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Oct 05. 2024

쿠알로아 랜치에 떠오른 무지개

씨라이프파크를 빠져나올 때쯤엔 이미 오후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식당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니, 숙소로 돌아가기엔 애매한 시간이었고,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일정을 가능한 천천히 마감하고 싶은 마음이 뭉게뭉게 솟아나던 시점이었다. 염두에 두고는 있었지만, 여건상 방문하지 못한 '쿠알로아 랜치(Kualoa Ranch)로 향하기로 한 결정은, 그때의 즉흥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쿠알로아 랜치는, 내가 흥미롭게 본 영화 <쥐라기 공원> 시리즈와 <진주만>의 세트장으로도 활용되었던 곳이다. 특히, 영화 속 배경지를 따라 진행되는 쿠알로아 랜치의 ‘무비 투어'는 꼭 참여해보고 싶은 선택지였다. 그러나 지형 특성상 흙먼지 폴폴 나는 야생의 공간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다지 관심 있어하지 않는 아이들을 끌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왔고, 결국 우리는 여행 목적지에서 쿠알로아 랜치를 제외하기로 결정했었다.



그런데 언제 다시 하와이에 올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후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에 숙소로 차를 돌리려 하니, 비록 쿠알로아 랜치의 투어는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입구까지만이라도 가보고 싶다는 바람이 솟아나, 렌터카를 반납하기 전 짝꿍과 나는, 피곤함도 잊은 채 쿠알로아 랜치를 향해 '고고씽'을 외치고야 말았다.



그 순간 숙소로 되돌아가기를, 노곤한 몸에 이른 휴식을 주기를 선택했더라면, 아마 우리는 생애 단 한 번밖에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광경을 놓쳤을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우리는, '투어는 못하더라도 눈에는 담고 가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니까, ‘못 먹어도 고!'를 실천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식당에서 쿠알로아 랜치까지는 40분 남짓 소요됐다. 하와이에서의 마지막 여행지로 향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비장해져서는, 가는 길에 마주치는 모든 풍경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다. 장기 기억 속에 꼭꼭 눌러 담아,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면 조금씩 꺼내어 되새김질하고 싶었다.



그렇게 풍경에 시선을 묻고 있던 사이,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눈앞에 등장했다. 마치 쿠알로아 랜치의 시작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대자연이 지어 올린 형형색색의 아치형 입구가 나의 시선을 온통 사로잡았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무지개가 하와이 여행의 끝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풍경에 또다시 감탄사를 토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부러라도 웃으면 더 행복해지고 건강해진다는데, 아름다운 것을 보며 우러나오는 감탄사에도 그와 같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번 하와이 여행을 통해 나는 좀 더 건강해졌음이 분명하다.



여섯 시가 거의 다 돼 가던 무렵, 쿠알로아 랜치의 입구에 도착했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주변의 자연을 천천히 거닐었다. 그러자 이제껏 하와이에서 보지 못했던, 소소하지만 흥미로운 장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야생수탉과 암탉이 밀당을 하는 모습, 종종종 뛰어다니는 병아리들을 이끌고 우리 앞을 지나가던 어미닭, 초록의 거대한 이불에 몸을 숨긴 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키워가고 있는 것 같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인적도 드문, 드넓은 벌판을 앞에 두고 아이들과 한마음이 된 엄마 아빠는, 야생닭들의 뒤를 쫓고 신나게 소리를 내지르며, 풍광을 가로질러 가는 자전거 하나, 지프차 한 대 없이도 지루한 줄 모르고 한참을 동심에 빠져 놀았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잠시 허물어졌던 그 순간, 쿠알로아 랜치를 내려다보는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고,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들뜬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쿠알로아 랜치의 입구에서
이전 15화 바다가 보이는 아쿠아리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