? 언젠가 나도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고.”
말끝에 송이가 싱긋 웃어 보였다.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일의 대상이 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깊은 우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내게 튼튼한 밧줄 하나를 건네주는 것 같았다. 불현듯 얼른 다시 학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이 닿는 한 처음으로.
송이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무엇인가가 조금 옅어지는 듯했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후 우리 집의 모든 것들이 가라앉아 있었다. 나도, 고모도, 심지어 공기마저도. 어쩌면 송이에게서 퍼져 나온 밝은 기운이 공기를 가라앉히고 있던 무게를 조금씩 덜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진호도 오고 싶어 했는데 내가 그냥 오지 말라고 했어. 우르르 오면 환자한테 별로 안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송이가, 생의 마지막을 앞둔 시한부 환자를 쳐다보고 있기라도 한 듯 내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랬어…?”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는 송이의 얼굴을 알 수 없는 표정이 훑고 지나갔다.
“너… 나한테 죄짓지 마라.”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왜 자꾸 내 신경 거슬리게 만들어? 내 앞가림하며 살기도 벅찬 인생인데… 이신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 나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할머니도 분명 그걸 원하실 거야.”
고개를 돌린 송이의 옆얼굴이 슬퍼 보인다,라고 그 순간의 나는 생각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모습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이나 선생님의 눈물을 봤을 때처럼. ‘할머니’란 말에 잠시 숨어 있던 무엇인가가 들이닥치며 마음이 다시 내려앉는 것 같았지만, 송이를 보며 그 마음을 붙잡을 수 있었다.
“엄마아!!”
별안간 송이가 소리를 지르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송이와 내 얼굴이 맞닿을 뻔했다. 그러자 고장 나 있던 온몸의 기관들에 일제히 전기가 들어오는 듯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송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는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나에겐 익숙한 풍경이었지만, 송이에겐 생애 처음 맞닥뜨린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이르자 송이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깟 벌레 한 마리에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송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살인 사건으로 떠들썩한 와중에도 홀로 뒷산을 오르던 송이였는데….
이렇게 웃어본 게 얼마만이었을까.
“넌 꼭 이상한 타이밍에 웃더라, 기분 나쁘게?”
“내가 그랬어? 그랬다면 미안.”
“미안하면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자.”
“넌 내가 사과하면 꼭 조건을 달더라?”
“내가 그랬나? 암튼, 이번 달에 자전거 타러 한 번 가자. 이 누나가 자전거가 무지 타고 싶어서 말이지.”
“어디에서?”
“운암천에서. 자전거 타고 공항까지 가는 거야. 비행기 구경도 하고. 요즘 하늘이 너무 예쁘잖아?”
송이가 손끝으로 창밖의 하늘을 가리켰고, 나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높고 푸르른 하늘 한가운데 새하얗고 곧게 뻗은 길을 그리며 비행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날의 달라진 공기 때문이었을까, 내 눈에 비친 하늘은 맑고 투명한 에메랄드 빛깔이었다. 그 순간 텔레비전에서 봤던 하와이의 바다가 생각났다.
“송이야….”
“응?”
송이가 눈을 둥글게 뜨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전에, 나랑 다른 곳에 같이 좀 가주면 안 될까?”
“어디?”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혼자 가긴 용기가 안 나서. 같이, 가줄래?”
송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천천히,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이 누구든, 나와 함께 해주겠다는 듯이.
일주일 만에 다시 학교에 나갔다.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얼마 후 교내 봉사활동이 끝났다는 사실 말고는.
습관처럼 하던 일을 하고 밀린 수행평가를 봤다. 근수는 여전히 귀찮을 정도로 내 주위를 맴돌았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근수가 진짜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건 아닌지, 근수에게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어떤 면이 있는 건지.
봉사활동이 끝나고 한동안 근수를 보지 못했다. 그러던 수요일 방과 후, 학교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려 나오는 길에 복도에서 근수와 마주쳤다.
“봉사 끝났나 봐? 요즘 안 보이던데…?”
