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소년합창단 공연을 즐겨 보았다. 특히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의 음색과 창법을 좋아해, SNS상에서도 합창단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 국내 공연을 올 때 즈음하여 계정에 들어가 보면 공연 전후의 뒷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무척 흥미로운데, 그중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것은 합창 단원들이 국내 공연을 올 때마다 '다이소'를 필수 코스로 들르는 장면들이었다.
신기했던 건, 그 여정을 단원들이 너무도 즐거워한다는 것.. 소년들이 다이소에서 살 만한 것들이 무에 그리 많을까 싶은데, 그들에게 가장 인기 좋은 아이템은 다른 것도 아닌, 얼굴 크기 만한, 손에 드는 '태극기'였다. (한국인이면서도 다이소에 태극기가 판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태극기를 구입하는 경험도 좋았겠지만, 소년들은 다이소의 매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소소하지만 흥미로워 보이는 물건들을 마음껏 훔쳐보는 것을 즐기지 않았을까 싶다. 물건을 손에 쥐어 보고, 한 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눈치 줄 점원 하나 없는 곳이니 말이다.
사지 않아도 시선으로 반쯤은 그 물건을 산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 그리고 그 물건들 하나하나가 어여뻐 보이고 구미를 자극하는 곳. 그러한 가게 중 대표적인 곳이 바로, 소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올리브영'일 것이다. (딸램의 기준에선) 화장도 잘하지 못하는 엄마지만, 딸램을 쫄래쫄래 쫓아 간 올리브영에서, 사지 않고 테스트해 보지 않아도, 그저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는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기분을 잊지 못해 가게를 다시 찾게 되는 것일 테다.
그러니 독일판 올리브영이라는 'dm'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으랴. 올리브영의 성실한 고객인 딸램이 'dm'방문에 나보다 더욱 적극적이었다. 처음엔 ‘독일판 올리브영'이라는 말에 혹하여 엄마 아빠를 따라나선 딸이었건만, 한번 간 이후로는 여정에 틈이 생길 때마다 'dm'을 가자고 말했는데, 그 말하는 폼이 거의 어린 시절에 마트 장난감 코너로 가자고 조르는 수준이었다. 친구들 기념품을 사야 한다며, 비행기에 오르기 전 먹을 '멜라토닌'을 사야 한다고, 어떤 과자와 초콜릿이 있는지 궁금하다며, 독일 화장품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구경해 본다고 등등, 그 이유라는 것이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났다.
'dm' 덕분에 나는, 가게에서 고체 혹은 액체 형태로 된 멜라토닌 성분을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면제와 흡사한 기능을 하는 것 같지만, 약품으로 공식 인정된 것은 아니니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비타민이 부족하다 싶을 때 섭취하는, 가루 형태의 '비타민 C'같은 느낌을 주는, 매대에 줄줄이 늘어선 멜라토닌은, 현지인들이 흔히 사 먹는 일상용품처럼 보였다.
딸램은 비행기에서 자꾸 멀미가 난다며, 멀미를 피하기 위해선 잠을 푹 자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멜라토닌을 사 먹어 보겠다는 거였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지하철에서건 비행기에서건, 대중교통수단을 가리지 않고 멀미가 난다는 건지.. (유일하게 트램에서만 멀미가 나지 않는다는데, 딸의 멀미마저 낭만이 있고 없고를 가리는 걸까?)
시원시원한 'dm'의 규모도 우리의 마음을 산 이유 중 하나였다. 독일과 자못 어울리지 않는 알록달록한 느낌의 매대도 마음에 들었지만, 발길에 채일 정도로 많은 ‘dm’ 매장 거의 모두가 매장 안의 끝에서 끝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드넓었고, 매대 사이를 오가는 쇼핑객들끼리 서로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다 제품의 종류는 어찌 그리 다채로운지.. 올리브영에서는 주로 딸램을 보좌하는 (eye) 쇼핑의 방관자로 머물러 있었건만, 고객층도 다양한 'dm'의 넓은 공간에서는 중년의 아줌마도 매장을 마음껏 활보하고 다니며 구경 삼매경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내가 눈여겨본 건 치약과 핸드크림 코너였다. 독일은 여행 기념품으로 치약과 핸드크림이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기다란 매대 전체가 치약, 핸드크림으로 꽉 채워져 있는 것이 도대체 어느 상품을 골라야 할지 무척 고심이 됐다. 가격이 그런대로 착하면서도 국내에서 접해보지 못한 것을 사고자 했던 나는, 치약 코너에서 마침 적당해 보이는 물건 하나를 찾았다. 양도 제법 많아 보이면서 가격도 저렴해 보이는 치약이 매대 끝 쪽에 진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국내 어디에서고 보도 듣도 못한, 신선한 외양의 치약이었다. 나는 기념품을 전해줄 지인들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와 함께 치약 몇 개를 집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짝꿍은 동료들에게 줄 핸드크림 수십 개를 장바구니에 쓸어 담아왔고, 딸램은 아기자기한 소품 같은 물건들을 집어 왔다. 짝꿍이 추천해 준 치약 대신, 내가 적극적으로 발굴해 온 치약에 내심 뿌듯해하며 짝꿍이 한마디 해주길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장바구니를 들여다보던 그가,
"이거 '틀니 부착제'잖아! 이건 왜 골라온 거야?"
라고 말하며 어리둥절한 건지 비웃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틀니 부착제라니, 이거 치약 아니야?"
뭔가 조금 달라 보이긴 했으나, 내 눈에 그건 분명 치약이었다.
"여기 적혀 있는 거 읽어 봐. 틀니 부착제야, 이거."
역시, 짝꿍은 나보다 더 세심한 유형의 인간이다. 나는 굳이 글자를 읽어 볼 생각을 하지도 않았지만, 읽어봤더래도 '틀니', '부착제'라는 단어를 그저 휘리릭 넘겨봤을 것이다. 그 순간의 나는 독일어 까막눈이 되어버린 것이다. 조금 창피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음을 지어내며 말했다.
"어머나, 독일에는 치약 코너에 이런 것도 다 파는구나!”
물 만난 물고기마냥 휘젓고 다니던 'dm'매장에서, 나의 엉뚱한 쇼핑 시도는 우리 가족의 소소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래, 좀 창피를 당하면 어떠하리, 가족에게 웃음을 선사하였으니. 어쩌면 오히려 잘 된 일일 것이다. ‘dm'의 다양한 물건들만큼이나, 독일판 올리브영을 떠올리는 우리의 맛도 다채로워지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