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당을 거쳐 언덕 위 성으로

잘츠부르크 3

by 지뉴

잘츠부르크 1일 차 밤,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날렸다. 독일에서보다 두 배가량 비싼 호텔 - 오스트리아 물가가 독일보다 전반적으로 더 비싼 것으로 보였다 - 에는 커피포트를 비롯해 간단한 식기구가 있었고, 일찌감치 아이들 야식을 챙겨 준 나와 짝꿍은 잘츠부르크에서의 짧은 일정이 못내 아쉬워, 아이들을 호텔에 남겨둔 채 눈 내리는 호텔 밖으로 나섰다. 원래는 잘자흐강변의 야경을 즐기고 싶었으나, 밤 아홉 시가 좀 넘은 시간에도 이미 *도시에는 인적이 드물었기에, 호텔에서 머지않은 중앙역 인근에서 밤산책을 즐기기로 했다.


쌀쌀한 공기 때문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고팠는데, 그 시간에 문을 연 카페를 찾기가 어려웠고, 이 가게 저 가게를 전전하다가 가까스로 커피를 손안에 쥘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가 중앙역일 텐데도 말이다. 인적 드문 스산함에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기도 했으나, 잘츠부르크의 밤에는 오랜 세월 쌓여 온 예술적 기품이 느껴졌다.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때때로 오가는 대화와 함께 한, 삼십 분 남짓의 산책 겸 둘만의 데이트는, 낮동안의 피로를 씻어 주고 내일의 여행을 맞이할 힘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다음 날, 숙소 밖으로 나서니 지난밤의 눈이 녹지 않고 거리 곳곳에 살포시 내려앉은 채, 입자 고운 슈가파우더 같은 모양새로 우리를 맞았다. 미라벨 궁전을 방문하고 다시 뮌헨으로 돌아가리라 맘먹고 있었던, 잘츠부르크에서의 2일 차 아침이었다. 오전 중에는 특별한 사전 계획이 없었는데, 역시나 (나보다 더 세심한) 짝꿍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유럽여행을 할 때 성당이나 교회에 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썩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으나, 잘츠부르크 카드 할인이 된다는 말에, 속세의 주부다운 심정으로 ‘그 성당이 저 성당이고, 저 성당이 이 성당이겠거니’ 하면서도 '최대한 본전 뽑기 위해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이 되었더랬다.


그런데.. 잘츠부르크 대성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조금 전까지 가졌던 온갖 속세의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천국의 문 앞에 서있는 듯 마음이 차분해지더니, 이내 지극한 경건함 속에 휩싸여 흡사 ‘고요’와 하나가 된 듯했다. 무종교인임에도 신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이 들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꼭 맞잡게 되는 것이었다. 태양빛이 천국에 이르면 이러하지 않을까 싶은, 어둑한 와인 빛깔의 조명이 한 인간으로서의 온갖 부정적 생각과 감정들을 쓰다듬어 주는 느낌에 빠져들었다. 그 공간에 한동안 심신을 담그고 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평소 접하기 힘든 고귀한 무엇에 닿아있다가 돌아온, 그리하여 이전의 나와는 무언가 달라진 듯한 감흥이 일었다.


"미라벨 정원 가기 전에 호엔잘츠부르크 성에 올라가 볼까?"

잘츠부르크 대성당을 나와 묘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 와중에 짝꿍이 내게 말했다.

"잘츠부르크 카드 있으면 성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푸니쿨라)가 공짜래."

