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장 한편에는, 세대는 다르지만 쌍둥이처럼 똑 닮은 연필깎이 두 개가 있다. 이름하여 '하*샤파'. 둘 중에 20세기를 지나, 21세기 하고도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내느라 빛이 많이 바랜 한 녀석은, 언젠가 파주 임진각에서 보았던,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채 더 이상 북으로 달리지 못하는 기차처럼 녹슬어 삐걱거린다. 또 다른 녀석은, 연필 깎는 이의 얼굴이 훤히 비칠 정도로 반질반질한 젊음을 마음껏 빛내고 있다. 둘을 나란히 함께 두고 보자면, 어쩐지 세월에 빛을 내어준 녀석이 주눅 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연필깎이로서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녀석에게는 보물 1호와도 같은 내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다.
초등(국민) 학교 1학년 시절, 이제 막 한글을 깨치고, 받아쓰기하는 것에 재미를 붙여가던 내게, 스스로 연필을 깎는 시간은 자긍심을 드높여 주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어설픈 손놀림으로 글씨를 꾹꾹 눌러쓰자면, 어느새 뭉뚝해진 연필심을 보며 연필 깎을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여덟 살이던 내가 연필 깎는 칼로 연필심을 다듬는 건 결코 쉽지 않았고, 자칫 잘못하면 손을 벨 수도 있었기에 최상급의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이웃에 살던 친구 집에는 디자인도 아기자기한 '자동 연필깎이'가 있었다. 친구의 아빠는, 무슨 일을 하셨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업무상 때때로 일본으로 출장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친구집은 일본에서 물 건너온, 꼬맹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세련된 자태의 문구들이 새로이 수혈되곤 했다. 1980년대만 해도, 일본 상품과 우리나라 제품의 품질 격차는 어마어마해 보였고, 그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일본 문구는 힙한 동시에, 집안 경제의 수준을 현저히 인식시켜 주는, 자부심의 상징과도 같은 특별한 물건으로 여겨졌다.
일본 출장을 다녀오는 아빠를 둔 친구가 으쓱해진 표정으로, 매끈한 외양의 일본 연필을 자동 연필깎이에 돌릴 때면, '윙~’하는 소리가 날개를 달고 집안 전체로 퍼져나가는 듯했는데, 그 소리가 어린 내게는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마치 신비로운 마술의 한 장면처럼, 연필깎이가 가루를 가볍게 흩어내며 순식간에 날렵한 연필심을 만들어 내놓으면, 구경간 동네 아이들-나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의 놀라움과 부러움이 실린 감탄사가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연필깎이를 사달라고 할아버지를 졸라대기 시작한 것이. 엄마, 아빠가 아닌 할아버지에게 말이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어린 내가 어리광을 부리거나 무엇을 사달라고 요구하기에 무서운 사람이었다. 지친 얼굴의 엄마는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혹여 용기를 내 입 밖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얘기한다고 한들 엄마, 아빠가 쉬이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머니에게는 매정한 남편이었고, (나의) 친정 엄마나 이모들에게는 말 한번 제대로 건네기 어려울 만큼 무서운 아버지였지만, 젊은 시절을 지나 노년에 이르러 만난 어린 손녀에게만큼은 한없이 자상한 분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는 내게 '지니'와도 같은 존재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할아버지는 경제적 능력 없이, 쇠약해진 몸으로 상처받은 자존감을, 손녀를 통해 어럽지 않게 치유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손녀가 부탁하는 것이라고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먹는 곰보빵 하나, 받아쓰기 문장 불러주기, 구구단을 같이 외워주는 것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세상 더없이 행복해하며 '우리 할아버지 최고'라고 치켜세워주는 손녀였으니까.
신상 연필깎이를 갖는 것은, 그동안 내가 할아버지에게 건넨 소원 중 두 번째로 큰 것이었다.(첫 번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것이었다) 그건 곰보빵이나 받아쓰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가정의 경제권을 쥐고 있던 사람은 할머니였고, 할머니는 내 부탁을 다 들어주려 하는 할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래서였을 거다. 어느 날 저녁상이 물러간 후, 할머니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내게 속삭이듯 새 소식을 전했던 이유는.
"지뉴야, 저기 옆 방 피아노 위를 살펴봐...."
할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눈빛에서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들뜬 아기고양이처럼 살금살금 피아노 의자 위로 올라섰을 때, 별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는 '하*샤파'가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때의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양쪽 뺨 가득 활짝 핀 미소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샤파가 내 것이 되었다는 사실은, 다시 말해, 더 이상 연필을 깎을 때 손을 베이지 않으려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일본으로 출장 다니는 아빠를 둔 친구를 예전만큼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신상 연필깎이의 어엿한 주인으로서 연필깎이가 없는 친구들에게 '연필 깎고 싶은 사람은 나한테 말해.'와 같은, 자랑 섞인 관용을 마음껏 베풀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그렇게 여덟 살 내 인생 두 번째로 큰 소원이 이루어졌고, 나는 받아쓰기를 연습하는 데에 더욱 박차를 가하며, 한글을 성실히 익히고, 나만의 단정한 글씨체를 만들어나갔다. 할아버지가 선물해 준 연필깎이는, 내가 처음이자 (아마도) 마지막으로 소유한 연필깎이인 동시에 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품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그로부터 6개월 후, 벚꽃이 피기 시작하던 어느 봄날 아침, 다른 세상으로 홀연히 떠나갔다.
신기하게도, 할아버지가 떠난 후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연필깎이는, 비록 겉모습은 거칠어지고 빛은 바래었을지언정, 별 탈 한 번 없이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해주었다. 올림픽으로 달뜬 분위기가 지나가고, IMF가 들이닥치고, 수많은 회사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지만, 시들지 않는 인기의 하*샤파 덕택인지 연필깎이 회사는 망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았고, 그때의 연필깎이는 여전한 모습으로 아들램의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몇 해전, 오랜 세월을 견뎌 낸 할아버지의 연필깎이가 마침내 멈춰 섰을 때, 내가 문구점에서 직접 데려와 내 아이에게 선물한 21세기 하*샤파와 사이도 좋게, 나란히.
지금의 나는 마음을 다스린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연필 깎는 칼로 연필을 다듬는 것을 선호한다. 결이 살아남은 도톰한 나무 조각들을 걷어낸 뒤, 뾰족하지도 뭉뚝하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두께로 드러나는 연필심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상에 부대끼는 어느 날 문득 할아버지와의 추억이, 할아버지와 함께 하던 받아쓰기가 떠오를 때면, 할아버지의 연필깎이를 옆에 놓아둔 채 21세기의 하*샤파로 연필을 깎는다. 오래된 필름을 감듯 손목을 열심히 돌리며 그 시절의 감정을 불러낸다. 그러면 잠시동안, 나는 연필깎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감탄을 토해내던 꼬마숙녀가 되어 마술과도 같았던 순간으로 건너간다. 이제는 추억의 타임머신이 되어주는 할아버지의 연필깎이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