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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Nov 09. 2024

#25 아빠가 쓴 편지

  바람이 사정없이 불던 날이었다. 겨울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던 금요일, 편의점 사장님께 하루 양해를 구하고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학교에는 미리 결석 신청을 해 두었다. 이전에도 인터넷을 통해 접견 신청을 한 적이 있었지만 교도소 측으로부터 접견 거부 통보 문자를 받았었다.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땐 거부를 해도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당황스럽기도,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 아빠라는 사람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날 피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그동안 내가 아빠를 외면했던 것 이상으로 아빠가 나를 피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이렇게까지 나를 밀어내는 이유를 알아내고 말겠다는 오기도 생겼다. 나는 한 번 더 접견 신청을 했고, 다행히 이번에는 거부 통보 문자를 받지 않았다.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은 서지 않았지만 무턱대고 교도소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아빠를 봐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나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나날들이,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귀한 물건처럼 느껴졌던 나는, 하루도 더 낭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되었고 결국,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분증을 손에 꼭 쥔 채 아빠가 있는 청풍교도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차창 너머 스치는 풍경 아래로 뒤늦은 낙엽들이 바람을 따라 쓸쓸히 뒹굴고 있었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음악에 맡기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생각을 비우려 애썼다. 내가 음악에, 잠에 빠져든 사이 버스가 교도소 앞에 나를 데려다주길 바라며.


  버스는 두 시간을 달려 아빠가 있는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청풍교도소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접했던 교도소보다 더 삭막하고 초라해 보이는 곳이었다. 교도소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쓸쓸하다 못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엄마를 처음 만나러 가던 길에는 초록이 무성했다. 풍성한 나뭇잎들 사이로 떼 지어 날아다니던 새들이, 내 옆에는 송이가 있었다. 엄마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길의 풍경은, 적도의 섬과 시베리아벌판의 그것만큼이나 다르게 느껴졌다. 때때로 송이가 없는 오른편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들었고, 헛걸음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자꾸만 일었다.


  교도소 입구에서 접견실까지 한참을 걸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 심리적인 상황이 그 길을 더 아득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칼날 같은 겨울바람이 부는 황량한 길을 그토록 오래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주머니 속 신분증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밀어 넣었다. 신분증의 모서리가 손바닥을 파고드는 통증을 느끼며, 고통을 견뎌내려 애쓰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해하는 누군가의 마음을 떠올렸다. 어느 봄날 우연히 보았던, 흐릿한 선들이 새겨져 있던 송이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팔목이 머리를 스치던 순간, 이해하기 힘들었던 송이의 마음이 나에게 와닿는 것 같았다.


  정문을 통과하고 얼마나 걸었을까, 접견실로 안내하는 빨간 선이 바닥에 이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졌다. 이러다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장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접견실이 시야에 들어오던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믿음을 쉼 없이 길어 올려야 했다. ‘나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할머니가 나를 지켜줄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접견실에 도착하니 손에 쥐고 있던 신분증이 땀으로 미끄덩거리고 있었다. 내 눈에 비친 그곳은 온통 차가운 회색빛이었고, 나는 무엇이든 붙들어 의지하고 싶은 마음에, 살이 하얘지도록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유난히 따뜻했던 그해의 봄을 떠올렸다. 눈송이처럼 날리던 벚꽃들, 바람결에 실려오던 봄날의 향기, 새들의 발랄했던 노랫소리와 두근거리던 가슴을….


  하지만… 나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빠는 끝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짧지 않은 기간 오직 그 순간만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고 다졌건만, 그 모든 시간이 수포로 돌아가버린 후의 나는, 갈 곳 잃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 채 한동안 부질없이 그곳을 서성거렸다.


  핸드폰 번호와 짧은 메모를 교도관에게 전했다. 아빠에게 꼭 전해 달라는 말과 함께. 두 시간을 넘게 걸려 간 그곳에서 한 시간도 채 머무르지 못하고 나는 다시, 영하 5도의 차가운 대기 속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마비시킬 기세로 등을 때렸다. 집으로 어서 돌아가라고 나를 사정없이 밀어내듯, 쉬지 않고. 언 땅 위를 디디는 발의 감각이 점점 상실되어 갔다. 한 줄기 눈물만이 얼어붙은 내 볼을 아리게 쓰다듬었다.


