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왜 하필 독일에 가려고?
유럽 여러 나라 중 콕 집어 독일로 여행을 간다고 말했을 때, 주변 지인들이 대체적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이 말 뒤엔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리라. 예상치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셰익스피어의 나라 영국, 예술과 낭만의 프랑스, 대로마 제국의 영화가 깃든 이탈리아에 비해 독일은 인기 있는 여행지에서 한 걸음 비껴 나 있는 느낌이다. 어쩌다 독일은 (일반적으로)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여행지로 여겨지는 걸까. 1,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히틀러와 홀로코스트의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딱딱한 표정의 무뚝뚝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편견이 작용한 탓일까.
짝꿍과 내가 독일 여행을 결정한 것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독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품어 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한편으로는 비주류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일정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타인이 미처 보지 못하는 장점과 가치를 발견해 내고 싶다는 마음, 그들을 기꺼이 격려해주고 싶다는 마음. 꼴찌 팀을 목청 높여 응원하게 되는 그런 마음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독일이 무슨 비주류 국가라고? 말도 안 돼!'라고 말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나 규모면에서 독일은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 꼽히는 것이 사실이니. 그러나 여행의 영역에서만큼은, 한국인에게, 독일은 비주류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주변인들의 반응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듯이.
독일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이번 연재를 하며 리마인드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곤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다. 순간순간을 포착해 둔 사진과 메모가 아니었더라면, 독일에서의 나날들이 지금쯤 현실인지 꿈인지 그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주변 풍경을 소환하는 내게 누군가가,
‘너 그거 꿈에서 본 장면 아니야, 너무 비현실적인데?'
라고 묻는다면, 그런데 그 순간들이 내게 현실이었음을 증명할 만한 무언가가,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없다면, 과연 나는 그 장면들이 꿈에서 본 것이 아니라고 끝까지 반박하고, 일말의 흔들림 없이 그건 분명 현실이었다고 스스로를 확신시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마지막 남은 ‘유로화'를 공항 레스토랑에서 탈탈 털어내면서도 자그마한 동전을 부러 세고 또 세었던 건, 귀국행 비행기에 올라 뮌헨 공항의 하늘이 석양으로 물드는 장면을 눈에 담고 또 담아냈던 이유는, 아쉬운 마음 탓도 있겠으나 그 순간 내가 보고 느끼는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감흥을 주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도,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몰아내 준 바이에른의 맥주도 좋았지만, 이번 여행을 뒤로하며 가장 좋았던 순간은 딸램이 내게 이 한 마디를 건넸을 때였다.
"독일로 또 여행 가고 싶다."
나와 짝꿍이 학창 시절부터 맺었던 독일과의 인연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 우리 아이들과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나는 못내 감격스러웠다.
독일을 떠나오는 마음이 그저 아쉽기만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언젠가 우리가 이곳을 또다시 찾으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에는 바이에른 주를 넘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껴보리라 마음먹으며, 고국에서 우리를 (아마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새(鳥) 친구들을 생각했다.
독일로 향할 때와는 달리, 귀국길의 비행시간은 세 시간이 덜어진, 열 시간 남짓이 걸렸다. 편서풍의 영향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이 거대한 비행기의 움직임을 이토록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은 언제 접해도 놀라운 현상이다. 우리를 막아서던 바람을 거슬러 도착한 독일에서 우리 가족은 꿈같은 시간을 마음에 아로새긴 채, 귀국길을 응원하는 바람의 손길을 등에 업고 무사히 집으로 귀환했다.
앵무새들로 떠들썩했던 농장에서 일주일 여를 보낸 반려닭 김치양은 더욱 수다스러워져 있었고, 왕관앵무 두부와 망고는 데면데면한 한집살이를 시작했다. 긴 여행을 다녀오면 사람 가족뿐 아니라 이렇듯 동물 친구들의 일상에도 새로움이 얹어진다.
그동안 '독일 여행기'를 함께 해 주신 글벗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문득 독일 화장실에서 본 *'팁'함에 쓰여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반강제적이었던 하와이의 팁 문화에 비해 독일은 훨씬 자율적이었다. ‘자율’이 지닌 아름다움이란!) 분명 독일 여행에 그다지 관심이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함께 해 준 이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자율적 선행은(이것은 분명 선행이다!) 그것을 받는 이에게 생각 이상으로 큰 힘을 준다. 사실 이번 연재를 독자와 약속한 요일에 제대로 올릴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는데, 시간과 마음을 자비롭게 나눠준 벗들 덕분에 연재를 제 때에 끝맺을 수 있게 된 듯하다. (쉼 없이 연재를 이어가는 이들이 실로 존경스럽다) 바쁜 와중에도 기꺼이 독자가 되어준 이들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
'Ich bedanke mich für ein Freiwillinges Trinkgeld.'
당신의 자율적인 팁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정한 독자들의 관심 어린 마음은 내 글과 내게 힘을 주는, 환하게 반짝이는 팁과도 같았다. 이렇게 완성된 또 하나의 여행기가, 내 삶에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자국을 남겨주었다.
그럼, 다음 연재에서 또 만나요. **Ciao(차오)!!
* 유럽 여타의 국가도 비슷한 상황일 테지만, 독일 공공 화장실은 유료인 곳이 대부분이다. (기차역 내 화장실은 무료였다) 화장실의 청결을 책임져 주는 이를 위한 앙증맞은 팁 함을 발견하고서는 눈에 하트가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팁 함을 바라보는 내게, 따스한 시선을 보내주던 청소노동자분과 불현듯 눈이 마주쳤고, 우리는 잠시 미소 어린 스몰토크를 주고받았다.
** 독일에서는 헤어질 때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나누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Auf Wiedersehen!(아우프 비더젠)’같은, 상대적으로 긴 독일 인사가 번거로워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