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처음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초등학교 입학식장에서였다. 평소에는 할머니가 있어 엄마 아빠의 빈자리가 그다지 크게 느껴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식장에서 내 옆에 있던 할머니가 처음으로 어색하고 초라해 보였다. 주름살 하나 보이지 않는, 젊고 허리 꼿꼿한 부모님 손을 잡고 당당한 발걸음으로 입학식장에 들어서던 친구들 모습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을 때.
초등학교 입학식을 앞두고 난 스스로를 대견해했던 것 같다.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아기’ 시절과는 완전한 작별을 고하고 의젓한 ‘어린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내게 의미 있는 날이어서였을까. 그날따라 유독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엄마 아빠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런데 열아홉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내가 왜 여덟 살 꼬마 시절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되는 건지….
아빠를 만나러 가기 위해선 신분증이 필요했다. 학생증이 있긴 했지만, 나는 나라가 인정해 주는 공식적인 신분증을 갖고 싶었다.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난 어른이라고, 당신 없이도 난 어른이 됐다고, 그것도 당신과는 다른…. 그리고 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때마침 얼마 전에 생일이 지난 나는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나보다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자신이 누나라고 주장하는 송이가 주민등록증 발급에 관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알아내기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나는 송이 앞에서 주민증 발급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굴고 싶었다. 누나인 척, 많이 아는 척, 잘난 척하며 신이 난 송이 모습이 보고 싶기도 했고.
송이 말에 의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학생증과 여권 사진 크기의 사진 한 장이었다. 이 말과 함께 송이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의 따끈따끈한 주민증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사진 속 송이는 사뭇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진에는 송이보다 얼굴이 더 허옇고 눈은 1.2배쯤 더 커 보이는, 송이와 닮았지만 송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낯설어 보이는 사람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가 ‘사진과 실물이 이렇게 달라도 신분증 발급이 되는 거냐?’라고 묻자 송이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도대체 어디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송이는 신분증 속 사진과 거울 안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여러 번 번갈아 흘깃거렸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 걸 그랬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실물이 더 보기 좋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송이는 반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눈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길에 내가 일하는 편의점 근처의 주민센터에 들렀다. 평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나처럼 처음으로 신분증을 발급하러 온 듯한 학생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그들은 대체로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였다. 발급 과정은, 대기번호가 돌아오기 전 기다리는 시간을 제외하면, 간단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주민센터 직원이 학생증 속 사진과 내 얼굴을 확인하고는 컴퓨터에 재빠르게 무언가를 입력하더니 열 손가락 지문을 찍으러 창구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나라는 사람이, 열 손가락 지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이 나라의 시스템에 등록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왜 나는 초등학교 입학식이, 그날의 내 기분이 떠올랐을까. 주민증을 만든다는 사실에 비로소 내가 미성년자가 아닌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을까?
“지문이 선명하셔서 금방 처리될 것 같네요.”
직원이 존댓말을 써가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창구 반대편에서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는 어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게도 저곳에서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기다려주는 어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생각이 들자, 흐릿해진 지문 아래 자리 잡고 있던 할머니의 굳은살이 떠올랐다.
“신청 다 되셨고요, 3주쯤 지나 문자 받고 찾으러 오시면 되세요. 수고하셨어요.”
눈가가 뜨거워지려던 찰나, 직원이 다시금 친절하게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안내해 주었다. 3주 후면 12월이 될 것이다. 아빠를 처음 만나는 날이 너무 춥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며 천천히 주민센터를 빠져나왔다. 그곳 어딘가에 미소 짓는 할머니가 서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젖어든 채로.
이따금 할머니를 보러 간다. 할머니의 납골당에 갈 때는 엄마를 보러 갈 때와 자못 다른 느낌이 든다. 살아 숨 쉬던 할머니의 모습이 내 기억 속에 온전히 자리 잡고 있어서일 테다. 할머니의 유골함은, 비록 조화들이긴 하지만, 예쁘고 화사한 장미 송이들과 함께 놓여있다.
길을 가다 빨간 장미를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생전에 할머니가 빨간 장미꽃이 예쁘다고 한 말이 떠올라서다. 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들 같지 않은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다른 할머니들이 어떤지 잘 모르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 할머니는 화려한 원색을 좋아했고, 터질 듯한 근육으로 무장한 UFC 선수들이 벌이는, 피가 난무하는 격투기 보는 것을 종종 즐겼다. 그것도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오히려 나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맛살이 찌푸려졌고, 할머니에게 차라리 드라마를 보라고 잔소리했다. 그 순간들이 할머니가 아닌 내가 잔소리를 하는 거의 유일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내 잔소리는 그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독특한 취향은, 할머니 나름의 스트레스를 푸는 효율적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일 거다.
납골당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게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나는 아직도 그곳에 갈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된다. 뜨거운 핏빛의 장미와 대조되는, 하얗다 못해 푸른빛이 도는 할머니의 차가운 유골함이 만들어내는 풍경에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수를 셀 수도 없는 가루로 분해되어 버린 할머니의 작은 몸이 잠들어 있는 저 차디찬 유골함에 정말 할머니가 있을까, 이따금 내가 내뱉는 혼잣말을 할머니가 들을 수는 있을까, 하고. 그럴 때면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가 귓가에 맴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자주 들었던, 내 또래 남자아이가 불렀다는 그 곡이. 그 노래를 반복해 흥얼거리다 보면 어떤 믿음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다. 내 시선이 닿는 어딘가, 바람이 훑고 간 자리 어딘가에 할머니가 머물고 있다는, 생전의 그 미소를 지으며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그런 믿음….
아빠를 보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찾아 간 날, 할머니에게 약속했다. 소리 높여, 어딘가에 있을 할머니가 내 말을 잘 들을 수 있게.
"힐머니, 나 아빠 만나러 씩씩하게 잘 다녀올게. 그러니까 할머니가 나 꼭, 지켜봐 줘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