  몇 년 치 감기를 그해 가을, 겨울에 다 앓았던 것 같다. 아빠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그날 밤 내 몸에는 또다시 열이 끓어올랐고, 난 그다음 날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지 못했다.


  교도소를 다녀온 후 한동안 나의 무모함을 자책하며 보냈다. 혼자서도 잘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그를 만나려 하는 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지금껏 그래왔듯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하루를 간신히 버텼다. 언제쯤이면 지겨우리만치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아도 땅속 깊숙이 꺼질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학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를 감추려 애썼다. 남들이 웃지 않는 일에 웃고, 남들이 웃을 때 더 크게 웃었다. 웃다 보면 정말 내가 아무렇지 않은 듯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나를 송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송이에게 차마, 버림받은 나를 보여줄 수는 없었다.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는 송이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갈 때가 된 거라던데…?”


  이런 나를 보고 건넨 송이의 말에 난 또 웃었고, 송이는 나를 주인 잃고 비 맞으며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쳐다보듯 바라봤다.


  무심한 날들에 끌려가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우편함에 낯설고 하얀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예리한 직감이 스친 나는, 맥박수가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봉투를 집어 들었다. 청풍교도소 주소가 적혀 있는 그것은 역시, 아빠에게서 온 편지였다. 미야를 데리러 가는 것을 잠시 미루고 집으로 들어가, 편지지에 빼곡하게 들어찬, 처음 보는 아빠의 글씨들을 한 줄 한 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신우에게,

  너에게 편지를 쓰려니 무척 어색하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내 마음을 온전하게 전해야 할 것 같아 어렵사리 펜을 들었다.

  사실 너를 만나러 가야 하나, 마지막까지 고민했다.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한 채 너를 돌려보내고야 말았지만.  

 네 메모를 받아 들고 많이 놀랐다. 네가 여기까지 나를 찾아와 주리라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네 손글씨로 적힌 ‘아빠’라는 두 글자를 마주한 뒤 한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기분에 빠져 지냈다.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고나 할까. 나라는 사람, 아빠라고 불릴 가치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아빠라고 불러 줄 유일한 사람인 네가 그리 불러주니一물론 목소리가 아닌 글이었지만—감동적이기도 했고. 신우 네 손끝에서 전해졌을 글자 하나하나가 경이로워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짧은 메모 속에서도 너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져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곳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특히 노역이 없는 휴일이면 지겹다 못해 미칠 것 같은 느낌에 몸부림친다. 그런 날엔 할머니가 보내주신 너의 사진을 들쳐보곤 한다.—할머니 장례식엔 가지 못해 미안하다. 장례식이 끝나고 난 후에야 소식을 들어서 갈 수가 없었다. 변명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그리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글이라고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일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최근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20년 넘게 억울한 감옥생활을 하신 분의 글이어서인지 마음에 더 깊이 와닿는 듯하다. 그렇다고 내 감옥생활이 억울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분의 글 중 ‘손’에 관한 글들에 유독 마음이 간다. 이제 신우 너도 알겠지만 나는 죄를 지은 사람이다. 그것도 돌이킬 수 없는 큰 죄를. 내 손은 사람의 목숨을, 신우 네게 가장 소중했던 이의 생명을 저버린 손이다. 정신을 차리고 난 후부터 나는 도저히 이 손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밥을 먹고 일을 하고 화장실을 가는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손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어쩌다 손에 시선이 갈 때면, 초점 잃은 그녀의 눈빛이, 붉은 방울들이 어지러이 맺혀있던 너의 작은 얼굴이, 엄마를 애타게 부르짖던 가늘고 앳된 목소리가 마음을 온통 헤집어놓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손으로 책을 보고 글을 쓴다. 곧 너를 볼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 같다. 너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두 번이나 밀어낸 내가 이렇게 말하니 이상하게 들릴 거다. 그렇지만 백 퍼센트 진심이다. 그런 기대가, 희망이 없었다면 결코 이곳에서의 세월을 버틸 수 없었을 거고.