그러자 마치 '스위치오프' 되듯 다시금 속세의 나로 돌아왔다. 고귀하고 우아했던 기분은, '무료 케이블카를 타고 저 성까지 오를 수 있다면야!'라는 생각에 밀려 어디론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유럽 소도시 대부분의 성이 그렇듯, 도시 어느 곳에서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얼마지 않아 헛된 바람이 되고야 말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케이블카가 임시 운행 정지 중이었던 것이다. (잘츠부르크는 겨울을 피해 가야 할 도시인 걸까. 뒤이어 방문한 미라벨 정원 후문도 폐쇄되어 있었으니..) 케이블카 선로가 바로 눈앞으로 보이거늘, 손에 잡힐 듯한데도 마음을 접고 돌아서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성까지 오르겠노라 마음먹은 터라 그냥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와 짝꿍은 걸어서 올라가자고 뜻을 모았다. 그 순간 아이들의 동공은 지진이 난 듯 흔들렸지만, 그간에 다진 '꼬드김 잔꾀'를 최대한으로 발휘해 결국 온 가족이 도보로 성에 오르게 되었다.


경사길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부터 이미 '다리 아프다'를 시연하는 딸내미의 팔짱을 꼭 끼고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케이블카로 채 몇 분이 되지 않을 거리를 삼십 분 가까이 걸어서 올랐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미처 보지 못했을 풍경을 눈 안에 담으며. 마침내 성의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오히려 운행 정지된 케이블카가 우리 여행을 더 풍성히 해주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언덕 위 외딴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평상시에 이용되었던 주 거주지라기보다는 당시(신성로마제국) 대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요새이자, 전쟁 시 피난처로 활용된 곳이라고 한다. 성 입구로 들어서니 중세 유럽의 작은 마을 하나를 옮겨다 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졌다.


종교적 색채가 짙게 어린 성은 중세의 중압적이고 어두운 면모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간은 '마녀 처형'이 이루어진 곳이었다. 다섯 평이될까 말까 한 어둡고 습한 공간에는, 그 시절 처형 집행을 위해 쓰인 굵은 밧줄이 여전히 매달려 있었는데, 그 아래 바닥이 삼 미터 정도의 깊이로 파여 있었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억울한 목숨들이 사라져 갔을까. 깊은 그늘이 드리워진 저 아래 바닥 위로 반짝이는 동전들이 여기저기에서 빛을 발했다. 안타까운 마음의 관광객들이 망자의 혼을 달래기 위해 떨구어 놓은 것일까?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세속 통치자였던 대주교는 이곳에서 일반 서민들의 두려움과 존경을 받으며 절대적 권력을 휘둘렀으리라. 어쩌면 그의 통치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평범한 사람을 마녀로 몰거나, 혹은 무지하고 무자비한 이들에게 마녀로 몰려 죄 없는 이가 억울한 죽음을 맞는 것에 동조하고 눈 감으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는 신의 뜻을 어디까지 거스를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 요새 같은 이 성에서 평일 저녁이면 모차르트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한 시간 남짓 성을 둘러본 후 다시 속세의 세상으로 내려갈 시간, 성문 밖을 나선 관광객들의 표정이 왠지 밝아 보였다. 올라올 때보다 사뭇 가벼워진 발걸음 때문일까. 언덕 아래로 조금 전 방문했던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쩐지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에 빠져 돌아오는 길, 청아하고도 숭엄한 성당의 종소리가 우리와 동행하며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듯했다. 진정으로 귀한 것은, 요새 같은 성이 있는 저 위의 세상이 아니라, 미천하리만치 소박한 일상을 꿋꿋이 살아 내는 자들이 있는 곳, 바로 여기, 아래 세상에 있다고 말하듯.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에 늘어 선 마차들
잘츠부르크 대성당 내부
대성당 쪽에서 올려다본 호엔잘츠부르크 성(그 아래로 푸니쿨라 선로가..)
본디 이렇게 올라가려 했으나..
호엔잘츠부르크 성 안. 중세 시골의 작은 마을을 걷는 기분
눈을 감고 들어 보면~
다양하게 활용되는 잘츠부르크 카드

*이 시간 드물게 열려 있는 상점들은 대개 아시아 출신의 사장이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도 여지없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하고 부지런한 이들은 우리를 닮은 이웃들이었다.