근수가 물었다.
“응…. 혹 시간 되면 저기서 잠시 얘기 좀 나눌까?”
나는 도서관 앞 복도 끝에 놓여 있는 빈 의자를 가리켰다.
“네가 웬일이냐?”
근수가 의아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사람처럼 내 모습을 유심히 훑었다.
“싫으면 말고.”
나는 애써 아무 표정을 짓지 않으며 의자 쪽으로 향했다. 잠시 멈춰 서 있던 근수가 이내 어슬렁거리는 걸음걸이로 내 뒤를 따라왔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아이들이 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를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근수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앉아 있으려니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 불과 몇 년 사이, 각자의 방식으로 쌓아온 나날들이 근수와 나 사이를 조금씩 밀어내 다가가기 힘들 만큼의 거리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무슨 할 말? 혹시, 다시 나랑 친구 먹고 싶어진 거야?”
근수의 목소리에 기대감이 서려있는 듯했다.
“그냥 좀, 궁금한 게 있어서….”
“뭔데?”
“너, 왜 자꾸 내 주변을 얼씬거려? 진짜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거냐?”
내 물음에 근수가 조금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건데?”
근수가 내 옆에 놓여있던 책에 시선을 붙박으며 말했다.
“글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솔직하게 얘기해. 네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되물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나와 근수의 시선이 여러 번 교차했다. 말없이 있던 근수가 고개를 들어 이번에는 맞은편 복도 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어쩐지 내 눈과 마주치는 것을 꺼리는 듯한 근수가 나는 걱정스러웠고, 차라리 근수가 그저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그 상황을 웃어넘겨주기를 바랐다.
“그냥… 사는 게 너무 좆같아서. 그래도 중학교 때는 너랑 꽤 재미있었는데…. 너, 요즘 많이 달라 보이더라? 사실 좀, 궁금했어. 자꾸 옛날 생각도 나고.”
근수의 얼굴 위로 아무런 즐거움도, 하고 싶은 일도 없는 무기력한 이의 표정이 흘러갔다. 그 순간의 근수가 열여덟 소년이 아닌 여든 넘은 노인처럼 느껴졌다. 문득 내가 자기 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던 송이의 말이 떠올랐다. 송이는 내게서 지금 근수의 얼굴에 드리워진 저 기운을 보았던 걸까.
“넌, 하고 싶은 게 없어?”
내가 묻고도 놀랐다. 예전에 송이에게서 받았던 질문을 고스란히 내가 근수에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하고 싶은 거라… 그러는, 넌?”
근수가 반문했다.
“나? 나는… “
생각지도 못했던 근수의 물음에 잊고 지냈던 어떤 감흥이 되살아났다.
“무언가를 적는 거….”
내가 답하자 근수의 얼굴이 별안간 웃음기로 가득 찼다.
“뭐, 젖는 거? 그건 나도 좋아하지! 그래, 그거 하고 싶다. 으흐흐~”
근수가 몸을 앞뒤로 리듬감 있게 움직이며 큰소리로 웃어댔다. 중학생 근수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아 나는 아주 잠시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었다. 스스로 작별을 고했으면서도 그리움을 떨쳐내지 못하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감정 상태는 도대체 무얼까.
“미친 새끼.”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지만, 왠지 나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처럼 찝찝해졌다. 그리고 생각났다. 무엇인가를 적어 내려갈 때의 내 마음이 어땠었는지.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오래간만에 다시 모니터 속 하얀 일기장을 펼쳤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한동안 고요히 머물러 있었다. 점멸하는 커서의 움직임이 마치 망망대해 끝에 서 있는 등대처럼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는 듯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마음속에 차올라있던 것들이 아우성치며 와르르 바깥으로 달려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넘쳐 오르는 것들을 손끝으로 붙잡아, 하얀 바탕이 까매지도록 채우고 또 채웠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 없이, 그저 잡히고 떠오르는 대로. 그러자 숨 막힐 듯 무언가로 빽빽이 들어찬 공기 속에 자그마한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