  머지않은 시간 내에 나도 다시 사회로 돌아가게 될 거다. 그땐 내가 먼저, 꼭 신우에게 연락하겠다. 신우가 마주한 나의 처음이 죄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아니길 바란다. 그것이 신우 네 기억에 평생토록 남을까 두려웠고.


  내가 지은 죄가 결코 없어지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결코 탐해서는 안 될 소망인지 모르겠지만,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었음에도 아빠라고 불러주는 착한 너에게 평생 용서를 구하며,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너의 아빠로 속죄하며 살아보자고….


  다시 바깥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죄 많은 이 손이 세상을 위해 좀 더 나은 일을 하는 모습을 신우 네가 지켜봐 준다면, 그것이 내겐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겠지.

  신우야, 염치없지만, 내게 단 한 번만이라도 그 기회를 줄 수 있겠니?


  이 편지를 받고 신우 네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고 두렵지만, 네게서 답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달게 받아들일 것이고….


  이토록 못난 나를 보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와 줘서 정말 고맙다.

  항상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하게 잘 지내라.

     - 신우와 다시 만날 날을 간절히 염원하는, 아빠가

추신- 핸드폰 번호 잘 간직하고 있겠다. 아직 내게는 여섯 살 꼬맹이 같은데, 사진 속 네 모습을 보면 한 번씩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감동스러울 만큼 잘 커줘서 한없이 고맙다, 신우야.



  훅, 짙은 피비린내가 얼굴을 덮쳐오는 듯 정신이 혼미해지며,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외면하려 애썼지만 끝내 맞닥뜨리고야 만, 아빠가 전한 그날의 진실…. 그저 악몽이라고 여기고 싶었던 것이 실은 내가 눈앞에서 목도한 장면이었다는 것을, 다시 여섯 살로 되돌아간 그 순간의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했다.


   어느 순간, 흐릿했던 장면들이 불투명한 장막을 걷어내고 명징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잠잠해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다시금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알 수 없는 감정들로 뒤범벅이 되어 버린 눈물이 흘러내려 편지를 움켜쥐고 있던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반대편 손으로 눈물자국을 닦아내려다가, 별안간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의 근육들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맘대로 움직였다. 송이가 말했듯 내가 정말 이상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아빠 만나고 온 거니?”


  아빠의 편지를 받고 난 며칠 후 고모가 물었다.

  내가 몇 주 전 고모에게 아빠 면회에 대한 얘기를 꺼냈기 때문일 거다. 아빠의 수감번호를 알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관심 없는 척 하지만 아빠와 내가 만나는 건 고모에게도 중요한 일일 테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으리라.


  “아니요. 저를 보지 않으려고 하더라고요. 대신, 편지를 보냈어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가?”

  “아니요. 아빠가요.”

  “뭐라고, 그래?”


  고모가 내게서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하는 눈빛을 보이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에 먼저 연락하겠대요. 그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아빠가 내게 보낸 짧지 않은 편지는 나를 통과해, 아무런 감정도 실리지 않은 차가운 한 줄로 요약되어 고모에게 전해졌다.


  “… 기분이, 어땠어?”

  “네…?”

  “편지 읽고 나서 말이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좀 의외였어요, 아빠는 글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네 아빠가 학교 다닐 때 글 좀 쓰긴 했었지. 백일장에서 상도 몇 번 타고.”


  고모가 처음으로 내게 알려준 아빠의 과거였다.


  “저도 요즘 글 좀 쓴다는 얘기 듣는데….”


  그 순간 내 얼굴에 집요하게 달라붙던 고모의 시선이 나를 옥죄는 것 같았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감추느라 신경이 곤두선 나머지 그만 실수를 해 버렸다. 다행히 고모는 그 이후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미야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감이 층을 이루고 있었다. 쌓인 그릇들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조심하며 한참 동안 설거지를 했다. 씻긴 그릇들에서 비릿한 물 냄새가 올라왔다. 또다시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몇 번에 걸쳐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연거푸 침을 삼켰다. 그러자 잠시 후, 신기할 만큼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빠에게 답장은 보내지 않았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감당하기 힘든 미움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믿음이라고 부를 만한 그 무엇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러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나 스스로 다독이기 어려운 날카로운 마음을 마모시켜 줄 절대적인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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