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기시감 같은 게 들 때가 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소, 대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될 때. 그럴 때면 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이생과 전생이 정말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건 분명 꿈이었다. 소리로만 기억에 남는. 어린아이가 부르는 기묘한 노랫소리 같기도, 가냘프고 여린 동물이 속절없이 내뱉는 울음소리 같기도 한, 아스라이 들려오던 높고 청아한 소리….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부엌으로 나왔다.
여느 아침처럼 할머니는 미야에게 두부 반찬과 콩나물국으로 아침밥을 먹이고 있었다.
“신우 어여 아침 먹으래이.”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평소와 다름없이, 내가 예상한 것과 한 치도 비껴 나지 않게 말했다.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묘한 내 기분과 그날따라 유난히 입안에서 까끌거리던 밥알들을 제외하면.
“밥이 왜 이렇게 딱딱해? 물 조절 좀 잘하지.”
나는 괜스레 젓가락으로 밥그릇 안의 밥알들을 하나씩 세어가며 말했다.
“쫌 그렇제? 오늘 할매가 실수를 쪼매 했네. 다음번에는 밥에 윤기가 좔좔 나서 우리 신우 입속에서 살살 녹게 해 주꾸마. 오늘만 참고 먹으래이.”
할머니가 내 젓가락 끝에서 구르고 있는 밥알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7교시 국어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각자 과제로 써 온 시를 돌아가며 발표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시를 발표하는 중간중간 우리는 얘기를 나눴다. 인간이 시를 쓰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누군가 시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이는 시를 ‘허세 부리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세련되고 고상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를 잘 쓰는 남자는 매력적인 것 같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덧붙였다. 송이가 말한 ‘시를 잘 쓰는 매력적인 남자’란 교과서나 시집에 등장하는 작가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실제 송이가 만났던 사람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교실 앞문을 두들겼다. 이나 선생님이 대답을 하자 문이 열렸고, 열린 문틈으로 1반 담임의 얼굴이 보였다. 1반 담임과 잠시 얘기를 나누던 이나 선생님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불길한 느낌이 뻗쳐올랐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제발 내 이름을 부르지 말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잠시 후,
“신우, 잠시만 나와 봐.”
선생님이 나를 불렀고, 나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끌며 복도로 나갔다. 선생님 앞에서 최대한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입술이 바싹 마르는 동시에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
“신우야, 할머니가 많이 다치셨나 봐. 지금 바로 조퇴해서 병원으로 가봐.”
이나 선생님의 얼굴에는 담담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근심이 어려 있었다. ‘많이 다친 거라면,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얘기니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원에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점점 더 솟구쳐 올라왔다. 이제껏 좋은 예감이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불길한 예감이 그보다 더 나쁜 결과를 들이미는 경우는 빈번했다. 마치 내가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신의 뜻인 것처럼. 나는 그런 신이 두렵다. 절망보다는 희망을, 아픔보다는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그런 선한 신을 나는 믿고 싶다. 신이 선한 인간을 사랑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병원으로 가는 길 내내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선한 신이 아니어도 믿을 테니 제발 우리 불쌍한 할머니만큼은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
그러나 이번에도 슬픈 예감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내가 다시 만난 할머니는 이미, 마지막 숨을 거둔 뒤였다. 잠든 듯 평온한 모습으로. 눈앞에 할머니를 두고도 할머니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 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내 이름을 부르며 웃어줄 것만 같았다. 더 일찍 할머니에게 가지 못한 내가, 할머니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이 그깟 밥에 대한 불만이었던 나 자신이 용서하기 힘들 만큼 원망스러웠다.
할머니를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 손을 꼭 잡았다. 굳은살이 빼곡하게 박여있던 손. 내게 윤기 나는 밥을 해 먹이던, 미야를 돌보고 할머니 몸무게의 몇 배는 될 법한 수레를 매일같이 끌던 손. 굳은살이 너무 단단해서 화가 났다. 내가 어찌해 줄 수 없을 만큼 너무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눈물은 나지 않았다. 솟구치는 감정과 다르게 나는 그 순간 눈물이 메말라버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날, 할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전날 미처 고물상에 팔지 못한 물건들이 이미 수레에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친 날이었기에, 할머니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고물 가격을 조금 더 쳐준다는 곳까지 가려고 한 것 같았다. 이웃집 김 씨 아저씨가 말했다. 매일매일의 고물상 매입시세를 바싹 꿰고 있는, 같은 경로당 어르신에게 얘기를 듣고 난 후 할머니가 그곳에 가려고 한 것 같다고. 내가 물었다. 가격을 얼마나 더 쳐주는 거냐고. 아저씨가 대답했다. ‘1킬로당 십 원 정도 더’ 쳐줄 거라고. 그 순간, 아저씨가 말한 ‘십 원’이 마치 할머니 목숨 값처럼 느껴졌다. 할머니는 밥 한 끼 값도 안 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평소 가지 않던 길로 수레를 끌고 들어섰고, 골목길에서 큰길로 나서던 순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오던 자동차에 수레와 함께 부딪혔던 것이다.
어떤 이는 운전자를 탓했고, 또 다른 이는 할머니가 좀 더 조심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내 귀에는 그 어떤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게 중요한 건, 이제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내게 말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단 일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미리. 헤어짐이란 원래 그런 거라고, 우리 인생이 본래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고. 죄책감을 덜 새도, 고마운 마음을 제대로 갚을 길도 없이 어느 날 불현듯, 그렇게 속절없이, 순식간에 헤어질 수 있는 게 인연인 거라고. 할머니가 다음번에 해주겠다던 윤기 나는 밥을 먹을 기회 같은 건 더 이상 내게 주어지지 않을 거라고. 평범한 아침이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오후였다. 여느 때와 별 다를 것 없이 흘러가던 일상에서 할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게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작별을.
할머니가 떠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할머니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왜 깨달음은 돌이킬 수 없는 이별 뒤에 내가 어찌해 볼 기회조차 주지 않고 찾아오는 건지…. 할머니가 남긴 빈자리를 절감하며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할머니는 내게 큰 바위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천길 폭포 앞을 든든하게 가로막아주고 있는 그런 바위. 나는 물이었다.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벽 아래로 흘러내리는 물. 할머니는 내게 그 중력을 버티게 해 준 단단한 무게였다. 나는 그 무게에 기대 떨어지지 않고 이제껏 버텨올 수 있었던 거다. 그 무게가 홀연히 사라져 버리자, 나는 순식간에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할 것만 같았다. 외로움이 들이쳤다. 그 감정이 너무도 순식간에 그리고 지독하게 몰려와서 감당하기가 힘겨웠다.
장례식장을 지키는 사람은 나와 고모 둘 뿐이었다. 해외에 머무르고 있는 삼촌은 오지 않았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초라했다. 아이처럼 자그마했던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처럼. 이따금 경로당 어르신들이 장례식장에 들렀다. 나에게 힘내라며 등을 토닥여주는 분도 있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은 없었다. 힘이 나지 않는데 힘내라고 하는 말이 나에겐 어려운 부탁처럼 느껴졌다.
송이와 진호가 장례식장에 왔다. 나는 담담한 척했지만 눈물을 글썽이는 송이를 보자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
한 번 만나지도 못한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보며 송이가 말했다. 사실 나는 몰랐다.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아닌지를. 울부짖는 고모 앞에서 내 감정을 신경 쓸 겨를 따위는 없었다. 나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모는 미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올라와야 했다. 당분간은 퇴직금으로 버티면서 새 직장을 구할 거라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고모는 할머니 유품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싶어 했다. 그런 고모는 지치고 힘들어 보였지만 화가 난 사람 같기도 했다. 나를 바라볼 때면 더더욱.
고모가 할머니 유품을 다 없애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할머니 물건들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얼마 만에 들어선 할머니 방이었을까. 묵힌 추억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간. 할머니 냄새가 묻어나는 할머니 방의 유품들은 할머니 장례식만큼이나 단출했다. 해진 옷 몇 가지. 빛바랜 이불과 사진들. 그리고, 그것….
그것은 할머니 장롱 가장 깊숙한 곳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들춰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장롱 서랍 구석에 해묵은 빨간 보자기 하나가 고이 접혀 있었다. 정성스럽게 묶여 있던 끈을 풀자 종이에 싸여 있는 물건이 보였다. 종이를 조심조심 벗겨내자 반으로 접힌 만 원권 뭉치와 함께 빛바랜 사진 한 장과 조그만 금반지 몇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 속에는, 커플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 상상 속으로만 그려본 엄마와 아빠였다.
접힌 만 원권은 정확히 열 장이었다. 내가 할머니에게 건넸던 할머니의 첫 용돈. 불현듯 불에 덴 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입술이 사정없이 떨려왔다.
나는 주인 잃은 용돈을 두 손에 꼭 그러쥔 채, 자꾸만 흔들리는 어깨를 어쩌지 못하고 한참을 웅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